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와 주연 배우 이름만으로 영화 <램>은 이목을 끌기 충분해 보인다. 국내 관객에겐 <미나리>로 잘 알려진 A24, 그리고 SF 액션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의 주역 누미 라파스가 출연하는 만큼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아이슬란드 외진 시골 마을에 사는 마리아(누미 라파스)와 잉그바르(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는 유산의 아픔을 지닌 부부다. 양떼를 치고, 감자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소중한 삶의 터전을 꾸려나가지만 좀처럼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외부와 단절을 선택하고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는 일상에서 두 사람에게 신비한 존재가 다가온다. 다름 아닌 키우던 양이 낳은 반인반수의 아이다.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채 죽은 첫 아이의 이름 따 아다라는 이름을 붙이고 두 부부는 반은 사람, 절반은 양의 신체를 가진 존재를 정성 들여 키운다. 화면은 종종 세 존재 사이에 감도는 불안한 기운을 포착해 관객에게 제시하는데 영화 중반 잉그바르의 친형인 피에튀르(비욘 홀리뉘르 하랄드손)가 불청객처럼 부부의 집을 방문하며 불안감은 고조된다.
이 영화를 명확히 호러 장르로 구분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상업 장르 영화 문법으로 따지면 <램>은 호러 영화가 품을 법한 공포 요소를 거의 대부분 따르지 않은 채 분위기와 맥락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마리아-잉그바르-피에튀르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긴장의 기운, 이들이 키우는 애완견과 고양이, 그리고 양 사이에서 피어나는 불안의 기운이 관객의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특히 두발로 걷는 나이가 됐음에도 사람의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다는 영화 후반부까지 부부에게 축복의 존재일지 비극의 존재일지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순하고 맑은 양의 눈망울을 했음에도 종종 애완견과 고양이는 뭔가 느끼는 듯 아다를 피하곤 하기 때문이다. 지극 사랑으로 키워낸 아다, 그를 둘러싸고 등장하는 또다른 존재가 이 영화의 작은 반전을 이끈다.
영화적 에너지나 설정을 놓고 보면 알리 아바시 감독의 <경계선>이 떠오른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트롤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을 모두 가진 존재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마치 <램> 속 아다에게도 투영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낯선 존재를 경계하는 사람들, 기꺼이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해당 존재는 결국 어떤 영향을 사람들에게 미치기 마련이다. 상이한 두 존재 사이의 긴장감이 바로 이런 영화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경계선> 속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정체성에 대해 충분히 상처 입고, 숙고할 시간을 가지며 성장해가는데 <램> 속 아다는 끝내 부부에게 어떤 실마리를 주진 않는다. 오히려 영화 마지막 장면인 마리아의 표정에서 강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다를 품은 모성애의 본질을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 봄직하다.
한줄평: 독창적이면서도 과감한 심리 호러
평점: ★★★☆(3.5/5)
영화 <램> 관련 정보 |
감독 및 각본: 발디마르 요한손
출연: 누미 라파스, 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
수입 및 배급: 오드
북미 배급: A24
러닝타임: 106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1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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