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라도, 지역과 노동은 만나야 한다

노동조합 재활성화 전략을 위해 필요한 것들

등록 2022.05.11 14:55수정 2022.05.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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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은 2000년대 이후 혁신, 재활성화라는 이름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정규직 중심의 운동 방식, 비즈니스 노조주의에 대한 자기반성이 있었지만, 이러한 진단이나 평가와 별개로 노동운동 재활성화의 실천은 구체화되지 못했다. 그 사이 비정규직은 확대되고 노동(시장)은 양극화되고 노조 조직률은 하락했다.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의 역할과 사회적 위상은 추락하고 있다.

지역과 노동의 만남, 노동운동 재활성화 전략
 

노동운동 재활성화 전략으로 지역1)과 노동의 만남이 주목받고 있다. 지역은 노동을 만나야 하고, 노동은 지역을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이 결합하는 운동, 노동의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지역 공동체를 고민하는 운동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역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분권화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면서 노동정책에서도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화되고, 지역 차원에서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문제가 중요 과제로 등장하였다. 또한,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지역 차원의 연대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호주, 영국, 미국 등 분권화된 나라에서도 노동운동 재활성화와 혁신의 이념과 담론으로 '커뮤니티 노조주의(community unionism)'가 주목받은 바 있다. 커뮤니티 노조주의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공동체 조직들과 적극적으로 연합하는 연합 노조주의(coalition unionism)를 지향한다. 둘째, 개별 사업장 또는 산업 단위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아닌 노조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즉 지역 공동체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역의 공공 이익을 증진시키는 사업에 참여한다. 지역에서 노조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전략이자 지역에서 공동체 조직들이나 개인들과 협력하고 지역으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한 조직화 전략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노성철·정흥준·이철, 2018).

커뮤니티 노조주의 전략의 주요 특징: 조직화와 이해 대변, 연대와 지지, 재활성화

커뮤니티 노조주의 주요한 목적과 특징 가운데 하나는 노조의 조직화이다. 커뮤니티 노조주의는 노동운동이 전통적으로 조직하기 어려웠거나 무시되었던 집단을 운동의 대상과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노조운동 부활에 있어 그 의의가 있다. 작업장 기반의 조직화는 증대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비효율적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불안정 노동자들은 수많은 작은 사업장에 확산되었고, 이로 인해 활동가들이 이들을 접촉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더욱이 이들의 이직률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이들과 작업장에서 장기간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노조가 단일 작업장을 넘어서 지역에 걸친 동일 부문 혹은 산업의 다양한 작업장을 조직화 목표로 설정하고, 조직화 노력에 대해서 공동체에 기반을 둔 조직들과 사회운동 조직들의 지원과 지지를 얻기 위해 공동체에 기반한 조직화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노조는 지역 공동체에 기반을 둔 단체들이 보유한 사회적 네트워크, 즉, 조직화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되었다(황선자·이철, 2009).

둘째, 노조는 노조 조직률이 하락하고 노조의 힘이 약화함에 따라 기존의 단체교섭과 조직화로는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점점 더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지역 공동체 노조주의의 한 형태인 노조와 지역 공동체에 기반을 둔 집단들 사이의 동맹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지역 공동체 집단의 지원과 지지를 얻고, 연대를 형성하고자 했다. 커뮤니티 노조주의는 지역 공동체와 노조 간 동맹을 형성하여 활동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작업장을 넘어서서 사회변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황선자·이철, 2009; 박용석·김태현·이주환, 2021).

셋째, 커뮤니티 노조주의는 노조가 작업장 울타리를 넘어 지역 공동체에 개입하는 것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노조의 재활성화가 전통적인 작업장이나 산업적 배경의 외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커뮤니티 노조주의는 노조 활동과 동원화에 대한 관심을 산업적 노동력으로부터 공간적 노동력으로 전환하였다. 노조가 지역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되고, 지역 공동체 집단들과 공통의 목적을 설정함으로써 노조는 작업장 영역 밖으로 확장된 문제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고, 전통적으로 노조로부터 주변화되었거나 전통적인 조직화 방법으로 조직하기 어려웠던 노동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황선자·이철, 2009; 박용석·김태현·이주환, 2021).


지역과 노동이 만나는 다양한 시도

커뮤니티 노조주의를 명시적으로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한국에서도 커뮤니티 노조주의의 주요 문제의식과 전략,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경험과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지역사회운동노동조합'을 지향하는 '희망연대노동조합'은 조직화가 어려운 협력업체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파업 투쟁 과정에서 정규/비정규, 원하청 노동자 연대를 이뤄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였다. 지역사회 차원의 지역 연대, 나눔 연대, 생활문화 연대 등을 통해 기존의 노조와 다른 활동 방식을 보여주었고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아 더욱 큰 성과를 낸 바 있다.

지방정부의 노동센터들은 취약/불안정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직화를 지원하거나 기존 노조에서 조직하기 어려웠던 대상을 조직하고 이해관계 대변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지방정부 노동센터들은 취약/불안정 노동자들의 임금체불과 불공정한 해고와 같은 경제적 부정의를 개선해주는 '중재 조직(mediating organization)' 역할을 하고 있다.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지역과 업종 차원의 노동자 공제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시도도 등장하였다. 경기도 안산의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공제회 (사)좋은 이웃', 서울의 '봉제인공제회' 등은 초기 노조의 상호부조 기능을 복원하고 지역 공동체와 연대하여 기업 복지를 기대할 수 없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있는 미조직 취약/불안정 노동자의 자조와 상호부조를 돕고, 이들의 조직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유니온(청년, 라이더, 알바 등) 운동은 전통적인 노사 간 단체교섭보다는 다수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여 사회적 교섭, 초기업적 교섭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차원의 연대 확대 필요

노동운동에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재활성화, 취약/불안정 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서는 연대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지역 차원의 사회 연대와 생활문화 연대의 확대로 이어진다. 노동 유연화가 진행되고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있는 새로운 형태의 취약/불안정 노동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노동의 가치가 지역에서 확장되고 노동과 시민의 단절이 극복되는 노동운동을 꿈꾼다면,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지역과 노동은 만나야 한다. 


1) 사회적 공간으로서 지역은 계급적 모순과 비계급적 모순이 응축된 공간이며, 지역 내 다양한 주체(집단)들 간의 전략적 선택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자본에는 생산과 축적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노동자에게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면서 일상적 삶이 영위되는 공간이다. 지역 내 축적의 위기는 새로운 산업구조의 변화를 추동하기도 하며 노동자들의 삶의 위기로 전화되기도 한다.

∙ ∙ ∙참고문헌∙ ∙ ∙
- 노성철·정흥준·이철, 2018, 노동운동의 새로운 시도 혹은 제도적 포섭? 비정규노동센터의 성과와 과제, 《산업노동연구》, 24(2): 137-179, 한국산업노동학회
- 황선자·이철, 2009, 노동조합 지역조직의 역할과 시사점: 미국의 지역노동조합협의회(CLCs)를 중심으로,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 박용석·김태현·이주환, 2021,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 실현을 위한 지역본부 활성화 방안, 민주노총 연구총서 2021-09, 민주노동연구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철 서울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실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5,6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다.
#지역 #노동운동 #커뮤니티노조 #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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