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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가장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윤석열... 그런 건 없었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최고 한일관계의 전제 조건

등록 2022.04.27 10:40수정 2022.04.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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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국회 부의장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일본에 파견한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이 26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고 있다. 대표단의 단장인 정 부의장이 기시다 총리에게 윤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는 모습. 2022.4.26 ⓒ 연합뉴스

 
지난 24일 출국한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이 일본 측과 접촉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당선인의 친서를 들고 방일 중인 정책협의대표단은 월요일인 25일에는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을 만나 한일 협력관계를 강화하자고 입을 모았다. 26일에는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만나 "서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자"는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이 대표단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는 외무대신 면담 뒤에 정진석 단장이 한 발언에서 나타난다. 국회부의장인 그는 "양손이 마주쳐야 소리 낼 수 있듯이 한일 간 주요 현안을 해결하려면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고 한 뒤 "윤 당선인의 대일 인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일관계를 과거 가장 좋았던 시절로 조속히 복귀시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한일관계 최고의 시절은 1998년부터 2000년을 전후한 시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재임 1998~2003년)과 오부치 게이조 내각(1998~2000년)이 겹치는 시기다.

윤 당선인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인 작년 11월 11일, 전남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하기 직전에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일본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01대 총리로 재선출됐다는 뉴스를 보고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했다"며 "김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나라 현대사에 그만큼 한일관계가 좋았던 때가 없었다"고 평했다.

자화자찬 할만했던 김대중·오부치 선언

지금보다는 훨씬 덜했지만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직전에도 한일관계가 좋지 않았다. 일본은 1997년 11월부터 IMF 외환위기를 겪고 동년 12월 대통령선거로 어수선해진 한국을 겨냥해 한일어업협정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이때가 1998년 1월 23일이다. 김대중 당선인의 취임을 1개월여 앞둔 시점에 도발을 했던 것이다.

동유럽 공산권 약화로 미소 냉전체제가 탈냉전으로 이행하던 1990년대 초반, 세계 곳곳에서 민중이 점점 강해지고 미국이 더 약해졌다. 이런 추세는 한일관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떨어트렸고,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을 비롯한 한국 민중들이 한·일 역사문제에 한층 강렬한 불을 지피는 결과로 이어졌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상당부분은 이런 분위기에 떠밀려 대일 강경모드를 취했다. 1995년 11월 14일 그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1997년 연말 및 1998년 연초의 정세변화를 활용해 위와 같은 반일 분위기에 제동을 거는 한편, 한일어업협정을 개정해달라는 일본 어업계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벌인 일이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의 어업협정 파기 선언이다. 바다를 맞댄 양국관계를 규율하는 핵심 조약 중 하나를 일본이 파기했으니, 당시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일관계를 진정시킨 것이 윤 당선인이 언급한 그해 10월 8일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다. 정식 명칭이 '21세기 한일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인 이 선언은 누구보다도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만족을 표했던 결과물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대중 자서전> 제2권에서 "흔히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1965년 체제'라고 한다면 나와 오부치 총리가 합의한 '21세기 한일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후의 한일관계는 '1998년 체제'라고 해야 마땅하다는 이들이 있다"며 남들의 입을 빌려 '자화자찬'을 했다.

자화자찬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한일관계를 도출했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1998년 시점에서 볼 때는 '이 정도면 괜찮다'라고 평가할 만한 요소가 그 선언에 담겨 있었다. 오부치 총리가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표현을 써가며 반성과 사죄를 표시한 부분이 그것이다.

이 선언으로 인해 위안부·강제징용·강제징병 같은 구체적 피해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정부를 대표하는 총리대신이 한국 국민들을 상대로 사과했다는 점에서 종전의 입장 표명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1993년 고노담화에서는 "출신지가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고 했고,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서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라고 했다. 목적어 없는 사과 표명들이었던 것이다.

'전후 70년 담화'로 불리는 2015년 8월 14일 아베 담화에서는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인 아시아 사람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고 전후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왔습니다"라고 했다. 한국이 고난의 역사를 경험한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힘을 다해왔다고 언급했던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갖는 의의는 적지 않다. 1998년을 한일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절이라고 평가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상적 모델'로 삼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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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찾은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일본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하지만 1998년 선언은 총론적 성격을 갖는 사과 선언이었다. 위안부 강제연행이나 강제징용·강제징병 등으로 발생한 구체적 손해들을 해결하기 위한 입장 표명이 아니었다.

지금의 한일관계는 총론적 성격의 사과가 아닌 구체적 손해들의 해결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차기 정부가 1998년과 유사한 수준의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총론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 몰라도 각론에서는 별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편, 오부치 총리가 그런 사과를 한 직후에 챙겨간 게 적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해 11월 28일 체결된 신(新)한일어업협정을 통해 한국이 잃은 것과 일본이 얻은 것에 대한 당시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국령 독도를 양국 중간수역에 넣었을 뿐 아니라 한국 어업계의 피해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협정이 발효되고 2개월 뒤에 발행된 1999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 기사 '굴욕적 어업협정을 보고'는 신용하 서울대 교수의 다음과 같은 비판을 소개했다.
 
"이번 신한일어협은 (1)부당한 중간수역(한일공동수역) 설정 (2)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킨 것 (3) 일본 EEZ 내의 한국 어민 관행(기득) 어획량의 불충분한 보장 (4) 기득 어획량의 지나친 단기(3년) 급감 (5)쌍끌이 및 복어채낚기 어로의 누락 (5) 제주도 남방대륙붕에 대한 기득권 및 일부 어장의 방기 등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기득권을 갖고 어획하던 구역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인정됨으로써 한국 어업계가 입은 피해는 상당했다. 반대로, 오부치 내각은 자국 어업계의 이익을 확보했다. 말로만 하는 사과를 하고는 꽤 많은 것을 챙겼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시기의 한일관계 역시 불충분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여타 시기에 비하면 바람직한 측면이 있지만, 한일관계의 이상적 모델로 보기에는 부족한 시기였다. 이런 시기를 '가장 좋았던 시절'로 평가하는 윤석열 차기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뭔가를 얻으려 하면, 일본 역시 오부치의 사례를 생각하면서 적지 않은 것을 받아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오부치 내각은 우파 내각이고 기시다 내각은 극우 내각이라는 점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시다 총리 자신은 극우가 아닌 우파이지만, 그의 내각을 움직이는 것은 아베 신조를 비롯한 극우파다. 윤석열 차기 정부가 상대해야 할 카운트파트가 오부치 내각과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오부치 내각은 극단적인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제적 실리를 챙겨가는 대신에 총론 성격의 사과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민당을 이끄는 극우세력은 그런 사과 표명도 꺼리는 집단이다. 외국에 고개를 숙이면 가문이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들을 상대로 오부치 내각이 했던 수준의 사과 표명을 받아내려면 험난한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정진석 단장은 양손이 마주쳐야 소리 낼 수 있듯이 한일관계도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일본 극우세력이 상대방과 더불어 그 정도의 조화를 연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고의 한일관계는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고 구체적으로 배상하며 독도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 상태가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기본 전제다. 이런 전제는 아직까지 성취되지 않았다.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최고의 한일관계를 과거에서 찾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일 정책협의대표단 #윤석열 인수위원회 #한일관계 #김대중 오부치 선언 #위안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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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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