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장기하다운' 음악들, 자꾸 웃음이 난다

신보 <공중부양>으로 돌아온 솔로 뮤지션 장기하

22.03.17 16:10최종업데이트22.03.17 16:12
원고료로 응원

신보 <공중부양>의 음반 커버 ⓒ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지난 2월 14일 장기하의 싱글 '2022년 2월 22일'이 깜짝 발표됐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얼)의 해체 이후 3년 만에 울린 솔로 활동의 신호음이었다. 공개된 싱글을 열어보니 과연 우리가 알던 그 장기하가 맞다. 데뷔 초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 등의 흥행 이후 노래와 랩, 아니 부르기와 말하기 사이를 모호하게 오가던 작법들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앨범 제목이 공중부양이고 / 다섯 곡이 들었는데 /
곡 제목이 1번 뭘 잘못한 걸까요 / 2번 얼마나 가겠어 (…)'
 
대화 형식을 빌려 신보 발매 소식을 홍보(?)한 독특함까지 '장기하다운' 복귀 선언이었다.
 
'장기하다운'이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앞서 말한 독특한 창법이 될 것이다. 툭툭.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며 내뱉는 그의 음악 만들기는 흔히 우리가 즐겨온 노래들과 거리를 둔다. 분명 선율이 존재하기는 하나 편하지는 않다. 따라 부를 수는 있지만 약간의 도움닫기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또한 장기하가 밴드와 솔로, 그 모든 커리어 동안 주목하는 것은 '재미'다.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2020년 펴낸 에세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에서 장얼 결성 즈음의 다짐을 그는 위와 같이 밝혔다. 웃자고 쓴 '싸구려 커피' 역시 그랬다. 88만원 세대론과 엮여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곡은 군 시절 믹스커피를 마시던 장기하 개인 일화에 맞닿아 있다. 사회비판의 의도보다는 텍스트 자체의 재미에 더 큰 힘을 실었다. 항간을 떠도는 장기하 음악에 통렬한 사회적 시선이 부족해졌다는 비판은 이 지점에서 균열이 생긴다. 처음부터 그의 곡을 사회에 걸어 해석한 쪽은 장기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기하를 만날 때 드는 의문은 '왜' 인기와 관심이 시들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계속 언급하는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 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지만 이는 분명 시작 때만큼의 관심을 받지 않았다(혹은 못 했다).
 
장기하 솔로 프로젝트 격인 장얼 1집 <별일 없이 산다>를 거쳐 이후 2집 <장기하와 얼굴들>부터 밴드 멤버들의 음악색이 짙게 반영된다. 스스로 밝혔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그의 의도에 따라 앨범 무게는 가벼워진다. 맛을 살리는 조미료를 최대한 걷어낸 것이다. 장얼의 마지막 음반 < Mono >는 담백하다. 앨범의 제목처럼 구태여 스테레오를 고집하지 않고 하나의 사운드 채널을 사용하는 '모노'의 방법을 취한 것에서 그 모든 지향이 드러나지 않는가.
 
'왜', 그 길고 길었던 질문에 대한 '해답'

소리를 최대한 털어냈지만 최소한 밴드 구성으로 어느 정도 소리의 힘을 유지했던 밴드 시절과 달리 이번 신보는 그마저도 부재한다. "곡의 가사와 음반의 시선이 '붕' 떠 있고, 디딜 땅을 잃은 채 '둥둥' 떠 있는 것 같아 신보 제목을 '공중부양'으로 지었다"는 설명처럼 어떤 면에서 음반은 정말 붕 떠 있다.
 
신보는 이 '붕 떠 있음'과 '땅을 디딤' 사이의 미묘한 연결성을 잘 드러낸다. '공중'과 '지면'의 역설적인 이어짐. 나는 이 이어짐에 장기하 인기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반을 살펴보자.
 

타이틀 '부럽지가 않어'는 랩이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노래라고 하기엔 부족한 위치에 서 있다. 별다른 효과음 없이 전자음 바탕에 하우스를 장르의 토대 삼아 심지어 디제잉 하듯 스크래치를 넣는 노래라니. 이 형식 파괴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는 6분 가까운 러닝타임을 판소리와 뒤섞어 호흡하고 '얼마나 가겠어'는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시니컬한 비판과 조롱을 날린다. 음반은 대중음악이 가진 골격을 뭉뚝하게 만들고 정제된 사운드로 여백의 여백을 남겼다. 그러니까 붕 떠 있는 것이다.
 
반면 재미를 중심으로 일상을 소환한다는 면에서 음반은 지면에 뿌리내린다. 장얼 시절의 곡 'ㅋ', '그렇고 그런사이', '등산은 왜 할까' 등이 엉뚱한 소재와 가사로 재미를 줬다면 '별거 아니라고', '사람의 마음' 등의 곡은 따뜻한 위로까지 더한다. 이번 신보의 끝 곡 '다'는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린 / 오늘 마침내 / 오월이 / 오랜만에 우리 집 현관문을 탁탁탁탁 두드리네'라며 노래한다.
 
오월의 따스한 햇살이 집 현관문을 두드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다. 재미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사이 일상을 소환하고 그를 통해 삶을 다시 톺아보게 한다. 장기하식 창법과 그의 음악 형식이 쉽게 와닿지는 않더라도 재미와 익숙함이 내재하는 본질이 마음을 움직인다.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한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초연하게 삶을 대하는 태도는 그의 과거와 현재를 지탱한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 필요도 없거니와 아무리 자랑을 늘어놓더라도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는 단단함. 장기하 열풍이 불던 시기 히트곡 '느리게 걷자'와 맥이 통한다. 괴짜 뮤지션의 휘파람이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닌 확신 있는 위로로 흐를 수 있는 이유. 이 변함없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솔로 커리어의 시작을 알린 <공중부양>이 반갑다. 세간의 반응은 어찌 됐든 간에 뚝심있는 '장기하다운' 음악이 가득 차 있다. 재미도 있고 (약간) 웃음도 나고 그러다 위로도 얻고 용기도 생긴다. 묘하게 중독적인 음반. 자꾸 듣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중음악 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장기하 공중부양 앨범리뷰 장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