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쓰면 힘들지만... 삶을 위한 '글력'이 생긴다

[마흔이 서글퍼지지 않도록] 글을 쓰는 이유

등록 2022.04.21 09:52수정 2022.04.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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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컴퓨터 모니터에 문구 하나가 붙어 있다.


"계속 쓰면 힘이 된다."

오래전 카카오 크리에이티브 행사에 참여하고 받은 스티커를 붙여둔 것인데 간단한 문구임에도 글을 쓸 때마다 힘을 보태주고 있다.

글을 쓰는 행위가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또 다른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계속 쓰면 힘이 '든다' 는 사실이다. 힘이 되기 이전에 힘이 든다. 아이러니다.

이런 말장난이 어디 있나 싶지만, 생각해보면 힘겨운 운동을 통해 근육을 발달시켜 근력을 쌓아가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세트를 끝내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보다 탄탄해진 근육이 근력을 높여 서서히 몸에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런 의미로 글을 쓰는 힘을 글력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쓰면 힘이 들고 그 힘듦은 글력으로 승화된다.
계속 쓰면 힘이 들고 그 힘듦은 글력으로 승화된다.남희한
 
어찌 보면 산을 오르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끝에 다다를 때까지 힘듦은 끝나지 않지만, 정상에 서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상당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오른 산은 내려와야 하듯 하나의 글을 마무리하면 결국 제자리이지만, 쌓인 경험과 적립된 감정은 이따금 큰 힘과 위로가 되어 나를 토닥인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다른 어떤 행위보다 정적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무엇보다 격정적이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이 겹겹이 쌓인 감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일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머리를 쥐어뜯고, 한 숨으로 백지를 도배할 때의 감정은 별개다.)


과거의 일을 적다보면 그 기억으로 일어나는 A부터 Z까지의 감정과 그 감정을 일으킨 원인에 대한 원망, 자책, 분노와 같은, 역시 a부터 z까지의 또 다른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숱한 감정의 조합이 복잡다단한 감정을 급조하기도 한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가 많은 이유는 아마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심정을 어떻게든 표현해보려는 노력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계속 쓰면 힘이 된다. 그리고 계속 쓰는 것은 어느 정도 힘이 든다. 힘을 얻겠다고 글을 쓰면서 힘들다고 징징대는 아이러니한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걸 멈출 수가 없다. 일상에서 이만큼 즉각적이고 주기적으로 안도와 위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탓이다.


글을 쓰다 보면 신이 나서 손을 놀리게 되는 때도 가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끔'이다. 내가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재미난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만 글을 다시 읽다 보면 어느새 식상해지거나 재미가 반감되기도 한다. 무엇도 의도대로 되진 않는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쓰면 힘이 든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면 힘듦이 당연한 것이 되고 견딜 만 해진다. 아, 오늘도 힘이 드는군. 그런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면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상황이 그리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니게 된다. 그럴 때면 주변에 책을 집어 들어 읽거나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한다. 단 한자도 적지 못하고 2시간씩 않아 있기도 하지만, 그런 날도 있어서인지 글 하나를 완성했을 땐 기쁨도 매우 크다.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은 없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머릿속을 뒤져 글을 채워가는 일은 그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그런 일을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거나 아예 쓰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 오늘도 힘이 드는군...'
 
글을 쓰면 힘이 되는 이유


글 쓰는 행위도 쉬운 일이 아닌데 아픈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하소연할 곳이 나밖에 없어 글을 쓴다. 내가 하소연하고 내가 그 하소연을 받아 적으며 나를 위로한다. 그 과정에서 후회되는 일을 반성하고 잘한 일에는 칭찬하면서 나를 조금 더 알아 갔다.

지난날의 나는 못나 보이고 불안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잘해왔고 무엇보다 그간 잘 버텨주었음에 격려를 보낸다. 답답한 심정을 글로 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유일한 배출구였다. 그래서 썼고 힘이 들었고 버틸 수 있는 근육이 생겼다. 여전히 힘이 들지만 어렵사리 버틸 수 있는 이유다.

글을 쓴다는 것의 또 다른 이점은 자신이 쓴 글에 자신을 맞춰가게 된다는 점이다. 너무 없어 보여 조금 미화한 것이 못내 마음이 쓰여 그런 모습이 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건 아니지' 하고 당연한 듯 썼던 글 덕분에 드문드문 하게 되는 나쁜 것들을 행하는 횟수가 줄어드는 양심적 방지 효과다. 글은 양심을 갖게 하고 그 양심대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뱉고 나면 허공에 흩어지는 말보다 글이 아무래도 진한 이유일 테다.

어떤 과실이든 손을 뻗어야 딸 수 있고, 잘 익은 과실을 따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 잘 영근 삶의 과실을 글이라는 행위로 수확한다. 그저 뚝 떨어지는 과일만 기다리기에는 과일들이 너무 탐스럽다. 그래서 글을 쓴다.

자... 이제 글 쓰는 이유를 알았으니 힘들다는 이유로 미뤘던 글을 써보자. 자... 써보자... 뭐라도 써보자...

끙.... 역시, 오늘도 힘이 든다.
아무래도 더 튼튼해지려나 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마흔이서글퍼지지않도록 #그림에세이 #글쓰기 #계속쓰면힘이든다 #계속쓰면힘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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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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