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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언제부터 '악마'가 되었을까?

[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2]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의 숨은 맥락

등록 2022.02.21 10:18수정 2022.02.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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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정인이 사건"으로 불렸던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은 2020년 10월 13일 서울시 양천구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살인 사건으로 2021년 11월 26일 2심 재판부가 양부에게 징역 5년, 양모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으나 검찰과 양부모 모두 상고한 상황이다. 사진은 2021년 5월 14일 양부모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린 서울남부지법앞에서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이 '사형' 등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이전 글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에 숨은 진실"에서는 "그들(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왜 그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봤습니다.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의 숨은 맥락에 대한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아이를 살해한 '그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는 어떻게 그런 끔찍한 학대 행위를 할 수 있었는가? 이 글에서는 주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고, 그와 관련되어 있는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들 중 몇 가지를 찾아보겠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뒤이어 공개된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은 이들이 '악마'의 모습을 보았다고 느꼈습니다. 숨진 아이는 장기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고, 여러 군데 골절 부위가 있었으며, 온몸이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그 아이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느 정도의 폭력이 가해졌을지 상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 작고 가냘픈 몸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학대하고 있는 누군가를 상상한다면, 우리는 그가 마땅히 악마, 또는 적어도 악마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그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이를 자신의 장신구처럼 대하는 태도, 아이를 두고 했던 말, 아이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그리고 사망 이후에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인 비상식적인 행동들은 그가 그저 '이상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검찰이 심리분석을 실시하고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그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것으로 의심된다고 하였고,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여러 전문가들도 그가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자아인식과 상황인식이 부족하며, 아이를 극단적으로 폭행한 것을 보면서 충동조절과 자아통제가 안 되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저로서도 이러한 판단과 의심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전문가들에 의한 엄밀한 분석 결과가 공개된 것도 아니고, 판결도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정확한 판단은 미뤄두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된 정황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인간을 처음 본 것은 아닙니다. 인류사와 세계사, 한국사, 그리고 어쩌면 가족사와 개인사에서 우리는 폭력의 가해자들을 보아왔으며, 우리 자신이 희생자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 일부는 가해자였거나 지금도 가해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하는 사건에서 가해자의 악마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희생자가 생후 1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였으며, 그 가해자가 그 아기를 자신의 자녀로 삼아 잘 양육하겠다고 나선 바로 그 '천사'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악의 평범성'

여하간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들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들에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이 사람은 언제부터 '악마'가 되었을까요?

그런데 막상 이 질문을 던지고 보니, 혹시 "원래부터 악마인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엄밀하게 보면, 그가 악마화 되기 시작한 것은 그 아이를 자신의 집에 데려온 때부터입니다. 그가 설령 '처음부터'(그 처음이 언제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악마의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그 본성이 발현될 기회가 없었으니 외적으로는 전혀 악마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실제로 악마로 살아간 기간은 9개월에 불과합니다.

그 아이와 가해자인 입양모 사이에는 8~9개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자신의 친생자녀에 대해서는 심하게 학대한 흔적이 없는 이 사람은 왜 입양한 아기에 대해서만 이렇게 가혹한 행동을 한 것일까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여자는 원래 사이코패스였고, 약자에 대한 공격성을 가진 악마였다'라고 한다면 답은 간단해 보입니다.

애초에 그가 그 아이를 입양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예비입양부모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담당자들이 사이코패스를 가려낼 수 있는 절차와 도구를 사용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절차와 방법을 사용했더라도 실제로는 선별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많은 문헌에서도 나쁜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그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단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주위 사람들은 '이상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얼마나 빠르게 찾아내고, 얼마나 민감하게 대응하며, 신속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이후 과정과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악의 평범성'으로 초점을 바꿔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른 아동학대 사건들과 더 포괄적인 범위의 폭력 사건들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KBS <시사기획 창>에 언급된 적이 있는 "법의부검자료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사망의 현황과 유형"이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입니다.

이 연구에 의하면 2016년에 사망하여 국내에서 부검을 한 341명의 아동 중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자 수가 최소 84명에서 최대 148명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공식 아동학대 사망 통계치보다 훨씬 많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눈에 띄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첫째, 아동을 사망에 이를 정도로 학대한 가해자의 대부분이 친생부모라는 것은 예측할 수 있는데, 가해자의 평균 연령이 32세 정도였으며, 친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에서 57%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입니다. 둘째, 가장 큰 사망 요인은 신체적 학대보다 방임 및 부주의였다(45.3%)는 점이며, 주 가해자가 친모라는 것입니다.

또한 KBS 아동학대 기획팀은 후속기사에서 아동학대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피고인인 가해자들이 주장한 학대의 이유 중 대부분(86.1%)이 아동의 행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 아이가 잘못해서 때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고, 전적으로 아이가 잘못한 것이며, 아동에게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인리히 법칙'

이 자료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다', '악은 일상화, 보편화되어 있다', '악은 곳곳에 숨어 있다', '악은 작은 것들이 뭉쳐서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악'을 '폭력'으로 바꿔도 될 것입니다.

우리가 최근 보아온 모든 폭력의 밑바탕에는 '타자화'와 '공감 없음'이 깔려 있습니다. 가해자는 폭력의 피해자인 상대방을 나와 다른 존재로 보며,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배우자 폭력과 아동학대가 그러하며, 직장과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갑질과 신체적, 언어적 폭행과 성폭력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으며, 처음부터 강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 작은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점점 커지고, 그러면서 모두가 무뎌지면서 결국 크게 터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이코패스인 부모의 아동학대는 그러한 태산의 꼭대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아동학대가 만연해 있었고,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가끔 그 산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 덩어리를 보면서 놀라게 될 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의 거대한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그보다 덜한 29건의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들의 전조로 그보다 경미한 300건의 사고가 일어난다는 이론입니다.

이 법칙의 교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경미한 사고들을 간과하지 말라는 점일 것입니다. 아동학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말 한마디, 생각지도 않은 사이에 날아가 버린 손바닥, 또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이에 놓쳐버린 아이의 안전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큰일이 되고 맙니다.

'그 아이'의 입양모가 사이코패스였다고 하더라도 이 법칙은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점점 악마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그 증거를 드러내었습니다. 그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민감성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현실은 더 복잡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더 복잡한 맥락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양천입양아동 #아동학대 #은밀한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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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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