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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으로 먹고 살기 쉽지 않죠"

[인터뷰] 힙합 프로듀서 제이썹

22.06.03 16:38최종업데이트22.06.0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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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프로듀서 제이썹(본명 이정섭, Jayssup)은 자신만의 뚜렷한 색이 돋보이는 곡으로 프로듀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는 2018년 24케이 플라코(24k flakko)의 블러드 잉크'(Blood Ink)' 곡을 통해 프로듀서로서의 첫발을 뗐다. 이어 대표곡 '문라이트(MOONLIGHT)', '갓미백(Got Me Back)' 등의 콜라보 싱글을 공개했다. 그는 현재 케이팝(k-pop) 시장 진출을 목표로 음악적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혀가고 있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제이썹과 만났다. "식사는 하셨어요? 저는 오늘 추어탕 먹었는데(웃음)." 막 작업실에서 나온 그는 털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편한 옷차림으로 스피커를 만지는 모습이 영락없는 힙합 프로듀서였다. 그에게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현재 힙합시장 대한 생각에 관해서도 들어봤다.
 
pd란 누구인가
 

제이썹 프로듀서 ⓒ 임해정

 
힙합 프로듀서는 곡의 비트, 변주 등 곡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감독과도 같은 존재다. 개코는 엠넷의 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은 래퍼들이 맘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거다"라며 "결국 재밌게 작업할 때 좋은 것들이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프로듀서는 가사를 입혀 줄 래퍼들을 위해 밑그림과 주제, 화자 설정, 분위기 등을 스케치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 프로듀서로서 가장 우선에 두는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함께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클래스 101에서 제공하고 있는 저의 JMC Vol.5 힙합 교육 콘텐츠는 사람들이 시간 낭비하지 않게끔 진심을 담아 기획했습니다."
 
- 왜 힙합은 폭력성과 나르시시즘 요소를 담아야 하나요?
"지금의 래퍼들은 힙합에 비속어를 담아 자유분방함을 거칠게 표현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표현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좋은 표현이 있는데 쉽게 욕 몇 마디로 작사를 하는 것이죠. 앞선 세대들이 쓴 비속어를 배경지식 없이 단편적으로 따라 쓰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외국은 인종차별 등의 문제가 많아서 흑인들이 비속어를 곡에 많이 넣었는데 지금은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느낌이에요.
 
미국에서 힙합은 희망이었어요. 가난한 흑인들의 삶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탈출구였죠. 흑인이 래퍼나 농구선수로 성공하면 '너도 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려고 과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셀프 메이드 같은 희망적인 이야기가 많아요. 지금은 많이 변질된 것 같습니다. 미국 힙합 스타일이 단편적으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 사람들이 힙합을 안 듣는 이유 중 하나는 가사를 음미할 게 없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10년 전에만 해도 가사의 주된 내용이 플렉스가 아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스토리 없이 기계처럼 쓰는 음반이 많아졌습니다. 또 미국은 파티 문화가 있기 때문에 스토리 없이 흘려듣기로 의미 없는 음악을 씁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문화가 없고 정서가 다른데도 그대로 가져오고 있죠. 지금의 힙합은 한국만의 토착화가 없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 스튜디오 안 제이썹과 밖에서의 이정섭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똑같습니다. 평소 작업 스타일은 완벽주의예요. 일 때문에 사람을 못 만나는 경우가 많아요. 과거에는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술도 끊고 친구를 만나는 횟수도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습니다. 평소 삶에 강한 책임감을 가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스튜디오 안과 밖이 똑같아요. 나 자신에게 과하게 엄격한 스타일이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예민한 편입니다."
 
힙합으로 먹고살기
 
- 요즘 래퍼랑 작업은 안 하시나요?
"래퍼 분과 스튜디오에서 1년 반 정도 같이 지내며 작업을 했지만 발매는 안 됐습니다. 발매 이틀 전에 래퍼의 변심으로 인해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비슷한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힙합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있어요."
 
- 음원 출시를 기대하고 곡을 만들었는데, 래퍼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을 때 보상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보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힙합신이 그래요. 일례로 스튜디오를 빌려서 유명 래퍼와 녹음까지 했는데 나중에 단순 변심으로 발매가 엎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보상은 이쪽에서 얘기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좋게 넘어갔었죠. 과거에 자취방도 없이 전전하던 시절 유명한 사람에게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때는 유명 래퍼와 녹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제 다 됐다'라는 생각으로 밤잠 설쳤었죠.

하지만 현실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대부분 래퍼가 갑이고 프로듀서는 을인 관계였어요. 이름을 알아줄 만한 래퍼와 곡을 작업했을 때 20만 원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근데 문제는 저작권료도 너무 적다는 거예요. 이들이 하는 음악의 특성상 차트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서 이름 있는 사람들과 작업을 해도 몇 천원에서 몇 만원 정도가 나와요. 그러다 보니 보상이 확실하지 않은 힙합 음악에만 전념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작곡을 가르치는 개인 클래스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 좋은 사람들과 인맥을 넓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를 들어 유명 프로듀서와 래퍼가 친한 경우에 제 곡을 유명 프로듀서에게 보냅니다. 대신 그 프로듀서가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놓아야 해요. 그걸 유명 프로듀서가 덧붙여서 래퍼에게 들려줍니다. 제가 만든 곡을 마음에 들어 하면 공동 작곡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유명 프로듀서들에게 곡을 계속 보내면서 조금씩 인맥을 넓혀가는 방법이 있어요."
 
- 프로듀서와 래퍼와의 곡 분배 비율은 어떻게 조정되나요?
"지금 크레딧을 보면 한 곡에 작곡가가 6~7명이 붙어있습니다. 제가 기타라인을 만들면 다른 사람이 피아노를 얹고, 또 다른 사람이 드럼을 얹어요. 그렇게 다 나눠 가지면 공동 작곡이 되는 것입니다. 무명 프로듀서가 유명한 아티스트에게 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에요. 직접 교류를 하면서 작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또 작업을 한다 해도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고 남는 게 없는 경우가 많아요.
 
결정적으로 힙합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 것은 힙합 레이블 중 하나인 모 회사를 보고 나서에요. 한 곡에 100만 원 정도로 곡비를 많이 쳐주는 회사입니다. 그 사람들이 1년에 100곡을 낸다고 치면 후하게 잡았을 때 1억입니다. 그 1억을 가지고 모든 프로듀서들이 나눠 가진다 생각했을 때 '이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오는 거죠.
 
래퍼들은 곡비 얘기를 안 꺼낼 만큼 완전한 갑이에요. 때문에 래퍼들의 태도가 엉망일 때가 많습니다. 제가 낸 곡 중에서도 편곡에 래퍼가 협의 없이 자기 이름을 올릴 때가 있었어요. 이런 래퍼들의 태도에 프로듀서들이 점점 지쳐가고 힙합에 등을 돌리게 되는 것 같아요."
 
- 앞으로도 힙합 프로듀서로 활동할 계획이신가요?
"지금 힙합 시장은 과도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유명한 프로듀서들도 레슨을 안 하면 먹고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프로듀서들이 힙합에서 K-POP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K-POP은 비트를 만드는 힙합과 달리 보컬의 멜로디까지 만들어야 해서 복잡하지만 곡비가 괜찮은 편입니다. 또 비즈니스를 아티스트가 아닌 엔터와 진행되기 때문에 애매할 것이 없어요. 저 또한 앞으로 3년 안에 K-POP 최고의 작곡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활동
 

▲ 친한 동생이랑 놀면서 만든게 뮤비까지 나와버렸어요.... ⓒ 제이썹

 
- '문라이트(MOONLIGHT)'와 '갓미백(Got Me Back)'곡의 탄생 배경과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영감으로 작업하는 경우와 전략적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MOONLIGHT'의 경우 K-POP적 요소를 끌어들이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중적이고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감성의 곡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곡은 철저하게 준비과정을 계획하고 길을 만들며 작업했는데, 특히 켄드라재(Kendra Jae)의 '시소(Seesaw)'라는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져오고 싶어서 사운드와 코드 진행에 신경을 썼습니다. 영감으로 하는 작업은 즉흥적인 대화를 통해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Got Me Back'이 그런 케이스죠. 동생과 앉은 자리에서 단시간에 만들어냈는데 곡을 많이 쓰다 보니 쉽게 만들 수 있었어요."

- 프로듀서님이 생각했을 때 좋은 곡이란 어떤 곡인가요?
"한번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들을 이유가 있는 곡이 좋은 곡이라 생각합니다."

- 힙합 외에 다른 장르 중에서 좋아하는 곡 추천해 주세요.
"요즘 좋아하는 곡은 저스틴 비버의 'Peaches', BTS의 'Dynamite'입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음악을 하려고 하다 보니 K-POP, 가요 쪽으로 관심사가 달라져서 힙합을 상대적으로 안 듣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리듬적인 요소가 많은 곡보다 정적이고 멜로디컬한 음악을 선호하는 편이라 생각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물론 음악을 들을 때 분석적으로 듣다 보니 편하게 즐길 수만은 없는 것 같아요."

- 자신이 만든 곡에 의심이 생길 때 찾는 돌파구는 어떤 것인가요?
"먼저 여자친구에게 만든 곡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한 번 더 들어봐요. 제 마음가짐이나 심리상태가 바뀌었을 때 다시 들어보면 또 다르거든요. 그리고 한 곡을 만들 때는 하루 이상 끌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 씁니다."

후배들에게

"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프로듀서가 될 수 있는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매뉴얼의 첫 번째는 성공한 사람들 중 과거 나와 처지가 비슷했던 사람들을 찾아서 롤 모델을 삼는 것입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공한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을 찾으면 길이 보입니다. 

두 번째는 멘토를 찾는 것입니다. 저는 유명한 프로듀서, 래퍼들의 인터뷰를 전부 찾아봤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멘토'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신인 시절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는 좋은 멘토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곡을 카피하세요. 전문가들은 카피를 최소 100곡까지 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카피란 사운드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해야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한 곡 당 10시간씩 들어야 해요. 저도 기본적으로 40곡 이상 카피를 하면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음치라 부모님께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는데 노력으로 커버가 가능해졌습니다."
힙합 프로듀서 프로듀서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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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자회원 임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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