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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이것은 가족 이야기다

[TV 리뷰] KBS1 <태종 이방원>의 여말선초는 어떻게 다른가?

22.01.10 14:48최종업데이트22.01.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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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황금돼지해의 소망이 있다면, 제가 꿈이 있다면, 아니 우리 모든 연기자들의 소망이 있답니다. 그것은, 그래도 올해는 대하 드라마가 제발 부활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18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유동근의 수상 소감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대배우가 큰 자리를 빌어 많은 장르팬들의 염원을 대변해주었기 때문이다. <용의 눈물> <정도전> <연개소문> 등, 유동근은 지금까지 대하 사극에서 여러 차례 빛을 발해 왔던 배우였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양 종목이 된 대하 사극의 모습에 느끼는 안타까움도 더욱 컸을 것이다.

또 여말선초? 부담 가운데에서 출발하다
 

KBS1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1

 
그리고 지난 겨울, <태종 이방원>이 여정을 시작했다. 2016년 3월 종영된 <장영실>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대하 사극이다. <태종 이방원>은 우리에게 몹시 익숙한 시대를 다뤘다. '또 여말선초(麗末鮮初 고려 말, 조선 초)인가'라고 말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한국 사극의 만신전에 오른 <용의 눈물> 을 비롯, 최근 10년 동안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나의 나라> 등 대하 사극과 퓨전 사극을 가리지 않고 다뤄진 소재이니만큼 신선함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대가 몹시 매력적인 소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구체제와 혁명 세력의 대립이 존재한 호걸들의 시대였다. 형제와 형제, 아버지와 아들이 맞서는 비극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사의 슈퍼스타인 이방원이 있다. 동업자와 형제를 죽이고 왕좌에 올라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인물이며, 현 세대에게는 '킬방원'이라는 별명 역시 얻었다.

<태종 이방원>은 적지 않은 부담 속에서 출발했다. 익숙한 이야기, 인기많은 인물을 지루하지 않게 다뤄야 했다. 우선 역작 <정도전>(2014)과 비교될 운명에 처해 있다.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을 연기한 배우 선동혁 등, 전작을 노골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캐스팅도 있으니 더 그렇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과 어떻게 차별화하는가, 이것이 관건이었다. "가(家)를 넘어 국(國)으로, 국가(國家)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슬로건이 예고했듯, <태종 이방원>은 국가의 이야기와 집안의 이야기를 중첩시켰다. 대부분의 여말선초 드라마에서는 크게 조명받지 않았던 이방원(주상욱 분)의 형제들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태도에 근거한다. 훗날 조선의 2대 임금 정종이 되는 둘째 형 이방과(김명수 분)의 경우, '원하지 않는 왕위에 오른 형'이 아니라, 이성계(김영철 분)와 함께 전장을 누빈 무장의 거친 면모가 묘사된다. 공양왕(박형준 분)을 협박하는 장면이 등장한 것도 이를 철저히 고려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의 과정에서 희생된 인물들도 있다. 우왕과 창왕, 최영 등 고려의 인물들은 드라마 방영 초반에 신속한 죽음으로 퇴장했다. 고려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포은 정몽주(최종환 분) 역시 극 초반인 8화에서 죽음을 맞았다. <정도전>의 주역이자 조선의 설계자였던 삼봉 정도전(이광기 분) 역시 서사의 중심이 아니라 조력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수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요즘, 시청자들은 대서사시를 원하지 않는다. 159부작이었던 <용의 눈물>과 비교했을 때, <태종 이방원>의 간결함은 유독 두드러진다. 전통적인 대하 사극의 진득함 대신 빠른 템포를 선택했다. 이방원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생략되거나 신속하게 처리된다. 그러다보니 이성계와 정몽주, 이성계와 정도전 등 신의 깊은 인간 관계가 깊이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태종 이방원', 1막을 끝내다

최근 방영된 9, 10회 분에서는 태조 이성계(김영철 분)가 마침내 조선을 건국하고, 이방석을 세자로 임명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건국에 거대한 업적을 세웠으나, 공을 인정받지 못한 이방원의 분노는 자식을 잃은 고통과 겹쳤다. 복합적인 감정에 오열하는 이방원의 모습, 그리고 이성계의 미소를 교차해서 보여준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방석을 세자에 앉힌 신덕왕후 강씨(예지원 분)는 한때 이방원과 협력했으나, 9화를 기점으로 극의 흐름을 좌우하는 메인 악역으로 변신했다.

최근 방영분에서 방원과 신덕왕후 강씨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계모에게 아들의 예를 다했던 방원은 "사악한 여자"라는 표현조차 서슴지 않는다. 정도전의 이방원이 무인정사(제 1차 왕자의 난)를 일으킬 수 있는 심정적인 근거를 쌓아나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 태종은 신덕왕후 강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를 박대했다. 강씨의 묘를 강제 이장했고, 예우도 왕비에서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정적이었던 정도전의 자손들에게 관직을 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강씨에 대한 태종의 적개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태종 이방원>을 연출한 김형일 PD는 이 작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명작 <대부>(1972)를 참고했다고 고백했다. 가문의 수장 이성계가 비토 꼴레오네(말론 브란도 분)를 닮았다면, 아들 마이클 꼴레오네(알 파치노 분)는 이방원의 모습을 닮았다. 가족을 지키고자 분투했으나, 이 과정에서 외로워졌다는 것도, 형제를 등지는 잔혹한 결정마저 해야 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태종 이방원>은 이제 조선 건국이라는 1막을 끝내고, 새로운 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비운의 마키아밸리스트가 탄생되는 과정이 남아 있다.
태종 이방원 이방원 주상욱 김영철 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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