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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으로 시작된 '태종 이방원', KBS 자존심 지킬까

[TV 리뷰] KBS 1TV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

21.12.12 12:39최종업데이트21.12.1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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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

 
5년 만에 돌아온 KBS 1TV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이 '위화도 회군'으로 대장정의 서막을 열었다. 11일 방송된 <태종 이방원> 첫 회에서는 이성계(김영철)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정하고 개경으로 진격하는 모습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이방원(주상욱)의 활약상, 우왕(임지규)과 최영(송용태)이 이끄는 고려 조정의 대응 등이 긴박하게 그려졌다.
 
드라마는 1418년 태종 이방원이 아들 충녕대군(김민기, 미래의 세종)에게 전격적인 양위를 선언한 시점에서 시작된다. 신하들은 양위를 강력하게 반대하며 편전에서 아들 충녕과 독대한 태종은 분노를 드러낸다. 태종은 "양위를 반대하는 저놈들이 바로 간신이다. 저놈들이야말로 불충한 자들"이라며 "나의 아들인 충녕 너까지 저 무리와 함께 하는 것이냐. 내 진심을 짓밟고 있는 것이냐"며 용포를 벗어던지고 머리를 풀어헤치며 광기어린 모습을 드러낸다.
 
태종은 세자에게 "성군이 되거라. 네가 성군이 되면 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그렇지 못하면 나는 괴물이 될 것이다. 이제 너의 차례다. 나는 여기까지"라고 고백하며 절절한 진심을 드러낸다. 여말선초의 난세를 헤쳐나오며 수많은 피를 뒤집어쓴 괴물이 되어야했던 태종이 아들 세종을 통해 자신이 못다이룬 태평성대의 미래를 기약하고, 회한과 희망을 동시에 드러내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야기는 1388년 고려 시대 말기의 과거로 거슬러올라간다.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의 명으로 대군을 이끌고 요동정벌에 나선 상황이었고,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가 위기에 빠지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방원의 아내 민씨(박진희)는 마음을 굳게 먹고 계책을 준비하라며 이방원을 다독였다.
 
우왕은 서경(평양)에서 최영과 머물며 위화도에 있는 이성계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최영은 "지금이라도 요동정벌군에 합류하여 직접 통솔하겠다. 그리하면 이성계도 딴 마음을 먹지 못할 것"이라고 요청하지만, 우왕은 최영은 자신의 곁에 남아야한다며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우왕은 장마가 그쳤기 때문에 이성계도 더 이상 진격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번에도 명을 거부하면 인질로 삼고있는 이성계의 가족을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우왕은 곁에 있던 환관을 본보기로 직접 처형하며 폭군의 광기를 드러낸다. 우왕은 아버지인 공민왕이 환관과 측근들에게 시해당했던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으며, 최영에게 극단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아들인 삼남 이방의(홍경인), 사남 이방간(조순창) 및 측근들과 함께 마침내 회군을 결정한다. 이성계는 "우린 개경으로 돌아간다"라고 선언하며 "지금 명나라의 전쟁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을 더 큰 고통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우린 회군을 단행하여 전쟁을 주장한 간적들을 척결하고 종사와 생민의 안위를 지킬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성계의 회군 소식에 분노한 우왕은 이성계의 아들들을 잡아오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서경에서 우왕에게 억류되어있던 이방우(엄효섭)와 이방과(김명수)는 몰래 탈출하여 이성계 진영으로 합류한다. 최영은 우왕을 모시고 개경으로 돌아가 이성계에 대한 항전 의지를 드러낸다. 우왕은 이를 갈며 "이성계의 가슴에 비수를 꽃고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악몽을 안겨주겠다"며 저주한다.
 
개경의 관직을 맡고있던 이방원은 아내 민씨를 친정으로 먼저 피신시킨데 이어, 궁안에서 자신을 체포하려는 이들을 뿌리치고 가까스로 도망쳤다. 이방원은 친모 한씨(예수정)와 계모 강씨(예지원 분) 등 가족들을 데리고 도피에 나선다. 한씨가 "너희 아버지가 정녕 역적이 되셨단 말이냐" 하면서 충격받은 모습을 보이자, 이방원은 "이미 역적이 되었으니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하나다. 더 강하고 더 큰 역적이 돼서 누구도 우리를 역적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경에 있던 이방원의 처가인 민씨 일가는 이성계와 고려 왕실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민씨는 "곳간을 비우고 병장기를 숨겨야한다. 조정에서 곧 징발이 있을 것인데 그에 응하면 시아버님(이성계)를 배신하고 최영을 돕는 꼴이 된다"고 주장한다. 아버지 민제는 개경은 아직 우왕의 땅이라며 결정을 주저하지만 민씨는 "어차피 이성계 장군이 패하면 우리 가문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깨우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이성계는 대군을 이끌고 개경에 도착하여 공격을 지시한다. 도주하던 이방원은 자신과 가족들을 뒤쫓아온 관병들과 마주친다. 절망적인 상황에 몰린 이방원은 무장에게 "이성계 장군이 이미 개경을 점령했으면 어쩔 것이냐. 자신의 처자식을 죽음으로 내몬 자를 어찌할 것 같으냐"며 설득하고 병사들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방원은 무장과 일대일 결투 끝에 칼을 놓치고 위기에 몰린 모습으로 긴장감을 높였다.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

 
<태종 이방원>'은 고려라는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던 '여말선초(고려말 조선초)' 시기, 누구보다 조선의 건국에 앞장섰던 리더 이방원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 작품이다. KBS로서는 <장영실> 이후 무려 5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정통사극이다. <공부의 신> <솔약국집 아들들> '제국의 아침' 등을 연출했던 김형일 감독과 <최강 배달꾼>' <조선 총잡이> 등을 집필한 이정우 작가가 <전우> 이후 오랜만의 의기투합한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이방원 역할을 맡은 주상욱은 퓨전사극인 <대군-사랑을 그리다>에서 세조를 롤모델로 한 진양대군 이강 역할을 맡은바 있지만, 커리어는 주로 현대극에서의 세련된 도시남 이미지로 익숙한 배우다. 역대 최고의 이방원으로 꼽히는 <용의 눈물>의 유동근, 냉혹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정도전>의 최종보스 안재모와는 또다른 자신만의 이방원을 창조해낼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정통사극에서 볼 수 있는 중견배우들의 열연과 배우 개그도 빼놓을 수 없는 볼 거리다. 이성계 역의 김영철은 <나의 나라> 이후 두 번째로 이성계 역을 맡게 됐다. 김영철은 비슷한 연배의 '사극 본좌' 유동근과 함께 태조-태종-세조 등 조선 시대 전반기의 주요한 왕들을 모두 연기했다는 공통점으로 자주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전작<정도전>에서 유동근이 연기한 이성계가 우직한 카리스마 뒤에 눈물과 정도 많은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냈다면, <나의 나라>와 <태종 이방원> 첫 회에서 보여주는 이성계의 모습은 '시퍼렇게 날이 선 칼 한 자루'를 연상시킨다. 개경 공성전을 앞두고 아직 가족들의 안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성계의 아들들은 인질로 잡혀있을수도 있다며 공격을 만류하지만, 이성계는 "너희들 눈에는 저 병사들이 보이지 않느냐. 저들도 누군가의 핏줄이다. 하지만 회군하라는 내 명령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그들 앞에서 날 부끄럽지 만들지 말라"며 공격을 지시한다. <정도전>과는 또다른 색깔의 이성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또한 이성계의 의제인 이지란 역을 맡은 배우 선동혁은 <정도전>에 이어 또 한번 같은 배역을 맡게 됐다. 선동혁이 특유의 동북면 사투리로 '성니메(형님)'라고 외치는 친숙한 대사는 <정도전>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선동혁은 <용의 눈물>에서는 이방원의 측근인 이숙번을 맡기도 했으며, 주요 출연진중 KBS 여말선초 사극 트릴로지(용의 눈물, 정도전, 태종 이방원)에 모두 개근한 유일한 인물이다.

이밖에도 전작 <정도전>서 이성계의 측근 배극렴을 맡은 송용태가 최영을, 공민왕 역의 김명수가 이성계의 아들 이방과를, 이방원의 측근 하륜 역할을 맡았던 이광기가 <이방원>에서는 정도전 역할 등을 맡으며 하필 '같은 시대 반대 진영'의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배우들이 많다는 모습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

 
한국사 최대의 격변기 중 하나인 여말선초는 수많은 드라마와 대중문화의 소재로 여러 번 활용된 시대적 배경이다. KBS가 배출한 수많은 인기 정통 사극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인 <용의 눈물> <정도전> 역시 여말선초를 다루며 주요 등장인물과 중심사건들이 그대로 겹친다. 자연히 <태종 이방원>은 레전드급 작품들과 완성도나 연기력에서 비교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태종 이방원>은 <용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위화도회군 이야기를 시작점으로 삼았다. <용의 눈물>은 이성계의 집권에서 조선의 개국, 태종의 일생과 승하까지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무려 159부작에 담아냈다. 고려 후기와 왕자의 난, 정도전의 죽음까지 다뤘던 <정도전>도 50부작이었다. 반면 시대 흐름에 맞춰 32부작으로 편성된 <태종 이방원>은 짧은 분량내에 수많은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압축해서 몰입감 있게 풀어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태종 이방원>이 오랜만의 사극 귀환에 대한 대중의 높은 기대와 전작들과의 비교라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KBS 정통 사극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을까.
태종이방원 주상욱 위화도회군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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