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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윤석열 노동정책... '차별'은 극단 대립 부른다

"어두운 시대엔 노동이 희망"... 노동조합 인정하고 대화에 나서야

등록 2022.04.26 16:19수정 2022.04.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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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새 정부의 노동정책을 둘러싸고 다양한 분석기사가 나오고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 관련 이야기가 가장 많고 최저임금이 업종이나 지역별로 차등적용 될지, 직무·성과급제가 확대될지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하나같이 국민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의제들이지만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이와 관련된 정책 방향과 내용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고임금 사무직에 대해 주 최대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고 연장근무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amption)을 도입한다든지, 법적 상한선이 있는 근로시간에 대해 노사가 합의할 경우 근로시간 연장을 추진한다든지 하는 내용 등이다. 이러한 내용은 인수위원회가 확인해준 것이 아니고 인수위원의 과거 주장과 윤석열 당선인의 발언 등을 종합한 결과로 보인다. 다만, 현재 상황을 지켜보면서 인수위원회 60일 동안 노동 정책이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될 뿐이다.

좋은 정책이건 그렇지 않건 정부는 있는 그대로를 밝히고 다양한 토론을 통해 정책을 선택·추진하며 최종적으로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의 방식으로는 정부의 노동정책 비전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이런저런 예측만 어지럽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유령으론 시장실패를 막지 못해 

윤석열 당선인과 새 정부의 정책은 초기 자유주의 사상과 맞닿아있어 보인다.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었던 자유주의는 재산권의 사적 소유와 자유 계약, 그리고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고 활용할 권리가 있으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사회적 가치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시장에 개입을 자제하고 시장이 알아서 조정되도록 두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접근이다.

이러한 논리를 노동정책에 적용하면, 돈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 52시간만 일하라고 제한하기보다 120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업과 노동자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며 최저임금 이하로 일할 사람이 있으면 막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가 된다. 나아가 사회 전체의 생산성에 이롭다면 한두 명 목숨을 잃는 희생이 반복되더라도 감수해야 하며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기업을 처벌하여 생산 자체를 위축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언뜻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유주의 사상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시장실패로 인해 지속 가능한 사회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이나 팬데믹 같은 특별한 상황에 의해 예외적으로 짧은 기간 노동시간을 늘리고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더라도 곧바로 되돌리지 않으면 과로사, 사회 양극화, 차별, 적대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이 불안해지고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멀지 않은 5년 전에 시장실패로 인한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바 있다. 그때도 국정농단이 불씨가 되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개입할 때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고 개입하지 말아야 할 일에 개입한 시장실패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이 커져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이러한 이유로 18세기 자유주의 사상을 현대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나라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국가주도의 복지 정책을 실천하고 있으며 경제정책을 통해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차별과 적대적 노동정책은 극단적 노사 대립을 부를 것 

윤석열 정부는 아직 본격적인 국정 운영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권을 인수하는 단계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제출된 많지 않은 정책 공약과 노조에 대한 태도를 대표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첫째, 노동 공약과 관련하여 노동시장 유연화와 최저임금 차등 적용 그리고 직무 성과급제 도입은 모두 '차별'을 전제하는데 이는 국민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누가 장시간 노동을 원하겠는가. 아무리 고소득자라고 할지라도 직장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IT 업종 노동자들도 그렇고, 생산직 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기업의 필요가 클 뿐이고 이를 거부할 노동자는 많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근로시간을 차등하면 어쩔 수 없이 일을 더 해야 하는 노동자만 늘어날 것이다.

최저임금도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면 음식, 숙박 서비스 등 특정 업종의 노동자들은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받고서라도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 누가 다른 사람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좋아하겠는가! 당장 일을 그만둘 수 없어 참고 받는 것뿐이어서 결국 양극화만 확대할 것이다. 공공부문에 도입될 수 있는 직무 성과급도 공무원을 그대로 두고 공공기관만 도입할 경우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려워 결국 공공조직 내 갈등만 키울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 정책은 이미 박근혜 정부 때 실패한 정책이다. 

둘째, 새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인데, 노동조합은 적이 아니고 순기능을 가진 사회제도임을 인정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사용자들은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이 기업의 순이익을 줄이므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노조의 투쟁은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극도로 경계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기업의 이익을 재분배하는 기능이 있으며 노동자들의 요구를 집단적으로 해소하여 오히려 경영의 안정성에 기여할 수 있다. 입에 넣으면 당장은 쓰지만, 장기적으로 약이 될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기업이나 정부도 헌법이 정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애써 적대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새 정부 쪽에서 노동조합의 강경투쟁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등 기선제압식 발언이 나오고 있어 향후 노정이 감정적 대결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경우 사용자는 반노조 분위기에 휩쓸려 노조에 대한 회피 및 강압 전략을 거세게 밀어붙일 수 있어 극단적인 노사갈등마저 재현될 수 있다. 이러한 과거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부부터 노동조합을 타도 및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같이 협력하고 연대할 사회적 자산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새 정부는 오랜만에 대화를 요구한 민주노총과도 대화하고 지지 여부를 떠나 한국노총과도 미래 노동과제를 진지하게 협의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달라져야 한다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어두운 시대엔 노동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가 어두운 시대를 만들게 될지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보수 정부의 성격상 미래지향적인 노동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시대엔 노동자가 기댈 곳이 노동조합뿐이란 주장에 동의하는 이유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가족들을 생각해 한숨을 머금고 다시 책상에 앉을까,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최저임금마저 차등해서 준다고 할 때 차마 일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을까,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난간을 오를까.

노동조합은 이러한 노동자를 대신해 정부에 할 말을 하고 필요하면 투쟁을 해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조합이 힘을 가져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이해 대변을 전략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협소한 정파적 사고에서 벗어나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5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노동조합이 시험에 빠지지 않고 다만 악에서 노동자를 구할 수 있길.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흥준 정책연구위원이 쓴 글이다. 격월간 <비정규노동> 5,6월호 '정책칼럼' 꼭지에도 실렸다.
#노동정책 #윤석열 #인수위원회 #노동공약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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