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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에 지배 당하는 사회, 해결 방법은?

[리뷰] tvN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

22.03.31 11:00최종업데이트22.03.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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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디어 조작자다. 사람들을 속이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언론 매체에 거짓말을 해서 그들이 당신을 속이도록 하는 게 내 일이다.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수십억달러짜리 브랜드를 위해 속이고 매수하고 공모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인터넷에 대한 내 지식을 악용한다. 단언컨대 이런 짓을 하는 건 나 혼자가 아니다- 본문 중에서.
 
넘쳐나는 정보와 극단적으로 왜곡된 미디어와 대처해야하는 시대, 거짓말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가짜뉴스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tvN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에서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강연자로 출연하여 '나는 미디어 조작자다(라이언 홀리데이)'를 소개하며 강연을 펼쳤다.
 
현대인들은 PC나 스마트폰으로 하루 평균 2-3시간 이상은 인터넷에 접속한다. 일을 하기 위하여 검색을 시작했다가 어느새 몇분 지나면 나도 모르게 유튜브 먹방이나 아기 동영상을 보고 웃는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누군가 대중의 주목을 확실하게 끌 수 있는 문구를 통하여 클릭을 유도하고, 시청자가 선호할만한 영상의 길이를 딱맞게 조정하고, 알고리즘을 타고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도록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졌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클릭의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현대인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촘촘하게 짜여진 미디어의 덫을 벗어나기란 그만큼 쉽지않다. 저자는 현대인을 유혹하는 이들을 '미디어 조작자'라고 규정한다. 
 
작가 라이언 홀리데이는 천재적 미디어 전략가로 불린 인물이다. 불과 23세에 의류 회사의 마케팅 이사로 승진한 그는 파격적인 홍보 전략으로 회사를 성공으로 이끈 광고 천재였다. 퇴사 후에는 독자적으로 회사를 설립하여 수많은 기업과 유명인들을 대신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일을 맡아왔다.
 
그런데 홀리데이는 단순히 홍보를 넘어서 자신이 미디어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여왔다고 폭로했다. 홀리데이는 영화 < I hope they serve in hell >의 홍보를 맡았다. 흥행 가능성이 낮았던 그저그런 B급 코미디물이었던 영화를 알리기 위하여 홀리데이가 세운 전략은 '논란을 만들어 영화를 알리는 것'이었다.
 
홀리데이는 아무도 없는 새벽에 영화의 광고판을 훼손시킨 후 '여성혐오 영화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우연히 목격한 것처럼 훼손된 광고판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유명 블로거에게 이메일로 전송했다. 한마디로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거짓 제보를 한 것.
 
그로부터 몇주 지나지않아 전국의 대학에서 정말로 이 작품을 여혐 영화로 규정하고 영화 상영을 반대하는 운동이 이어졌다. 각종 유명 언론 매체에서 영화를 비판하는 사설까지 실리면서 영화는 돈 한 푼 들이지않고 유명세를 얻으며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고 덕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김경일 교수는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홀리데이의 홍보 전략을 분석하며 "사람들에게 어떤 관심사가 생기면 관심대상이 된 이유는 고민하지 않은 채 사건의 화제성만 집중하게 된다. 그 열기는 다시 또다른 이슈를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은 그것이 '중요한 사건'처럼 인식하게 되는 사건의 연쇄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건이 그만큼 중요해서 화제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시끄러운 화제가 됐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인가. 김 교수는 "심리학적으로 두 가지 다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행복'을 예로 들었을 때 인간은 기쁘고 행복할 때 웃지만, 웃어서 기쁘고 행복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생각이 행동을 만들지만, 행동이 생각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양방향성의 예를 증명하는 사례다.
 
홀리데이는 미디어학자는 아니었지만 미디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여론의 자극적인 속성을 파악하게 된다. 본문에는 현대에서 신문 언론의 발전과정을 언급하며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발행인은 가만히 앉아서 뉴스가 다가오기를 기다릴 수 없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충분히 흥미진진하지 않다. 기자들은 구경거리와 사건을 취재하기 위하여 파견됐을 때 뉴스가 있으면 취재하고 없으면 만들어내는 것이 자기의 일임을 알았다.'
 
'해야하기에 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모든 법칙은 무시된다. 문제개선을 위하여 긍정적인 A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정적인 B를 하지 않는게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무언가를 하다-안하다의 개념을 'GO(해야할 일을 하는 것)-NO -GO(안해야할 일을 안하는 것)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해야할 일을 하는 것보다, 안해야 할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NO-GO를 못하는 사람이나 사회의 특징은 주의가 산만하고 충동억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자극적인 뉴스에 관심이 높아지고 빠져들기 쉽다. 저자는 우리에게 매일 찾아오는 뉴스들이 대체로 '덜 중요하거나, 극단적인 소식들'이며, 그로 인하여 놓치게 되는 것은 재미없는 정보나 '사람들이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소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작 이것이 우리가 구독하고 돈을 지불하고 쫓아야하는 뉴스라는 것.
 
분노를 유발하는 강력범죄가 발생할 경우, 범죄자의 신상과 범행과정을 자세히 보도되지만, 평소 강력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 다루지 않는다. 재미가 없어서 뉴스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당시 많은 언론은 범인의 행적과 지극히 사소한 일거수일투족까지 주목했지만 범죄예방시스템에 대한 이야기 등은 조명되지 못했다. 그런데 미디어가 범죄자의 사소한 정보까지 자극적으로 보도할 경우, 대중은 범죄자를 중요한 인물처럼 인식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뉴스가 소비될수록 이익을 얻기 때문에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분노, 공포, 흥분, 웃음, 격노는 소식을 퍼뜨리게 한다. 이것들은 우리가 뭔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저 피상적이고 무의미한 대화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을 자극해서 공유하는 수법을 아는 이에게 미디어 조작은 그저 포장과 표현 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미디어 역사학자 W.J 캠벨은 '황색 저널리즘'의 특징으로 중요하지 않은 뉴스에 수선떠는 요란한 제목, 사건과 관련성이 적은 사진의 과도한 남발, 사기꾼-사칭꾼과 가짜인터뷰, 약자의 대의명분에 대한 과시적인 지지, 익명의 취재원 사용, 상류사회와 사건에 대한 두드러진 보도 등을 꼽았다.
 
저자 홀리데이는 이 책을 집필하며 100년 전의 미디어 비평에서 단어 몇글자만 바꾸면 오늘날의 블로그가 작동하는 원리로 일치한다는 것을 여러 번 절감했다고. 1초만에 대중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거짓 진술을 하고도 빠져나갈 수 있는 질문 수법의 헤드라인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현대의 미디어는 자신을 대신하여 조사하고 일을 해주는 다른 취재원들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것도 특징이다. 이런 식의 받아쓰기와 베껴쓰기, 데이터 왜곡 과정 등을 통하여 '초콜릿을 먹으면 체중을 줄일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비과학적인 결론에 근거한 가짜뉴스가 버젓이 등장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김 교수는 우리가 조작된 미디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웹이 세계에 주목하지 않으면 할말이 점점 없어지도록 웹문화가 우리를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심리학적으로 이를 '마취적 역기능'이라고 규정했다. 미디어의 분주함을 진정한 지식으로 착각하고 미디어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 예를 들어 정치 관련 뉴스와 온라인 영상 등에 과몰입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이 정치적 활동을 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저 저녁 먹고 인터넷과 유튜브를 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조작된 미디어에 속지 않을 수 있을까. 본문에는 몇 년전 한 아일랜드 학생이 부고 기사가 뜬 유명 작곡가 모리스 자르의 이름을 도용하여 위키디피아에 가짜 인용문을 올렸던 사실을 고백하여 큰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유명 미디어조차 이 가짜 인용문이 사용됐지만 정작 학생이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도 고인이 실제 한 말인지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것이든 '미디어에 이의제기없이 충분히 게재되기만 하면 그 자체로 사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미디어 조작자들은 대부분 사실과 거짓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김교수는 '선택적 정직'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얼핏 모순되는 정직과 이기심이라는 가치가 서로 결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카고대 이타성 연구자 엠마 레바인의 심리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가 예상될 때와 불리한 결과일 때 사람들의 정직도가 극명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인간의 이기심은 곧 선택적 정직일 수도 있다는 것.
 
같은 원리로 미디어 조작자들은 뉴스에 거짓만이 아닌 팩트를 교묘하게 결합하곤 한다. 미디어는 팩트라고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를 의심해봐야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과정이 생략된 채 의심없이 보도되는 시대에 이르렀다.
 
저자는 기자들이 문제의 진실을 밝힐 위치에 있지 못하는 이유로, 자신이 직접 사실을 목격한 게 아니라 사실을 공급하기 위하여 '자기 잇속을 챙기는 취재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잇속을 챙기는 취재원이란 바로 상품이나 메시지, 어젠다를 파는 사람, 쉽게 말해 '나 같은 사람(미디어 조작자)'이라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큰 논란을 일으킨 '피자게이트' 사건은 가짜뉴스의 대표적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이 사건은 당시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배하는데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음모론이라도 미디어를 통하여 노출되고 반복되면서 어느새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릴 수 있는 가짜뉴스의 무서운 영향력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가장 민감한 정보조차도 조사없이 전달되고 진위 여부에 대한 최종판단이 그것을 보도한 미디어가 퍼뜨린 개인이 아닌 '독자에게 맡겨진다.' SNS에는 편집자도, 확인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사람들은 SNS에 글을 올릴 때 사실을 확인하거나 거짓을 퍼트릴까봐 염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현재 저널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현대의 미디어들은 엄청난 속도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 정작 내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누구도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미디어 조작자들은 과연 죄책감이 없을까.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한 이유에 대하여 서문에 자신의 행위에 사과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미디어 조작은 특정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여기저기서 무수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보도의 정의란 무엇이며, 한 사람이 맡아서 책임져야할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과거에는 본인이 소재 발굴, 취재, 사진촬영, 기사 작성, 편집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기자가 희귀해졌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강형원 기자는 "기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직접 보고 취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유투브나 블로거와 경계가 모호해진 현대의 언론들에게 생각해볼만한 메시지를 던지는 순간이다.
 
현대에 자극적인 미디어의 또다른 문제는 상대에 대한 질투, 조롱, 모욕 등을 상품화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하여 "자기 가치가 없고 남의 가치로 살기 때문"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미디어세계에서는 조작을 통해서라도 분노를 자극하거나 상대의 단점만을 부각시켜 어떻게든 끌어내리기에만 혈안이 된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질투로 가득한 사회는 바로 자기 가치가 없는 사회이고, 그것이 바로 현재의 한국 사회라는 것.
 
지금의 한국사회는 즐거움은 부족한데 동질감은 강한 사회다.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비교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자기 가치를 아는 사회가 되어야 즐겁고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자기와 생각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만 접해서는 자기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김 교수는 강연을 마치며 '미디어 괴물'에 맞서기 위한 힘을 기르기 위하여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것을 당부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며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좁은 미디어 세상에서 벗어나 생생히 살아움직이는 실제 현장,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우리 모두는 자기 가치를 깨닫고 미디어가 우리에게 말하는 진정한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읽어주는나의서재 미디어조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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