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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엄마'가 아니다

[2022 차별없는 서울대행진 릴레이 기고 5] 코로나 시대, 다시 돌봄을 이야기하자

등록 2022.05.09 15:16수정 2022.05.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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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이 불편한 대상자를 부축하는 요양보호사 ⓒ 박내현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지역에서 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 위와 같은 현수막을 보고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복지관이나 작은 도서관 등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늘 '엄마'가 등장했다. 양육을 담당하는 여성에게도 힐링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저 말이 맘에 걸렸다. 왜냐면 양육자인 여성이 혼자 감당하지 못하는 돌봄과 양육을 또 다른 여성에게 넘기는 것처럼 보여서다. 최근에는 손주를 돌보는 조모를 위한 프로그램까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집이나 키움센터 등의 돌봄 기관의 보호자 연락처에는 '엄마'만 있다. 내 주변의 유자녀 여성들은 대부분 자녀 양육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늘 종종거리며 자책한다. 비단 자녀의 돌봄뿐일까. 부모를 돌봄 할 때는 '딸이 최고'라는 말을 한다. 자식이 커서 돌봄에서 벗어날 즈음에는 부모님이 아플 시기다. '돌봄'에서 '간병'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비혼여성은 '돌봐야 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 돌봄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양육이 '모성'을 강요한다면 간병은 '효심'을 요구한다. 간병의 경우 요양보험제도를 통해 요양보호사를 쓰거나 데이케어에 갈 수 있다. 또한 요양병원 등의 시설을 이용하면 직접 간병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설의 간병 서비스를 이용하면 부모를 직접 모시지 않은 것에 대한 죄의식을 갖기도 한다. 양육과 달리 부모 간병은 기존의 경험이 잘 공유되지 않는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돌봄'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

나이 든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 역시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디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프시면, 치매에 걸리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갈등한다. 주변에 먼저 경험한 사람들에게 지혜를 구할 때도 있지만 각각의 케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사회복지 제도나 요양보험 제도 역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나이나  소득, 그 외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서비스를 사람들이 다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가 시작되자마자 '돌봄'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학교가 문을 닫고 각종 돌봄 시설이 폐쇄되면서 돌봄을 해온 사람들의 부담이 커졌다. 전염병의 전파 때문에 식당에 못 가는 대신 배달음식으로 대체했고 교육은 온라인으로 전환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대면해야만 가능한 돌봄은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돌봄이 힘들고 부담스러웠다면 코로나 시기의 돌봄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야기했다.


요양보호사들은 코로나에 걸린 대상자를 만나러 갔고 지역아동센터의 돌봄 교사들도 매일 PCR 검사를 받으며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일했다. 일하는 여성 양육자들은 각종 휴가를 쓰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급식이 중단되고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돌밥'(돌아서면 밥걱정)이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도 생겼다. 

'코로나 블루'가 가정 내 돌봄 전담자에게 심각한 질병으로 나타났다는 통계도 있다. 거꾸로 돌봄을 받아오던 사람들 역시 복지시설이 문을 닫거나 요양병원 면회가 제한되면서 심각한 고립감을 느껴야 했다. 활동지원사가 원활하게 찾아오지 않는 장애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방치됐다. 돌봄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도 돌봄을 하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제도와 정책은 허공을 맴돌았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 '돌봄'은 여전히 여성노동자들의 몫이었다. 그간 무상으로 제공됐으니 시장에서의 돌봄 노동도 저평가되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높은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받는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무나 대체할 수 있는 노동으로 취급받는다. '아줌마'가 아니라 '요양보호사'라고 부르라는 공익 광고까지 하는 노동이 '돌봄노동'이다.

도표와 통계에서 지워진 여성의 가사와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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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KBS 신년 여론조사 ⓒ 박내현

 
"2020년 노동시장의 큰 특징은 여성이 남성보다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성취업자가 남성 취업자보다 큰 폭으로 하락, 고용률도 여성이 남성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성 고용 비중이 높은 부문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가구 내 돌봄의 필요가 증대됨에 따라 유자녀 여성 취업자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8월에 보고된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동향 브리프에 실린 내용이다.   

가정 내 돌봄을 감당하기 위해 집으로 복귀한 여성뿐 아니라 코로나 시기 임시직 일자리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그 피해는 임시직과 같은 질 낮은 노동을 했던 여성에게 돌아갔다(임시직 감소의 60%가 여성 – 2020년 3-5월 고용동향, 통계청).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단절됐던 경력은 코로나 시기에 또 한 번의 단절을 가져왔다. 무임금 노동인 여성의 가사/돌봄은 비경제활동이 되어 다시 도표와 통계에서 지워졌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시기 돌봄이 최대 6시간 증가했고 여성 3명 중 1명이 독박 돌봄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2020년 3월에만 20대 여성 12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이런 소식은 중소 자영업자의 피해나 방역 관련 뉴스만큼 무겁게 다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여성의 노동은 돌봄을 위해 쉽게 포기해도 되거나 남성의 일자리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서울시의 2022년 예산안 및 사업 기조에는 1인 가구와 '안심' 사회에 대한 정책이 있다. 하지만 연령별, 상황별 돌봄, 돌봄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가족 내 여성 돌봄 노동자에 대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여성가족정책실의 예산안에는 '행복한 아동을 위한 안정적인 돌봄 환경 조성'에 해당하는 예산이 6.2%에 불과하다. 그것마저 '아동 돌봄'에 한정되어 있다. 또한 성차별 없는 노동환경 조성 및 좋은 일자리 지원이라는 기본 방향은 있으나 이와 관련된 예산은 2021년 9230만 원에서 2022년 2280만 원으로 1/4이나 줄었다. 

'너머서울'은 지난 4월 29일을 성평등의 날로 지정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성평등 돌봄선언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돌봄의 사회화와 공공화'다. 돌봄에 대한 책임이 국가와 지방자치정부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돌봄에 관한 예산, 조직, 인력을 충분히 갖추라고 요구했다. 무엇보다 돌봄이 특정 성별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을 하는 것, 마을에서부터 돌봄 관계망을 만드는 것, 돌봄을 시민의 권리이자 책임으로 다 함께 고민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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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너머서울 성평등의날에 기자회견하는 모습 ⓒ 박내현

 
기자회견에 참여한 장애여성공감의 서지원 활동가는 말했다. 

"저는 매일 저녁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일 아침 활동지원사님이 일이 생겨서 못 오시면 어떡하지. 활동지원사님도 같은 고민을 하겠죠. 무슨 일이라도 생겨, 몸이 아파서 이용자에게 가지 못할 때를 걱정합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돌봄 현장에서는 이용자와 활동지원사 개인이 대안을 찾고 갈등하고 분투합니다. 돌봄의 갈등과 공백은 장애여성이 돌봄제공자가 혹은 가족과 개인의 몫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 돌봄은 더 치열하게 갈등해야 하는 요소입니다. 장애여성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은 더 커졌습니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나와 돌봄을 지원하는 사람이 동료가 되려면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엄마'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돌봄이다. 가족 중 누가 누구를 돌볼 것이냐는 질문을 넘어 가족이 없거나 돈이 없어도 나의 돌봄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 지역아동센터나 학교 돌봄 교실의 부족함을 아쉬워하는 양육자들이 그곳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들의 급여와 처우, 노동 환경이 나아지도록 연대해야 한다.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간병자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돌봄 이웃으로 존중하는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가 이해충돌의 관계가 아니라 장애인지원제도의 문제를 함께 제기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돌봄을 하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으로 나누지 않는 성평등 돌봄서울, 그곳이 우리가 만날 새로운 서울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박내현은 우리동네 노동권찾기 활동가입니다.
#차별없는 서울 #돌봄 노동 #젠더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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