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피해자에 "성경험 있냐" 묻는 판사, '있는 법으로 충분' 하다는 국회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전문위, 소송 과정 개선 권고..."사건 무관 질문 제한 규정 없어"

등록 2022.03.02 13:17수정 2022.03.02 13:18
0
원고료로 응원
a

법원 ⓒ 소중한


"여성이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맺는 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피해자 외에 피해가 있다고 한 다른 친구들은 외모가 예뻤나? 주로 외모가 예쁜 학생만 만졌나."


위 내용은 각 성범죄 사건을 심리한 판사와 검사가 법정에서 한 말로,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가 지난 2016년 9월 발간한 '성폭력 재판과정에서의 피해자 권리에 대한 모니터링 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이다.

성범죄 재판 중 피해자를 증인신문 하는 과정에서 성경험 여부나 성폭력 통념에 갇힌 질문을 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2019년 4월 대법원 젠더법연구회가 같은 해 1월부터 2월까지 법조인 3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판사 90%가 "검사 또는 변호사가 성범죄 재판의 증인신문 과정에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바 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위원장 변영주)는 이에 2일 6차 권고안을 통해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의 피해자 보호 제도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존제도로 피해자 보호 가능하다? 전문위 "기존 규정 효력 발휘 못해"

전문위는 구체적으로 ▲ 비디오 등 중계 장치에 의한 신문 등 증언 방식에 관한 선택권 보장 ▲ 성적 이력 등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적 정보에 관한 신문 제한 ▲ 피해자의 신체 등이 촬영된 사진영상에 대한 증거 조사 시, 필수적 심리 비공개 및 개별 영상·음성장치에 의한 재생 방법 활용 ▲ 재판 중 취득한 피해자의 사적 정보 유출·공개 금지 ▲ 소송 기록 열람·등사권의 실질적 보장 등을 제시했다.

특히 피해자의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는 '사건과 무관한 질문'의 경우, 이를 제한할 수 있는 방안 자체가 부재하다는 것이 전문위의 시각이다. "증인 신문 내용에 관해선 재판장 재량에 따른 소송지휘권 행사에 맡길 뿐 구체적인 제한 기준이 설정돼 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제도 보완을 위한 입법 시도 또한 국회 20대에 이어 21대에도 이어져 오고 있지만, 대부분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반대 의견에 부딪혀 계류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제출한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가장 최근 사례다.

이 법안을 검토한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실체적 진실 파악'을 위한 성적 이력에 대한 진술 또는 신문이 사전에 제지될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기존 제도의 충실한 운영으로도 성폭력 범죄를 당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될 가능성도 언급했다. '있는 법'을 활용하자는 의견이다.

전문위는 이같은 반대 의견들에 반론을 제기했다. 전문위는 이날 권고안에서 "기존 규정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는 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개별 재판부 성향에 따라 큰 차이가 있어 왔다"며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땐)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으로 예외 규정을 두는 방식으로 규정을 신설해 피해자를 보호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전문위는 또한 "법정에서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 공격이나 진실이 아닌 무분별한 내용으로 피해자에게 의도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모욕을 가해 법정 출석에 지장을 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어렵게 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무관하다"고 짚었다.

성범죄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증언하는 피해자, 가림막으로 충분할까

전문위는 심리에 참여하는 법조인 뿐 아니라, 소송 과정에서 취득한 피해자의 사적 정보가 피고인 측에 의해 악용되는 상황도 방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쇼트트랙 성폭력 가해자 조재범씨 측이 피해자의 사적 정보를 공개해 2차가해가 발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문위는 "피해자의 사적 정보를 유출,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러한 행위로 2차 가해가 발생할 경우 양형 기준 상 가중 처벌 요소로 명시해야 한다"고 봤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신문하게 되는 상황도 개선 대상이다. 현행 재판 대부분 가림막을 설치한 상태에서 피해자 신문이 이뤄지는데, 피해자들의 경우 비디오 등 중계 장치를 통한 증언을 더 선호하고 있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도 해당 방식을 피해자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권고다.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피해 영상을 공개 법정에서 재생하는 사례 때문에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도 함께 언급됐다. (관련기사 : [단독] 방청석 모두가 봤다... '디지털성범죄 영상' 공개 재생한 법원  http://omn.kr/1v0sg ) 

전문위는 "피해자의 신체 등이 촬영된 사진, 영상물에 대한 증거조사 시 비공개 심리가 진행되도록 심리 원칙을 규정해야 한다"면서 "영상 증거물에 대한 증거 조사 방법으로 (대형 스크린이 아닌) 판사,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별 개별 영상‧음성장치를 통한 재생을 명시할 것"을 당부했다.

[관련기사]
1차 권고안 : 성범죄피해자 '두 번 고통'에 "원스톱 창구·독립기구 마련" http://omn.kr/1vg9w
2차 권고안 : 온라인도 '응급상황' 있다 "법 바꿔 디지털성범죄 초기 차단해야" http://omn.kr/1vn3t
3차 권고안 : 몰카 아니라 불법촬영... "법무부,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http://omn.kr/1w3zk
4차 권고안 : 껍데기만 '엄정'... 성착취물 소지 402건 중 실형 '0건'
http://omn.kr/1wr66
5차 권고안 : 온라인 성착취... 늘어나는 '비접촉' 성범죄, 처벌은? http://omn.kr/1x3x9
#성범죄 #법무부 #2차가해 #성폭력 #피해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4. 4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5. 5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