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낮은 담장 실상사 낮은 담장으로 지리산이 보인다
강부미
먹먹한 눈물이 핑 돈다. 그냥 산행이 아닌 순례 가이드 법인 스님의 따뜻한 마음이 더해진 순례길이 내게 준 선물이다. 아, 나는 지리산에 무엇을 주고 가야 하나... 마음 한 자락뿐.
한생명 활동가님의 도움으로 마을 산책을 한다. 실상사 농장, 목금토 공방, 느티나무 한생명 매장도 돌아본다. 어느 곳 하나 진심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하는 척'만 하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시키는 대로, 하던 대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빠른 방법으로 가시적인 성과만 드러나면 되는 세상.
인드라망 산내 공동체 삶의 철학은 달랐다. 모두가 진심을 담고 있다. 내가 모르는 어디선가, 누군가는 이렇게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마음을 다하고 있다. 고맙고, 또 고맙다. 나도 내 자리에서 가장 쉬운 질문부터 다시 해봐야겠다. '나의 業'을 천천히 다시 돌아본다.
저녁 공양 후, 휴휴당 옆 느티나무 아래서 저녁 산책을 한다. 바람 소리, 새 소리가 마음에 잔잔히 들어온다. 법인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다. 한 마디도 허투루 놓치고 싶지 않다. '실상'의 의미를 여쭈었다. 거의 두 시간 동안 '실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어떤 존재도 현 상태로 본래부터 있었던 것은 없다. 반응과 관계론적인 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존재를 이 두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실상이다. 나의 심상이 만들어 낸 감정, 마음, 느낌은 천성과 본성이 아니라 단지 만들어진 것 뿐이다. 만들어진 것이기에 해체도 변화도 가능하다. 동일한 사물에 대해서 반응과 심상을 만들어 내듯이 무한한 기쁨과 행복도 생성할 수 있다. 달은 모든 사람에게 뜨지 않는다. 달은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뜬다.'
이토록 어려운 '실상'의 의미를 이렇게 쉽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시다니 놀라울 뿐이다. 어제저녁 차담에서 도법 스님의 깊이에 놀랐고, 오늘 법인 스님의 통찰에 또 한 번 놀란다. 이 스님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눈앞에 계시는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앎과 삶이 일치하는 고고한 기품이다.
법인 스님이 서울에서 생활하실 때 일화를 들려주신다. 밤늦은 시간 지하철에서 한 남자를 마주하셨다. 술 냄새, 담배 냄새, 삼겹살 냄새에 땀냄새까지 배인 그 사람에게서 악취가 나는데 악취의 역겨움에 앞서 그분의 고단한 하루가 보였다고 하셨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심상이 그려진다. 그 남자의 표정, 곁에서 바라보시는 붓다 법인의 눈빛… 스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마음이 먹먹하여 눈시울이 붉어진다. 눈물을 보인다면 지금 이 말씀이 끊어질 수도 있다.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도로 집어넣는다. 아, 이것이 '실상'이구나!

▲서진암에서 바라본 지리산 능선 서진암에서 바라본 지리산 능선
강부미
실상사 '4월 3암자 순례 템플스테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농사일 수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늦은 밤, '5월 3암자 순례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4월의 나와 5월의 나는 분명 다른 나이고, 4월의 지리산과 5월의 지리산은 다르기 때문이다. 백장암 주지 스님이 수국을 어디에 심으셨는지도 보고 싶다. 4월보다 더 바쁘게 살아야 하는 5월이 끝날 즈음, 나에게 '5월 3암자 순례 템플스테이'를 선불로 선물한다.
도법 스님, 법인 스님, 순례길에 함께 해 주신 일우 스님, 자등 스님, 농사일 수행에 도움 주실 덕산 스님, 구석구석 살펴주신 고마운 자경님, 한형민님, 아기 사슴 밤비님, 2박 3일 함께한 휴휴당 식구들 모두 고맙고 또 고맙다.
집에 돌아와 주일 저녁 미사를 마치고, 조용한 성당에서 나의 주님께 실상사 템플스테이 후기를 자세히 말씀드린다. 스님이 지하철에서 마주한 그 남자 이야기도, 그를 바라본 스님의 눈빛도 이야기해드린다. 주님 말씀이 '호미를 처음 잡아본 너의 인생도 그 남자만큼 가엽게 살았구나. 법인 스님께 한없이 감사드려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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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초등수석교사, <가르침을 멈추니 배움이 왔다>, '배움의공동체 연구회' 회원으로 아이들, 선생님들과 즐겁게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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