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했던 당시이대로 끝인 줄 알았지요
남희한
그간 실력이 늘어 편안해진 것은 아닐 테고, 마음 수양이 됐다고 보는 게 맞겠다. 물이 반이 담긴 물 잔을 보고 언제나 부족함을 느꼈는데, 어느 순간 충분하다고 여기게 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나를 돌아보며 쓰기 시작한 글의 힘이었다.
글쓰기의 힘은 이전에도 깨달은 적이 있다. 회사에서 치른 시험에서 낙제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는 '글감으로 쓸, 재밌는 일이 생겼네...' 하고 생각했을 때였다. 자책의 수순을 거부하고 자기합리화로 노선을 변경한 그때, 글쓰기가 삶에 미치는 선한 영향을 알 수 있었다.
좋은 글을 보며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지만, 별로라고 느낀 글을 보며 '이런 글은 나도 쓰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물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쓰겠다'는 건방진 생각에 대해 깊이 있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남의 인생만 들여다보던 내가 내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 본 계기이기도 했다.
누구나 이야기 속 주인공
언제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슬픔을 딛고 희망을 얘기하고, 갖은 어려움도 긍정으로 극복해내며, 크고 작은 일로 인생의 진정한 묘미를 깨닫는 모습이고 싶었다. 마음이 저릿하게 안돼 보이다가도 미소 짓는 주인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면, 나도 저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결국엔 깨닫고 말았다.
"가만, 이야기 같은 삶이 별건가? 내 삶을 이야기로 만들지 뭐!"
생각을 바꿔보니, 사는 모습을 이야기로 만들어 버리면 내 삶이 이야기가 되는 거였다. 그러면 일상의 힘듦은 이야기 속 시련이 되고, 그 힘듦을 이겨내고 나면 시련을 극복해낸 이야기가 완성된다. 혹여 시련을 이겨내지 못해도 그것대로 아련한 결말이 될 터였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같이 영화 같은 삶,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거다. 에이~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데, 한 번 잘 생각해보자. 영화 속 모든 이야기가 적에게 쫓기고, 기억을 잃고, 돈 앞에서 인생을 바꿀 선택을 하진 않는다.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심야식당) 밥을 지어 먹고(리틀 포레스트)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는(미생), 평범하다고 치부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그 평범한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그런 생각으로 내 인생의 발자취를 굽어 봤다. 그랬더니 그나마 스펙터클하고 애잔하면서 결말을 짐작하기 힘든 서사까지 갖춘 삶이 하나 보였다. 아니, 도드라졌다. 내 인생의 10분의 1, 바로 주식을 시작하고 4년간의 이야기였다.
실패와 슬픔이 보람과 기쁨이 되는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