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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주장] 내가 찍지 않았던 후보의 대통령 취임에 부쳐

등록 2022.05.12 11:37수정 2022.05.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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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지난 10일 오전 11시부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같은 시각에 나는 아내와 함께 텃밭에 있었다. 집에 머물고 있었다 하더라도 굳이 중계방송을 보진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틀었더니 중계방송이 나와서 바로 채널을 돌려버렸으니까. 

유례 없는 박빙의 표차로 결과가 엇갈린 3월 대선을 두고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라거나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와 같은 명언을 불러오기에는 '거시기'하다. 

'정치 고관여 계층' 간의 격돌, 제20대 대선

짐작했겠지만 내가 투표한 후보는 아슬아슬하게 낙선했고, 전임 대통령이 발탁해 검찰총장까지 오른 전직 검사가 정치 입문 14개월 만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적 무관심'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선거에서 맞붙은 것은 이른바 '정치 고관여 계층들'이니까 말이다. 

선거를 앞두고 내게 '이민 가지 않아도 되도록 도와달라'고 말하던, 적지 않은 이웃들이 그들이다. 물론 대통령 취임식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나나, 날이 갈수록 보수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짙어가면서 때론 과격해지는 아내도 정치 고관여 계층이긴 마찬가지다. 

상대 후보가 당선하면 이민도 불사하겠다는 엄포는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라고 놓지 않았으랴. '전부 아니면 전무'로 귀결되는 선거 문화가 고착되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정권 심판의 표심이 강했고, 후보의 문제도 적지 않았지만, 선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0.73%p의 표차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민주당 정부의 실정 탓임은 명백하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정부는 그것을 지키지 못한 채 결국 5년 전에 탄핵한 정치 세력에게 정권을 내어주고 말았다. 


정치 고관여 계층에는 단순히 후보자 개인에 열광하는 이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나라가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전망이 있는 이들이다. 즉 이들은 '진보'나 '보수'로 명확히 나눌 수 있는 어떤 확고한 태도와 자세(stance)가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 하고 새 정부의 앞날을 부정하면서 이른바 '불복종'의 심리를 이어가겠지만, 그런 태도가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자신들의 지지로도 새롭게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깨어지면서 이들은 민주주의가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새 정부에 협조하고 편 가르기로 일관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해도 그게 관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태도의 강약이 있을지언정 이들은 명확한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서 행동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가 국민의 반을 우울증으로 몰아넣었다"라거나, "국민 절반이 텔레비전(뉴스)을 보지 않는다"와 같은 농반진반의 이야기가 통용되는 근거다. 

상대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어쨌든 두 달여의 당선자 시기를 거쳐 오늘 취임식이 치러짐으로써 새 대통령의 임기는 시작됐다. 상대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일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지자들은 절치부심, 다음 선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취임식 관련 뉴스를 보지도 듣지도 않음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쓰린 심사를 달래는 것이다. 

취임식 관련 사진을 본의 아니게 봐야 했던 것은 오후에 인터넷에 접속해 이런저런 뉴스를 살펴보면서였다. 관련한 뉴스를 굳이 피한 것은 그걸 보면서 마음이 흐트러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선거일에 내가 지지한 후보의 패배를 냉정하게 받아들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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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이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국회 앞에서 현수막을 펴며 구호를 외치자 경찰들이 저지하고 있다. (영상 캡처) ⓒ 여성가족부폐지저지공동행동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훑어보다가 나는 어떤 동영상 앞에서 숨을 죽였다.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의 여성 활동가들이 취임식장 앞에서 '여가부 폐지 반대'의 기습 시위를 펼치다가 경찰에게 제지당하고 끌려가는 장면이었다(관련 기사 : 취임식장 앞에서 "여가부 폐지 철회하라" 외치다 끌려 나간 여성들 http://omn.kr/1ytpr ).

기사를 보면서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굳이 뉴스를 보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달래고 있을 때, 이 여성들은 현장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소리 높여 외치고 경찰에게 끌려갔다. 그들의 용기와 실천 앞에서 왜 슬픔을 느꼈을까. 여성들의 행동 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던 것일까.

야당(지금은 여당)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비문명적이라 비난하면서 전장연 대표와의 토론까지 치러졌다.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이 언론을 통해 취임식에 초청하겠다고 했지만, 전장연은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대신 전장연은 이날 오전 8시 광화문역에서 여의도역까지 지하철로 이동, 오전 10시께 여의도역에서 여의도공원까지 행진하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관련 기사 : "취임식에 전장연 초청한다더니… 아무것도 안 왔네요" http://omn.kr/1yu6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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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조선혜

  
이 두 장면은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시정이 사회적 약자 보호와는 일정하게 거리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내가 느낀 슬픔은 그러한 조짐을 환기한 까닭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새 정부의 정책이 주권자의 기대와 멀어지면 질수록 이들 주권자와 화해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여든 야든, 상대의 실정에만 기대어서는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주권자들은 심정적으로 "봐라! 이들에게 나라를 맡겨선 안 돼!"라면서 자기 선택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반대편 주권자들이 지난 정권의 실정을 통쾌해하고 엔간한 정책도 폄훼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 메이저 보수 언론조차 이런 논조를 일관해 온 게 지난 5년이니 주권자들의 이런 태도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지하지 않는 정부의 실정을 고소해하면서, 그게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해 준다고 믿는 태도는 사실은 '밑지는 장사'가 될 공산이 크다. 상대방의 실정과 무능에 기대어 이뤄지는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탄생은 지지자들의 표만으로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선거 과정에서 정당은 더 좋은 정책과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주권자들에게 추인받아야 한다. 최근 들면서 적지 않은 주권자들이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정당은 제 실력으로 이겼다기보다 상대방의 실정과 무능 덕분에 승리했다. 그게 뼈 아프면 이제 막 시작되는 임기에 능력을 유감없이 펼칠 일이다. 그래야만 다음 선거에서 자기 능력을 호소해 주권자의 재선택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소야대여서 새 정부는 운신의 폭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탄핵까지 이른 과거의 실정을 성찰하고, 혁신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주권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거대 야당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다수 의식의 힘에 취해 혁신하지 않고, 상대의 실수만 기대어서는 미래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주권자의 성장통'으로 역사는 한 걸음씩 발전해간다

무엇보다도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뒤, 그 정신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내어준 실패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침묵하고 있지만, 주권자들이야말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배를 엎어버리기도 하는 물'이라는 사실 앞에서 겸허해야 하는 이유다. 

썩 마뜩지는 않지만, 나는 새로 출범한 정부가 정치의 정도를 지키며, 올바르게 나아가길 기대한다. 그리고 민생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정책으로 야당과 치열하게 경쟁하기를 바란다. 그 경쟁에서 이기고 민심을 얻는 쪽이 다음 선거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 '이민'을 운운했던 이들 가운데 아무도 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패배 앞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했던 사람들도 마음을 다잡으며 자기 앞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 주권자의 성장통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대통령 지지 않는 주권자들 #대통령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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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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