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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활약 보여주고 싶었다"던 펜싱 국대 출신의 각오

[리뷰] <국대는 국대다>

22.03.13 13:44최종업데이트22.03.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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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엄마 검객들로 구성된 '엄펜져스'가 현역 펜싱 국가대표 선수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않는 기량을 선보이며 클래스를 증명했다. 지난 12일 방송된 MBN 예능 프로그램 <국대는 국대다>에서는 2005년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 플뢰레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들인 남현희, 서미정, 이혜선이 17년만에 다시 뭉쳐서 현역 선수들과 숨막히는 명승부를 펼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체육관에서 훈련중인 엄펜져스를 위하여 홍현희와 김민아가 일일 매니저로 방문했다. 2005년 세계선수권 단체전의 또다른 우승 주역중 한 명인 정길옥도 오랜만에 옛 동료들과 함께하며 완전체를 형성했다. "얼굴보니 바로 알겠다"며 반기는 홍현희에게 정길옥은 "아닌데, 저 얼굴 많이 바꿨는데"라며 갑작스러운 자폭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엄펜져스는 현역 선수들과 함께 번갈아가며 훈련을 진행했지만, 나이와 부상, 공백기를 속일수 없는 듯 20대 선수들보다 몸놀림이 현저히 둔한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엄펜져스의 자녀들은 김민아의 리드로 엄마들을 위한 깜짝 서프라이즈 파티와 응원메시지를 준비하여 엄펜져스를 감동시켰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남현희는 동료들과 경기장을 둘러보고 "웅장한 경기장을 보니 정말 큰 대회에 나온 느낌이라 너무 떨린다"면서도 "저희의 장점은 모두 그런 경기를 뛰어봤다는 것"이라며 여유를 보였다.
 
엄펜져스의 대결 상대는 오지혜, 최덕하, 김채연으로 모두 20대 이하의 젊은 현역 선수들이었다. 현역팀의 맏언니로 엄펜져스와 경기를 뛰어본 경험이 있는 오지혜는 "현역 때 상대했던 언니들은 범접하기 힘든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해볼만 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승리를 예상했다. 최덕하는 "언니들은 옛날식이어서 아는 펜싱이고 최근의 펜싱은 말리게 하는 식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엄펜져스는 대결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모두 아이들을 거론했다. 자녀들에게 선수로서 펜싱하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엄펜져스는 "펜싱이란 종목에서 엄마가 활동했다는 것을 아이들도 이해할수 있게 됐다. 엄마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평균 나이 41.6세의 엄펜져스는 몸상태에 대한 우려에도 여유롭게 대응했다. 남현희는 "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답변을 남겼다. 이혜선은 쿨하게 "불편하다. 근데 다 불편해도 참고하는 것"이라는 우문현답을 남겼다. 현역팀의 오지혜는 "세분이 모이셨다는 것만으로 놀랐다. 그런데 언니들이 지금 준비한다고 될까"라며 과감한 도발을 시전했다.

가족과 지인들의 영상 응원 메시지가 공개됐다. 남현희의 남편인 사이클 선수 공효석과 딸 공하이, 서미정의 10살 연하 남편인 컬링선수 김태환, 이혜선의 남편 김병수와 절친인 정지현 레슬링 국가대표 코치, 아들 김우재와 김우현 군 등이 등장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진심어린 응원의 메시지에 감동받은 엄펜져스는 눈시울을 붉혔다. 기운을 얻은 남현희는 대결을 앞두고 현역팀을 향하여 "오늘이 은퇴 경기인데 우리가 이기면 은퇴하고, 지면 (너희 잡으러) 현역으로 복귀하겠다"고 깜짝 선언하며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의 대결종목은 플뢰레로 라운드당 경기시간은 3분, 선수당 3라운드씩 출전하여 총 9라운드로 진행됐다. 공격은 상체만 가능하고 제한시간에 더 많은 득점을 올리거나 45점을 먼저 획득한 쪽이 승리한다.
 
42세 남현희와 23세 막내 김채연이 첫 라운드에 나섰다. 남현희는 장점인 현란한 스텝과 순간 스피드로 선취득점을 올리며 기선을 제압했다. 남현희는 포앵 앙 린느(칼을 쭉벋는 자세)로 경험이 부족한 김채연을 압박하며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3-2로 앞서나갔다.

2라운드는 수비형인 이혜선과 공격형 최덕하의 맞대결이었다. 현역팀의 에이스인 최덕하의 맹공에 이혜선은 한때 동점을 허용하며 고전했으나 빠른 역습으로 만회에 성공하며 7-6으로 리드를 유지했다. 3라운드는 양팀의 맏언니들은 서미정과 오지혜가 나섰다. 신중한 경기운영으로 공격보다 수비에 무게를 둔 두 선수는 우열을 가리지못했고 9-8로 마쳤다. 탐색전은 엄펜져스가 계속 박빙의 리드를 유지한채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는 구도가 유지됐다.
 
4라운드에서 이혜선과 김채연이 격돌했다. 출전 간격이 더 짧았던 이혜선은 체력적 부담을 드러내며 연속 공격을 허용했고, 엄펜져스는 경기 시작 후 첫 역전을 당했다. 10-11로 엄펜져스가 오히려 끌러가는 가운데 남현희와 오지혜가 5라운드에 출전했다. 체격과 플레이스타일이 흡사한 두 선후배는 팽팽한 공방을 펼쳤으나 남현희가 멋진 르미즈(역공격)으로 한 점을 더 만회하며 14-14로 다시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6라운드는 같은 팀에서 사제지간으로 활동했던 서미정과 최덕하의 승부였다. 최덕하가 기습공격으로 먼저 2점을 앞서나갔으나 바로 제자의 패턴을 파악한 서미정이 반격에 나서며 다시 동점을 이뤄냈다. 서미정은 상대에게 등을 보이다가 경고를 받는등 아직 경기감각이 돌아오지않아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검을 교체하는 타이밍을 통하여 체력을 가다듬은 서미정은 이후 흐름이 끊긴 최덕하를 상대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며 19-18로 역전을 이뤄냈다.
 
경기는 어느덧 각자 마지막 라운드 출전만을 남겨둔 종반에 접어들었다. 7라운드는 이혜선과 오지혜가 격돌했다. 체력을 회복한 이혜선이 놀라운 집중력을 선보이며 초반 3연속 공격에 성공하는 등 22-20으로 점수차를 1점 더 벌렸다. 8라운드에서는 서미정과 김채연이 치열한 접근전도 불사한 끝에 25-22로 3점차까지 점수가 벌어졌다.

최후의 9라운드는 남현희 Vs. 최덕하, 여자펜싱 신구 에이스들간의 맞대결이었다. 두 선수는 양보없는 팽팽한 혈전을 펼쳤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진 남현희가 스텝이 현저히 느려진 모습으로 추격을 허용하여 위기를 맞이했다.

한동안 1~2점차를 오가며 장군멍군을 주고받던 두 선수는, 최덕하가 점수를 만회하기 위하여 성급하게 공격을 들어온 틈을 놓치지않고 남현희가 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균형을 깼다. 상승세를 탄 남현희는 33-28로 5점차까지 점수차를 벌리며 승기를 잡는 듯 했다.
 
최덕하도 현역의 자존심을 걸고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남현희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을 타 최덕하는 시작과 동시에 번개같은 공격으로 내리 3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다시 점수차를 따라붙었다. 펜싱의 특성상 몇 초 사이에 승부가 뒤바뀔수도 있었던 상황. 남현희는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고 최덕하의 마지막 저돌적인 연속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내며 결국 33-31로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탈진할때까지 전력을 쏟아부은 엄펜져스는 경기를 마치고 비로소 웃음을 되찾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객석에서 지켜보던 가족들도 환호했다. 해설을 맡은 최병철은 "이런게 스포츠 아닌가.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 남현희는 몸이 안좋은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팡트를 시도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남현희는 "모두가 열심히 했지만 경기를 이겨서 기분이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서미정은 딸의 마지막 경기를 가슴졸이며 지켜본 부모님을 향하여 손을 흔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쉽게 석패한 최덕하는 경기가 끝난후에도 '재도전'을 외치며 여전한 승부욕을 드러냈다. 전현무가 재대결하고 싶은 상대를 묻자 "세 분과 다 대결해보고 싶다"며 현역다운 패기로 감탄을 자아냈다.
 
마지막 소감으로 서미정은 "내 몸이 아직 펜싱을 기억하고 있다"고 밝히며 "솔직히 육아와 훈련을 병행하느라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해내고 나니까 남는게 너무 많다는 걸 느껴서 도전하길 잘했구나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이혜선은 "이런 마음이나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본다. 현역 시절의 생각도 새록새록 나고, 우리들만의 추억이 또 하나 생겼다"고 밝혔다.
 
남현희는 "이렇게 동료들과 다시 게임을 뛰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뭐든지 도전하는게 좋다는게 확신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국대는 국대다>는 엄펜져스들의 도전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또다른 새로운 레전드의 귀환을 예고하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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