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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를 연상시킨 이만기 31년 만의 마지막 승부

[TV 리뷰] MBN 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

22.02.27 12:29최종업데이트22.02.27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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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의 한 장면. ⓒ MBN

 
씨름의 '올타임 넘버원' 이만기가 은퇴 31년 만에 모래판으로 돌아와 현역 선수를 상대로 명승부를 펼쳤다. 2월 26일 방송된 MBN 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 4회에서는 이만기와 허선행의 한판 승부가 공개됐다.
 
시합을 앞두고 이만기는 아들 이동훈과 함께 경남 김해의 한 사찰을 찾아 특별훈련을 진행했다. 지옥의 계단오르기, 장작패기 등 그 시절 추억의 옛날 훈련들을 재현하며 이만기는 "그동안 경기장을 오래 떠나 씨름하는 방법을 잊고 있었는데, 오늘 트레이닝을 해보니 어떻게 해야겠다는 구상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이만기는 대학 씨름부를 찾아 대결 상대인 허선행과 비슷한 체형의 선수들과 실전 훈련을 진행했다. 세월의 흐름을 속일 수 없듯이 아들보다 어린 젊은 후배들에게 연패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으나 세 번째 도전만에 첫 승을 따내며 다소 자신감을 회복했다. 후배들은 허선행의 장점에서 스피드에서 훨씬 우위에 있다며 초반을 잘 버틸 것을 조언했다. 배성재는 "허선행은 장기전보다 속전속결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만기는 김동현과 함께 스트레칭 훈련을 진행했다. 시원함과 고통스러움을 넘나드는 이만기의 비명에 모두 폭소를 감추지못했다. 김동현은 "운동선수들은 평생 써야할 무릎과 허리를 젊었을 때 다 쓴다"며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만기는 "현역 때는 근육만 단련하려고만 했지, 이런 스트레칭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아쉬워하며 체계적인 훈련방식을 접할 기회가 부족했던 옛날 운동선수들의 비애를 고백했다.
 
이만기는 이번엔 매니저 김민아와 함께 한 초등학교를 찾아 씨름 유망주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1980년대 못지않은 초등학생 팬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으며 즉석 팬미팅을 가졌다. 이어 이만기는 씨름 선수를 꿈꾸는 유망주 이은찬-이은후군을 만나 "씨름하다보면 힘든 순간이 많지만, 사회에 나가서 어떤 시련을 만나더라도 견뎌낼 수 있는 정신력과 체력이 무장되어 있을 것"이라며 격려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이만기는 감독 역할을 맡아준 선배 이승삼과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이만기는 "현역 시절에도 태백급인 허선행처럼 작고 빠른 선수를 많이 상대해보지 못했다"며 부담감을 드러냈고, 이승삼은 적지않은 나이 때문에 부상을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경기"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며 함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경기장으로 가는 입구에는 이만기의 현역 시절 영광의 순들이 사진으로 배치되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대결 상대인 허선행도 김기태 감독-윤정수 코치와 함께 등장했다. 전략을 묻는 질문에 허선행은 "길게 끌 생각이 없다. 체력전으로 가면 너무 쉬울테니까"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기태 감독도 "절대 봐주지마라. 적당한 선에서 살포시 눕혀드려라"는 농담으로 여유를 보였다.
 
허선행은 대결을 앞두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지는 걸 정말 안 좋아한다"며 승부욕을 드러냈다. 이만기는 허선행의 나이인 "만 22세에 나는 장사를 10번 넘게 했다"며 기선제압에 나섰다. 대결을 앞둔 사전 여론조사에서 이만기와 허선행의 지인들은 대부분 허선행의 승리를 예상했다. 특히 이만기는 "이빨빠진 호랑이"라는 지적에 발끈하며 "아직 임플란트 하나도 안했다"고 발끈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본대결은 3판 2선승제, 경기 시간은 라운드당 1분으로 진행됐다.이만기는 "씨름판 위에서 선후배는 없지만, 이만기는 반드시 있다"며 레전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첫 번째 판은 의외로 신중한 체력전 양상으로 진행됐다. 두 사람은 시작과 동시에 팽팽한 힘싸움을 펼치다가 동시에 샅바를 놓쳤고 이만기는 빠르게 수비로 전환했다. 이태현 해설위원은 "두 선수 모두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만기가 먼저 공격을 시도했으나 허선행이 수비하며 장외아웃으로 경기가 중단됐다. 작전시간에 이승삼은 "떨어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공격하지 말고 상대를 가까이 붙이라"고 조언했다. 예전보다 근력이 부족한 만큼 확실한 기회를 노려 힘을 집중하라는 뜻. 이태현도 각자 "본인이 가장 자신있는 기술로 한 방을 노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시합이 재개되고 각자 주특기인 이만기의 들배지기-허선행의 밭다리가 맞붙었다. 서로 첫 공격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만기가 놓친 샅바를 다시 잡기 위하여 달려들자 허선행은 곧바로 끌어치기 역공을 구사하며 첫 판을 따냈다. 이만기는 "다리가 느려졌다"며 스스로 패배의 원인을 분석했다. 나이가 들어서 순간적인 방향전환 속도가 예전같지 않은 것. 지켜보던 죽마고우 이희윤도 안타까운 마음에 이만기에게 다가와 이승삼과 함께 여러 가지 진지한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두 번째 판에서 이만기는 시작과 동시에 주특기인 들배지기 공격을 시도하며 허선행은 들어올렸다. 허선행이 첫 방어에 성공했으나 중심을 잃고 균형이 무너진 틈을 놓치고 않고 이번엔 밀어치기로 쓰러뜨리며 3초 만에 이만기가 승리를 따냈다. '만개의 기술'을 가졌다는 이만기의 명성을 확인시킨 순간이었다.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이미 이만기의 체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승삼 감독과 페이스메이커들은 장기전이 될수록 불리하다며 초반 승부를 주문했다. 힘싸움을 펼치던 두 사람은 이만기가 먼저 샅바를 놓치며 불리한 상황에 몰렸다. 첫 두 판에서 연이어 선제공격을 허용했던 허선행이 이번엔 먼저 주도권을 잡고 공세를 퍼부었으나 이만기가 노련하게 버텨냈다.

두 선수는 1분내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진 허선행은 "마음이 조급해지더라. 넘기고 싶은데 넘길 수가 없으니까"라며 나이를 잊게하는 이만기의 힘과 기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연장전에 돌입했다. 시작과 동시에 허선행이 빠르게 기습공격을 펼쳤다. 손을 풀고 수비로 들어가는 척하다가 상대가 빈틈을 보이자 바로 공격으로 전환하는 전략이었다. 이만기가 샅바를 놓치자 거세게 몰아붙인 허선행은 목감아치기로 이만기를 끝내 쓰러뜨리며 승리를 따냈다. 휘슬이 울린지 불과 4초 만이었다.
 
이만기와 페이스메이커들은 경기를 복기하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승리보다는 값진 도전에 의미를 부여하며 '졌잘싸'라고 격려했다. MBN와 대한적십자사 땡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씨름 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이 전달됐다. 이만기는 31년 만의 샅바를 잡은 소감으로 "행복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 경기인 씨름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만기는 승리한 허선행에 직접 메달을 수여하며 따뜻하게 격려했다.
 
마지막으로 이만기를 위한 깜짝 선물이 마련됐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현장에서는 함께 하지 못했던 둘째 아들 이동훈이 영상 편지로 아버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동훈은 손편지를 통하여 "천하장사의 대명사가 된 아빠가 세월이 흘렀음에도 다시 도전하는 모습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아빠는 제게 영원한 천하장사"라며 진심을 전했다. 관객석에서 지켜보던 장남 이민준도 "아버지가 대단하신 분인 건 알았지만 현장에서 보니까 더 뭉클해지더라. 안 다치고 경기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대는 국대다>'는 각 분야의 스포츠 '레전드'를 소환해, 현역 스포츠 국가대표 선수와 맞대결을 벌이는 초유의 스포츠 리얼리티 예능을 표방했다. 특히 이만기 편은 마치 권투 영화의 레전드 <록키 발보아>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연상시키는 데자뷰같은 감동을 선사했다는 평가다.

탁구 레전드 현정화에 이어 두 번째 레전드로 등장한 이만기의 도전은 사실 화제만큼이나 우려도 동시에 자아냈다. 다른 종목과 달리 씨름은 신체접촉이 있고 격렬한 투기종목이라 체력과 부상의 위험이 모두 더 높다. 은퇴한 지 30년이 넘은 노장을 현역 선수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기시킨다는 것은 승패의 문제를 넘어 지나치게 무모해보였다. 심지어 이만기와 허선행의 나이차는 거의 40년에 가까웠고, 허선행은 이만기의 현역 시절에는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이만기의 도전은 이런 비현실적으로 보이던 대결마저도 감동으로 바꿨다. 이미 누구나 모두 인정하는 한국 씨름의 간판이자 상징인 이만기에게 굳이 환갑이 되어 현역 선수과 맞대결했다가 실망스러운 모습이라도 보인다면 오히려 망신이 될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출연을 수락한 이유에 대하여 이만기는 "아빠들은 외롭다. 건강함과 건재함을 보여주면서 대한민국 모든 아버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비록 예상대로 허선행을 넘지는 못했지만 20대의 현역 태백장사를 한때나마 긴장하게 할 정도로 몰아붙인 이만기의 노익장과 근성은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만기의 현역 시절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던 젊은 시청자들에게는 과거 한국씨름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만기가 얼마나 대단한 레전드였는지 직접 체감할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명승부를 마친 이만기는 끝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씨름인다운 정체성과 품격을 잊지 않았다. 이만기는 "씨름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났다. 앞으로도 씨름이 더 사랑받을수 있게 노력하는 영원한 천하장사 이만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훈훈하게 방송을 마무리했다.
국대는국대다 이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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