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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태종 이방원', 성취와 숙제 모두 남기다

5년 만에 돌아온 대하 사극... 배우들 열연 빛났으나 설득력, 동물 학대 등 논란도

22.05.02 14:00최종업데이트22.05.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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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1

 
KBS1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이 막을 내렸다. 5월 1일 방영된 <태종 이방원>의 마지막회에서는 원경왕후 민씨(박진희 분), 그리고 이방원(주상욱 분)이 2년의 차를 두고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방원이 세상을 떠난 날 비가 내리는 모습(훗날 태종우라고 불렸다)이 드라마를 마무리했다. 한편 이날 방영된 <태종 이방원> 마지막회는 11.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태종 이방원>은 높은 기대 가운데에서 출발했다. <장영실>(2016)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대하 사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돌아온 대하 사극은 반가웠지만, 우려의 여론 역시 존재했다. 이미 여말선초(麗末鮮初 고려 말, 조선 초)를 주제로 한 드라마는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 역사의 스타인 이방원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우려는 더 컸다. <용의 눈물>의 유동근, <정도전>의 안재모, <육룡이 나르샤>의 유아인 등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방원 역시 이미 많았다. <태종 이방원>은 '본 적 없는 이방원'을 그려내야 한다는 과제를 마주했다.

증명된 배우들, 새로 증명한 배우들
 

KBS 1TV <태종 이방원> 한 장면. ⓒ KBS1

 
<태종 이방원>의 김형일 PD는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영화 <대부>(1972)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가(家)를 넘어 국(國)으로, 국가(國家)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슬로건이 보여주듯, 이 작품의 방향점은 명확했다. <정도전>(2014)처럼 정치와 권력의 구도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이방과를 비롯하여, 이방원의 형제들이 비중이 컸던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이방원은 가족과 국가의 가치가 충돌할 때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아버지인 군왕에게 미움을 받는 아들이었고, 동반자이자 정적이었던 아내와의 관계를 파국으로 이끈 남편이었다. 애지중지하는 장남을 내쳐야 하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이방원 역을 맡은 배우 주상욱에게는 이 복잡한 인물의 면모를 모두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주상욱은 이 임무를 잘 해냈다. <태종 이방원> 제작발표회에서 '유동근 선배와 같은 과거의 이방원을 뛰어넘을 순 없겠지만, 우리 드라마만의 이방원이 탄생할 것이다'라고 말했던 바 있다. 그의 공언대로, 주상욱 표 이방원은 점점 자리를 잡아 갔다. 유약한 모습으로 묘사된 극 초반부, 포은 정몽주(최종환 분)를 척살하면서 변화를 맞이한 중반부, 그리고 냉혹한 절대 군주로 올라선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인물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묘사한 연기가 대조적이다.

주상욱 뿐 아니라 김영철, 예지원, 박진희 등 함께 주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 역시 빛났다. 조연 배우들의 역할도 중요했다. 정종 이방과 역의 김명수, 이지란 역의 선동혁, 정몽주 역의 최종환, 이숙번 역의 정태우 등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 배우들의 사극 연기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장르 팬들의 즐거움이었다.

극 후반부에서는 충녕대군(세종대왕)과 양녕대군(이태리 분)의 갈등과 함께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충녕대군을 연기한 2002년생 신예 김민기는 안정적인 연기력을 통해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김민기, 이태리 등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종반부에 새로운 동력을 부여했다. 중반부 이성계의 딸 '경순궁주' 역을 맡은 신인 배우 최다혜는 불가에 귀의하는 장면을 위해 삭발을 마다하지 않기도 했다. 세대를 가리지 않은 배우들의 호연은 <태종 이방원> 시청자들을 집중시킨 가장 큰 근거였다.

<태종 이방원> 이것만 더 있었더라면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이정우 작가가 집필한 <태종 이방원>의 대사는 다른 사극들에 비해 '고어(古語)'의 비중이 작고 직관적인 편이다. 트렌드에 발맞춘 정통 사극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특징이기도 했지만, 대사의 깊이 역시 얕아졌다. 

드라마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 가면서 '32부작이라는 분량은 너무 적다'는 여론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방원이 겪은 삼십 년의 역사를 32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에 압축시키다 보니, 인물의 심리 변화나 하차가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성계는 정몽주와 정도전 등 옛 동지들의 죽음에 눈물을 지었지만, 정작 그들과의 관계성과 유대는 충분히 그려지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약이 아니라 참형으로 숨을 거둔 우왕과 창왕, 비행으로 점철된 양녕대군의 행태, 호전적 무장의 면모가 강조된 정종 이방과 등 고증에 충실한 묘사가 호평받았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주인공 이방원을 묘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다운 군왕은 없소. 군왕다운 군왕이 있을 뿐이오." (<태종 이방원> 마지막회 중)

프롤로그에서 이방원은 양위를 거부하는 충녕대군에게 '어째서 내가 괴물이 아닌 것이냐'라며 울부짖었다. 무인 정사(제 1차 왕자의 난) 직전에도 이화상(태항호 분)에게 '나는 괴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권력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러나 그가 괴물이 되는 것을 불사하면서 만들고자 하는 국가의 모습은 크게 그려지지 않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척을 잔혹하게 숙청하는 모습이 그려졌으나, 백성을 위해 헌신한 태종의 치세나 정치적 방법론에 대한 묘사는 부재했다.

다소 허술하게 연출된 '조사의의 난'은 공중파 드라마 제작 환경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드라마 초반에 등장했던 CG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드라마를 존폐 위기까지 몰고 갔던 동물 학대 논란 역시 제작 환경의 한계에서 나왔다. (7화에서 이성계의 낙마 장면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와이어를 이용해 말을 넘어뜨렸고, 이후 말 '까미'가 폐사하고 스턴트맨이 크게 다쳤다. 이에 따라 방영이 약 1개월간 중단되는 고초 역시 겪었다. 방송가의 동물 학대가 공론화되고, KBS 측에서는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태종 이방원>은 지난 5개월 동안 대하 사극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안정적인 시청률도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사료에 충실한 정통 사극에 대한 높은 수요를 증명했다. 여러 숙제를 남기긴 했지만, 2022년에도 대하 사극은 흥미로운 장르가 될 수 있다. KBS가 지속적인 대하 사극 제작을 예고한 만큼, 이 작품이 대하 사극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태종 이방원 이방원 주상욱 박진희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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