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베트남의 재교육 수용소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되고 난 이후, 남베트남에 협력했던 이들은 재교육 수용소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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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군대를 갔다온 이들이라면, 앞에서 언급한 '월남패망'에 대해 한번 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즉, 자유월남이라는 민주적인 국가가 있었는데, 공산당의 침략으로 자유을 잃고, 수많은 사람들이 탈출하거나 재교육 수용소에 구금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일각에서는 베트남 전쟁 종결 이후 공산당 정부에 의해서 수백만 명이 처형당했고, 또 수백만 명이 재교육 수용소에 구금당했으며, 또 수백만 명이 탈출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들은 심각하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으며, 특히나 처형의 경우는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수치가 과장되었다는 사실은 2017년 켄 번즈가 제작한 'PBS 베트남 전쟁' 시리즈를 봐도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화에서는 재교육 수용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얘기한다.
결국 많은 이가 두려워하던 피의 대학살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베트남의 시골에서는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의 사람이 개인적인 혹은 정치적인 보복차원에서 살해되기도 했습니다.
- PBS 베트남 전쟁 10화
이러한 주장은 PBS 베트남 전쟁 다큐멘터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사를 전공한 최병욱 교수의 저서 <베트남 근현대사>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외부의 관찰자들은 대규모 학살이 자행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만은 북베트남 점령군이 국제사회로부터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부분이다.
- 베트남 근현대사 p.172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소위 한국의 우익들이 자주 주장하는 의도적인 대규모 학살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수감자의 숫자는 대략 100만 명 정도였고, 이중 10%인 10만 명이 가혹처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수감자의 재교육 수용소 수용 연도도 천차만별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재교육 캠프에 수감된 이들은 아주 짧게는 3일에서 1주일 혹은 1달 길게는 1년에서 3년 아주 길게는 10년 혹은 15년인 것으로 확인된다. 최대 20년까지 감옥생활을 한 이들도 있다.
언론학 전공인 유일상 교수의 <베트남 역사문화기행>에 따르면, "재교육 캠프에 보내진 이들은 계급과 지위에 따라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년 이상을 지냈으며, 고위급과 직책이 아주 높은 사람들은 10년 이상을 수용소에서 지냈다"고 한다. 1992년 시점으로 재교육 캠프에 수용된 인원은 수천 명도 안됐으며, 이마져도 통일 베트남이 대한민국과 미국하고 수교를 맺는 과정에서 다 석방했다.
재교육 수용소에서 인권 유린이 없었다고 하면, 분명 빈말이다. 그러나 재교육 수용소 최대 수감기간 20년을 훨씬 뛰어넘는 40년 동안 비전향장기수로 있던 이들이 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도 존재했다. 왜 이런 사실은 절대 주목받지 못할까? 이런 점에서 노엄 촘스키가 과거 자신의 저서에서 주장한 "왜 2명의 소련 반체제 인사가 2만 명의 고통받는 라틴 아메리카인들 보다 더 중요한가?"라는 식의 질문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또한 한국의 우파들이 소위 '자유월남'이라 부르는 남베트남 또한 무수히 많은 인권 유린과 처형 그리고 강제 수용소가 있었다는 사실도 외면당한다. 그렇다면 패망하기 이전 남베트남의 상황은 어땠는지 알아보자.
남베트남의 정치적 탄압과 인권유린

▲응오딘지엠 정부에서 사용된 단두대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부 하에서 최소 수천 명 이상이 처형당했다.
위키피디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과 미국이 지원한 나라 남베트남에서도 무수히 많은 인권유린과 억압이 있었다. 소위 자유월남이라고 불리던 남베트남에서는 처형과 체포 및 구금이 일상적으로 존재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가브리엘 콜코에 따르면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부는 1955년부터 1957년까지 대략 12,000명을 처형했으며, 1958년 말까지 4만 명의 정치범을 수용했다. 수용소 수감자의 숫자는 196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수십만 명으로 급증했다.
1965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티우 정부 하에서도 인권 유린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티우 정부 하에서도 전기고문과 물고문은 기본이고, 손톱 고문, 석회수용액 강제로 마시기 등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들이 남베트남 사회에서 자행됐다. 단순히 민간에 대한 미군의 융단폭격이나 고엽제 살포와 같은 전쟁범죄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올리버 스톤과 피터 커즈닉이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I>에 따르면, 남베트남 정부에서는 CIA와 남베트남 측의 '피닉스 작전'으로 수만 명의 무고한 인명을 베트콩으로 몰아 죽이는 전쟁범죄를 저질렀고, '호랑이 우리'라는 수용소를 만들어 정치범을 구금하고 잔혹하게 고믄했으며, 대략 500만 명 이상의 베트남 농민이 원래 살던 곳에서 강제소개 당해 철조망으로 둘러싼 난민캠프에 수용됐다고 한다.

▲응우옌반티에우 1965년부터 1975년까지 남베트남의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티우 정부 하에서 수십만 명이 수용소에 구금됐으며, 잔혹한 고문이 그의 정부하에서 자행됐다.
위키피디아
촘스키와 허만에 따르면 남베트남의 티우 정부가 이끌던 국가는 정치범 숫자에 있어서도 다른 모든 나라 심지어 당시 학살로 유명한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 정부보다도 능가했다고 한다. 200개가 넘는 남베트남의 국립감옥과 수백 개의 지방감옥에 사람들이 수감됐으며, 여기에 수감된 인원이 최소 20만 명을 넘겼는데, 그들은 대개 대학생과 종교인 그리고 지식인 및 노동운동 지도자들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소위 한국의 우파들이 자유월남이라 주장하는 남베트남에서 무수히 많은 인권유린과 정치적 탄압이 있었고, 강제 수용소가 즐비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한국군 민간인 학살 여론을 비난하기 위해 반대측에서 드는 논리가 바로 베트남 전쟁 종전 전후의 재교육 수용소와 처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적 논리는 사회에서 많이 나오고 있지 않다. 따라서 통일 베트남의 재교육 수용소 문제와 미국이 지원한 남베트남 사회의 인권유린과 그 이면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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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전공자입니다. 사회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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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익들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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