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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명, '그들만의 리그'에 던지는 경고

[주장] 프로야구 저조한 관중동원, 히어로즈만의 문제가 아니다

22.04.13 14:03최종업데이트22.04.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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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 KBO리그에서 충격적인 숫자가 나왔다. 야구 경기 관련 기록이 아니다. 바로 지난 12일 키움 히어로즈와 NC 다이노스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은 관중들의 숫자다. 수용 인원 1만 6200석의 고척돔 구장을 채운 관중은 불과 774명으로 좌석 점유율이 5%(4.8%)에도 미치지 못했다.
 

12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 신한 SOL KBO리그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6회말 2사 만루 상황 키움 야시엘 푸이그가 만루홈런을 친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키움 히어로즈

 
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중 입장이 제한됐던 2020~2021년을 제외하면 히어로즈 창단 이후 역대 홈경기 최소 관중 기록이다. 2016년 고척돔 개장 이후 종전 최소 관중 기록은 2019년 4월 10일 KT전으로 당시 1158명으로 집계됐다. 심지어 아예 무관중 경기로 치러진 경기를 제외하면 코로나 19로 부분적 관중 입장을 허용했던 시절에도 2021년 5월 6일 KT전의 957명이 최소 기록이었다.
 
또한 이전 홈구장인 목동구장 시절을 포함해도 2009년 4월 21일 한화전에서 918명의 최소 관중 불명예 기록을 무려 13년 만에 경신했다. 아무리 평일 경기라고 하지만 아마추어 경기나 비인기 종목도 아닌, 명색이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라는 프로야구 경기에서는 믿기 어려울만큼 부끄러운 수치다. 그것도 관중 입장이 100% 전면 개방된 상황에서 나온 기록이라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09년의 경우, 전신인 현대 선수단을 인수하여 재창단하여 2번째 시즌을 맞이하던 히어로즈가 아직 정상적인 운영체계가 자리잡지 못하여 고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히어로즈는 선수들을 현금으로 팔아 구단 운영비를 충당해야할 만큼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고 성적도 하위권을 전전하던 비인기구단이었다. 여기에 당시 프로야구 중계권 문제로 인한 갈등, 4월 꽃샘추위와 우천 등 이상 기온으로 인하여 많은 팬들이 구장을 찾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2021년의 히어로즈는 이제 프로야구에서 어엿하게 자리잡은 중견 구단이 됐다. 이정후-야시엘 푸이그같은 슈퍼스타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돔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적 면에서도 매년 포스트시즌 진출을 기대할만한 강팀이 됐고, 올 시즌도 5승 4패로 4위에 올라 있다.
 
지난 12일 경기에서는 메이저리그 출신 스타 푸이그의 시즌 첫 만루 홈런에 힘 입어 NC를 10-0으로 대파하고 쾌조의 4연승을 질주했다. 하지만 이런 호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역대 최소관중 기록을 경신하는 수모를 당하며 머쓱한 상황이 됐다.
 
최근 프로야구 관중동원이 전반적으로 저조한 분위기라고 하지만, 같은 날 열린 경기들과 비교하면 두 번째로 적은 관중을 동원했던 수원 KT-두산전이 2450명으로 고척돔과 비교하면 3배나 더 많다. 선두권 팀들의 대결로 주목받았던 잠실 LG- SSG전은 6028명이었고, 대구 삼성-한화전이 3809명, 광주 롯데-KIA전은 3488명이었다.
 
왜 하필 히어로즈의 홈구장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히어로즈라는 구단 자체에 대한 비호감이다. 두 번째는 KBO리그 전체의 인기와 경쟁력 하락이다.
 
히어로즈는 최근 몇 년간 팀성적이나 선수들 개인의 활약과는 별개로 각종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히어로즈의 창업주였던 이장석 전 대표는 배임과 횡령 혐의로 옥살이를 하며 KBO에서 영구제명당했지만 이후에도 옥중경영으로 히어로즈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허민 이사회 의장은 프로 선수들을 데리고 이른바 '야구놀이'로 갑질을 했다는 폭로에 휩싸였다. 비상식적이고 투명하지 못한 구단 운영은 '오너 리스크'를 불러오며 히어로즈의 이미지에 큰 흠집을 남겼다.
 
여기에 잦은 감독교체를 둘러싼 잡음, 히어로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박병호와의 석연치 않은 결별, 학폭 논란의 안우진과 음주운전 삼진아웃 논란을 일으킨 강정호, 역시 화려한 폭력 전과를 자랑하는 에디슨 러셀과 푸이그의 영입 강행 등 선수들을 둘러싼 사건사고가 겹치며 '불통과 도덕불감증'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텅빈 관중석과 최소 관중 기록은 우연히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서서히 돌아서왔던 팬심이 쌓인 결과물이다.
 
또한 방역 당국이 하필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실내 공간인 고척돔에서는 음식을 섭취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한 것도 관중동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한편으로 저조한 관중동원은 히어로즈만이 아니라 다른 구단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경고 신호다. 히어로즈가 좀 더 돋보였을뿐, 다른 구단들 역시 2022시즌 개막 이후 관중 입장이 전면 개방되었음에도 주말 경기 포함 매진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야구팬의 열기가 예전같지 않다.
 
KBO리그는 지난 시즌 선수들의 방역위반 논란과 도덕적 일탈, 국제대회 성적 부진, 경기력의 질적 하락과 판정 논란 등 연이은 악재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위기론이 대두된 이유다. 하지만 정작 FA시장에서는 선수들의 몸값 폭등처럼 리그의 현실이나 팬들의 여론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상'이 계속됐다. 허구연 신임총재가 '팬퍼스트'를 강조하며 야구계 전체의 혁신을 약속했지만, 진정성 있는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당연한 사랑이란 없다. 예전보다 볼거리-즐길거리가 많아진 데다 프로스포츠의 사회적 의식에 더 민감해진 젊은 세대는 과거처럼 야구에 맹목적으로 열광하지 않는다. 기성 팬들은 실망하고 신규 팬들의 유입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앞으로 한국야구가 '국민스포츠'라는 위상을 계속 지킬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팬들이 보내는 경고의 신호를 모든 야구계 구성원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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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고척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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