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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이라 부르는 건 대통령 심기 살피는 것"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

등록 2022.03.18 06:05수정 2022.03.1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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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31일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이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왼쪽부터) 최재덕 경제2분과위원, 박형준 기획조정분과위원, 진수희 정무분과위 간사,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 맹형규 기획조정위 간사, 홍문표 경제2분과위원, 백성운 행정실장, 김대식 사회교육문화위원이 배석해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지난 9일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자 대부분의 언론에서 윤석열 당선인이라고 쓰고 있다. 이것의 유래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의 요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선자라는 게 '놈 자' 자로 불경스럽다는 것이다. 그러자 언론은 당선자가 아닌 당선인으로 빠르게 바꿨다. 유권자나 후보자 등의 단어는 그대로 놔둔 채로 말이다.

하지만 이게 헌법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바로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다. 신 교수는 지난해 9월 출간한 <언어의 높이뛰기>에서 당선인이란 단어에 문제제기를 했다.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지난 14일 신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 <언어의 높이뛰기>에서 당선인이라고 하면 안 되고 당선자라고 써야 된다고 하셨으나 언론은 윤석열 당선인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여기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왜 언론이 당선인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지 배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거예요. 2007년 12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죠. 그러고 나서 2007년 12월 말에 인수위원회가 꾸려져서 언론에 처음 요구한 것이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고쳐 달라는 거였어요.

그전에 어떻게 사용됐는지 보면 당선인이라는 말이 아예 안 쓰인 건 아니고 맥락에 따라서는 사용이 가능한 말이긴 해요. 당선자와 당선인의 느낌이 좀 다르잖아요. '자'는 개별적인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고 '인'은 총칭적 의미라고 해서 전체적으로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들을 통칭해서 부를 때 인이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 예를 들어주세요.

"예를 들어, 우리가 과학자라는 말을 쓰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과학과 관련된 사람이 모이면 과학인 모임이 되죠. 그런 식으로 인이 붙은 단어들이 있어요. 방송인, 과학인, 언론인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죠. 이런 식으로 인과 자는 기본적으로 한국어에서 같은 사람의 속성을 나타내는 접미사지만 이 접미사들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조금 결이 다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사람을 나타내는 것과 관련된 한자와 접미사들이 '자(者)', '가(家)', '인(人)', '사(師)' 등 네 가지 종류가 있거든요. 이런 것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이영자라는 중국 연변대 교수가 한국어와 중국어의 네 가지 접미사에 대한 논문 쓴 게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자, 가, 인, 사가 각각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한국어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 논문에서도 '인'의 중심적 의미를 '어기(접미사 앞에 붙는 말)의 구체성을 띤 인간을 총칭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선자'와 '당선인'이 이명박 인수위의 요청 이전 기사에서 얼마나 사용되었는지를 보면 확인됩니다. 빅카인즈를 활용해서 1990년부터 2007년 12월까지 중앙지와 방송사 기사를 대상으로 검색해 보면 당선자 3만 8225회, 당선인이 277회 관찰되어 각각 99.3%와 0.7%의 사용 빈도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후보자를 후보인이라고는 안 하잖아요. 어떤 구체적인 일을 하거나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개별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당선자'라는 말이 있죠. 우리가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표현할 때 '자'자를 붙이잖아요. "

총선은 당선자, 대선은 당선인?

- 공직선거법상 당선인 표기를 따르고 있다는 게 언론의 주장인데.

"그건 쟁점이 다른데, 당선인으로 불러 달라고 했지 당선인이 맞다고 얘기한 적은 없어요. 당시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에서도 당선자 대신에 당선인으로 불러 달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근거로 공직선거법을 들었습니다. 공직선거법을 처음부터 얘기한 건 아니고요.

2008년 1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이명박 특검과 관련된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 선고를 합니다. 그 선고를 할 때 김복기라는 공보관께서 '가급적 특히 헌재 결정과 관련해서 대통령 당선인보다는 헌법에 규정에 되어 있는 표현인 당선자라고 표현해 달라'라고 취재진에게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헌법상 헌법 제67조 제2항에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로 되어 있고 68조 2항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라고 당선자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있습니다. 그러면 언론은 인수위의 요청 근거가 무엇인지, 헌재 관계자의 요청 근거는 무엇인지 모두 따지고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고민한 후에 사용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게 수치로 나타나게 됩니다.

공직선거법은 1994년에 만들어졌는데 이 인수위 요구가 있었던 게 2007년 12월 아주 말이거나 2008년 초입니다. 그 이전에는 당선자라고 표현했어요. 그래서 2007년 12월까지 정리해 보면 중앙지하고 5개 방송사에 나온 기사를 분석한 결과 당선자라는 표현이 3만 8225번 신문과 방송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당선인이라는 표현은 277번이 나옵니다.

그러나 인수위 요청이 있으니까 2008년 1월에 갑자기 당선자라는 표현을 15.5%로 확 줄여 버리고 당선인이라는 표현으로 84.5%로 갑자기 증가하고요. 적극적으로 언론이 2008년 1월부터 인수위 요청을 받아들인 거죠."

- 문제 제기는 없었나요?

"일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언론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는 없었어요. 0.7%에 불과했던 당선인의 사용 빈도가 2008년 1월에는 84.5%, 2월에는 88.9%로 한순간 급격히 증가합니다. 2월 말이 취임식이니까 취임식 이전에 두 달 동안 당선자라고 표현해야 될 때가 생기게 되잖아요. 그랬을 때 거의 압도적인 비율로 당선자 대신에 당선인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다면 언론이 이제 당선된 사람을 당선인이라고 불러야 되겠다고 결심했느냐면 그렇지 않다는 게 그 이후에 바로 나타납니다. 2008년 같은 해 4월에 총선이 있었죠. 총선에서도 선거에 당선된 사람이 생기잖아요.

인수위원회 요구가 있어서 이명박 당선자라는 표현을 압도적으로 당선인으로 바꿨던 언론이 2008년 4월부터 5월 사이에는 당선인이라는 표현 대신에 다시 당선자라는 표현을 압도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겠죠. 두세 달이 지났을 뿐인데 당선인이라는 표현이 다시 10%대로 떨어지게 되고요. 당선자라는 표현이 80%대로 올라가게 됩니다."

유권자의 '자'는 놔두고 '당선자' 되니 '자'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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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 ⓒ 이영광


- 그 이후는 어땠나요?

"그 이후에 대통령 선거가 다시 있었던 게 2012년입니다. 재미있게도 같은 해 4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어요. 만약에 사람들이 당선자라는 말을 이제는 당선인으로 바꿔 부르겠다고 언론이 결심했다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당선인이라는 표현을 써왔어야겠죠. 그런데 2012년 4~5월을 통틀어서 당선자가 90% 가까이 사용되고요, 당선인은 10%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아요.

하지만 재미있는 건 몇 달 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죠. 2012년 4~5월에 당선자라는 표현이 굉장히 많이 쓰였으니까 그러면 대통령이 선출되어도 당선자가 쓰였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거는 오산이고요.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니까 당선인이라는 표현이 83.3%이에요. 언론이 얼마나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은 당선인이라고, 특히 방송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페북에 당선자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라고 이야기를 했던 거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을 당선자라고 표현한다는 게 헌법에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헌법을 지키지 않은 거죠. 그런데 대통령 취임할 때 '헌법을 준수하며'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언론이 정말 언론의 기능을 다 한다면 그런 것을 인수위에서 요구했을 때 '왜 이런 요구를 하지? 이 요구가 정당한 것인가?'라고 의심했어야 하고 또 질문했어야 하고 그다음에 특히 헌재에서 특검 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공보관이 당선자라는 게 헌법에 맞기 때문에 나는 당선자라고 표기하겠다고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거죠."

- '놈 자'라서 거북스러운 것 같은데 교수님은 '놈 자'를 '사람 자'로 바꾸자는 주장이시잖아요.

"맞습니다. 사실은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꿔 달라고 했을 때 '왜 바꾸냐'라고 그랬더니 '놈이 너무 비칭 아니냐, 어떻게 대통령한테 '놈 자'자의 그런 말을 쓸 수 있느냐'라는 게 인수위원회 쪽의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을 보면 '제 뜻을 시러(능히) 펴지 못할 놈이(사람이) 하니라(많다)'와 같이 '놈'이 나옵니다. 이때 '놈'은 일반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15세기에는 평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용법이 바뀐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한자를 배울 때는 사람 자로 바꿔줘야 돼요."

- 바꾸는 게 어렵나요?

"어렵지 않죠. '계집 녀'를 '여자 녀'로 바꿨잖아요. 그러면 계집을 여자로 바꾼 것처럼 놈을 사람으로 바꾸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거죠. 그런데 더 중요한 포인트는 만약에 정말 '놈 자' 자가 비칭이라서 당선자가 불편하다, 자를 인으로 바꿔 달라'고 이야기하려면 그 이전에 유권자의 자를 그냥 놔두면 안 되겠죠.

그리고 후보자일 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당선자가 되니까 자를 인으로 바꿔 달라고 할까란 질문을 던져야겠죠. 주권자가 국민이고 국민이 유권자인데 유권자의 '자'는 놔두고 '후보자'일 때는 아무 말 없다가 '당선자'가 되니까 '자'가 듣기 싫다고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언론이 유독 큰 권력의 눈치를 본다
   
- 왜 그럴까요?

"언론이 유독 큰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거죠. 지금까지 말씀드렸지만 국회의원 당선자들한테는 당선자라고 표현했잖아요. 미국의 대통령에게는 그냥 당선자라고 옛날에 표현했거든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니까 당선자라고 부르지 않고 다시 회귀해서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때 생각을 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에게 당선인이라고 압도적으로 다시 언론이 표현하고 있죠."

- 그렇다면 '인'인지 '자'인지보다 그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인가요?

"우리가 여기서 '자를 왜 인으로 바꿔야 했을까, 그게 올바른 것일까'란 질문을 해야 되고 '우리가 진짜 바꿔야 될 건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놈 자를 사람 자로 바꾸는 거였네'란 깨달음을 가져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이렇게 누구의 말 하나로 우리가 확 바뀔 때 언론에 누가 요청을 해요. 예를 들어 '미망인이라는 말 제발 쓰지 말아, 이거는 차별적이다'라고 언론에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왜 누구의 요청에는 한순간에 바꾸고 누구의 요청에는 정말 수십 년 동안 바꾸지 않았을까, 그리고 여러 가지 요청을 함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그 요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을 우리가 당선자와 당선인을 통해서 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 혹시 당선자 문제 말고도 고쳐야 할 단어가 있나요?

"바꿨으면 좋겠다는 단어는 굉장히 많죠. 누군가를 차별하고 특히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말들은 좀 없어져야 되고 차별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말들도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문제가 없는 당선자라는 말을 가지고 이렇게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저는 참 불편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종이 신문 같은 경우 칼럼 같은 걸 통해서 당선자라는 표현 문제없다는 칼럼들을 계속 써왔거든요. 그런데 방송이 그렇지 못한 게 문제고 방송은 또 더 중요한 게 귀로 들리거든요. 귀로 들리니까 사람들한테 각인이 훨씬 더 빨리 됩니다. 그러니까 언어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사실은 방송에서 당선자라는 말을 써야 된다고 제가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바뀐 게 아니잖아요."

- 이건 진보 보수와 관계없죠?

"당연하죠. 진보 보수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거죠. 어떤 사람이 댓글을 보니까 '문재인 당선됐을 때는 그 얘기 왜 안 했느냐'라고 얘기를 하는데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문재인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당선자 신분이 없었어요. 탄핵에 의해서 된 거기 때문에 선출되자마자 대통령이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 그럼 바뀔까요?

"'바뀔까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이야기를 잘 듣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바뀔 것이고 바뀌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바뀌지 않겠죠. 하지만 부당하게 바뀐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문가로서는 합당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신지영 (지은이),
인플루엔셜(주), 2021


#신지영 #당선자 #당선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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