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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엄마를 보호하던 딸이 결혼을 했다

이제라도 딸에게 평범한 친정엄마가 되기를 희망하며

등록 2022.02.20 11:05수정 2022.02.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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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부모의 결혼 생활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유아기와 아동기에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는 사랑을 줄 줄 아는 아이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즉 가정에서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셈이다. 


딸아이도 엄마인 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증청각장애인인 엄마의 귀 역할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할 적부터 전화를 받아야 했으니까. 말을 갓 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초인종 소리가 나면 내게 달려와 알려주었다. 또 나 대신 전화를 하고, 대문 앞에 누가 오면 "누구세요?" 묻고 그 대답을 나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린 딸아이에게 집은 마냥 재롱을 부리며 티없이 자랄 수 있는 그러한 안온한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중증장애가 있는 엄마가 약자처럼 인식되어 뭐든지 엄마의 도움 없이 혼자 해내야 했다. 엄마의 장애를 보조하는 그 역할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심적으로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내게 보여주지 않은 가정통신문

어느 날, 아이의 방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서랍에서 학교에서 온 가정통지문을 발견하였다. 그것을 읽은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상심하였다. 하지만 내가 어떤 결연한 의지를 갖고 살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학부모 모임이라든가 자모회 같은, 엄마가 참석해야 하는 가정통신문들이 내게 전달조차 되지 않은 채 아이 방 서랍에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한동안 생각하다 용기를 내어 학교 담임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담임은 놀라며 말했다. 아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엄마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심지어 엄마가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까지 하셨다고.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아이가 다쳐서 긴급연락을 할 때도,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에게 연락을 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학교 바로 앞에 집이 있는데도 아이는 집이 아닌 멀리 떨어진 회사에서 근무중인 아빠를 찾았다.
 

딸이 결혼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가기를 나는 진정으로 바라고 기도했다. ⓒ envato elements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이가 볼 때 나는 약하고 힘이 없고 돌봐주어야 하는 약자로서의 엄마라는 것을. 아이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보호자로서의 역할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에게 장애인 엄마는 기댈 수 있는 안온한 쉼터가 아니었다. 그보다 항상 무엇을 보조해줘야 하는 불편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아이는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중간다리의 역할과 때로는 나를 대변해야 하는 역할로 동심이 재대로 꽃피우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는 내가 이혼을 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더욱 어른스럽게 변했다. 마치 나의 딸이 아니라 나의 친정엄마가 된 것처럼 시시콜콜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장애인 엄마를 딸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후 나는 달라졌다. 전보다 사회 생활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지낼 수 있도록 역량을 개발하고 향상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노력을 했다.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감을 되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여자고등학교 중퇴로 중단한 학업도 고졸검정고시를 거쳐 전문 학사, 학사, 석사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고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엄마는 나 없으면 안돼!' 하는 마음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떤 강박에 가까운 보호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졌는지 자신의 결혼보다는 나와 함께 늙어가는 삶을 더 자주 이야기 했다.

딸, 엄마는 평생 돌봐야 하는 존재가 아니야

그러던 아이가 지난해 가을 결혼을 했다. 불혹을 몇 달 앞둔 39세에 건강하고 착한 청년을 만나 손을 잡고 한 지붕 안의 삶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참 다행이었다. 딸이 결혼하면서 나는 진정으로 바라고 기도했다.

장애가 있는 엄마를 둔 이유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엄마의 장애를 보조하면서 어른처럼 살아야 했던 아이. 그 아이가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 놓고 동고동락하는 반려를 맞아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좀 더 집중하기를. 

아이가 결혼하면서 내 안의 그늘이 조금은 옅어짐을 느낀다. 숨을 시원히 쉴 수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주말이면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생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적으로 나를 만나러 온 딸아이의 삶도 달라졌다. 주말마다 나를 만나러 온 횟수가 줄어들고 자신의 남편과 가정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반갑다.

이제부터라도 평범한 엄마와 딸의 관계가 시작 되기를 희망한다. 친정엄마 또는 우리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에 안식을 얻기를 소망한다. 힘들 때 연상되는 보통의 엄마로 딸의 마음 안에 자리잡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장애인 엄마를 두었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자녀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보통 엄마보다 약한 존재는 아니다. 또한 평생을 돌보거나 보조해야 하는 그러한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생명력이 끈질기고 딸들의 삶을 열렬히 응원하며, 그 누구보다도 희망과 열정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친정엄마 #여성장애인엄마 #여성장애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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