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쳇바퀴를 돌리는 직장인
남희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쳇바퀴에 해당하는 업무라면 시험과 검증이다. 갖가지 시험 절차를 통해 기능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항공기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이 과정은 특히나 중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작은 결함이 항공기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까다롭고 반복적인 과정이 중첩적으로 대기하고 있다. 개발자의 체감 상 무한 반복이라고 느낄 정도로 지난한 검증 과정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시스템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시스템도 사람의 손이 어느 정도 닿아야하다 보니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PC에서 확인하고 실험실에서 확인하고 항공기에서 확인하고 또 PC에서 확인하고... 그렇게 확인을 거쳤음에도 어디선가 또 문제는 생겨난다. 순차적이고 반복적인 검증절차가 있는 이유다.
확인에 또 확인에 또 확인.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는 없다. 작은 변경 하나가 발생해도 그와 관련된 모든 시험을 다시 수행한다. 이럴 때면 이건 좀 정도가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그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를 직면하면 정도(程度)를 따질 것이 아니라 정도(正道)를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불의의 사고들
올해 들어 두 번째 모금 메일을 받았다. 연초에 F-5계열 전투기가 추락했고 얼마 전 훈련 중이던 KT-1 두 대가 불의의 사고로 추락했다.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가정을 꾸리고부터 누군가의 죽음에 자꾸만 그들의 가족이 그려진다. 급격히 치솟는 감정을 숨기는 게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 감정의 막이 많이 얇아졌는지 자꾸 눈물이 새나온다.
뭐가 문제였을까? 직업적인 의문이 자연스레 오가고 안타까운 마음에 인터넷 여기저기를 찾아보지만 안타까움만 더해진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갔길, 그들의 인연들이 잘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성금 신청 답장을 보내고 냉기가 슬며시 자리 잡은 마음을 추스르며 업무를 이어간다. 따뜻한 물 한 모금으로 가슴을 데우며 지금 내가 개발하는 항공기도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가, 한 가정의 가장이 탈 수 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성금 말고도 있음을 깨닫는다.
항공기의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 해야 하는 수많은 반복에 가끔은 의구심을 품고 번거로워했던 내 모습이 자못 부끄럽다. 먹고사니즘으로 하는 일이라지만 내가 하는 일에 부여한 의미가 너무 작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단순한 밥벌이가 아닌 한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고 그를 통해 한 가정을 지키고 더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내 일을 너무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다.
의미의 재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