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이것도 성희롱? 치질 수술한 직원에게 이러면 안 됩니다

[박한울 노동의 종말] 직장 내 성희롱을 줄이기 위한 노무관리방법

등록 2022.06.22 05:47수정 2022.06.22 05:47
6
원고료로 응원
a

상시 노동자 수 30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여성가족부 '2021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나타난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경험률 ⓒ 여성가족부

 
지난 6월 7일, 여성가족부는 '2021년 성희롱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 우리 사회의 '직장 내 성희롱' 이슈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었다. 지난 3년간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는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4.8%(남성 2.9%, 여성 7.9%)로 나타나, 2018년(8.1%)보다는 다소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위 조사에서, 피해자의 66.7%가 '참고 넘어감', 즉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갔으며 목격자의 64.1%도 '목격 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개인의 노동인권 침해를 당당히 이슈화하기보다는 감추고 묵인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 준다.

왜 그럴까? 필자는 지난 2017년 한 프랜차이즈 업체 회장의 성추행 파문을 취재할 당시 그 이유를 어렴풋이 느낀 적이 있다. 여직원이 회장에게 잡혀 숙박업소로 들어가다가 뛰쳐나오는 CCTV가 공개된 상황에서조차 적지 않은 이들이 "여직원의 품행이 방정치 못했다"거나, "'꽃뱀' 아니냐"는 근거 없는 의혹을 댓글로 제기하는 등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우리가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이슈를 종국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가십거리로 삼거나 심지어 가해자의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 내 성희롱의 예방'이라는 이름으로 관련 법규가 명문화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히 법적인 규제 차원이 아닌 실무적 차원에서, 반복되는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고 조치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노무적 이슈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방이 최선책이지만

기자 생활을 마치고 노무사가 된 지금, 실무를 마주하다 보면 왜 우리 사회의 직장 내 성희롱 인식이 크게 개선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인구의 구조와 달리 이를 이해하기 위한 교육이 미비하며, 노동자 개인의 의지도 빈약하다는 데 있다. 대표적 예방책으로 법은 사업주에게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연 1회 실시할 의무를 강제하고 있으나, 이 교육이 법의 취지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큰 기업이라 하더라도 인터넷 강의 등을 형식적으로 제공하여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생했는지'만 확인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인터넷 강의 제공 시 별도의 교육시간을 보장하는 사례가 거의 없어, 노동자들 또한 교육을 '귀찮은 것'이라고 인식할 뿐 진지한 마음으로 교육에 임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심지어 10인 미만 사업장(또는 단일 성별로 구성된 사업장)은 사업장 내에 관련 홍보물을 게시하거나, 메일이나 메시지 등으로 자료를 배포하는 것만으로 교육 이수가 증명되는 만큼(시행령 제3조 제4항), 현행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과태료 부과를 회피하기 위한 교육'일 뿐 그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같은 기간(1999~2021) 여성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7.6%에서 53.3%로 상승하며 다른 성별 간 업무상으로 마주하게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e-나라지표)

이런 것도 성희롱?
 
a

세계 여성의 날을 닷새 앞둔 2015년 3월 3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성희롱 근절 등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이 부실하다 보니, '성희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발생하는 사건이 많다. 특히 법원은 성희롱에 대해 "일반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 즉 '성적 언동 등'이 있었고 실제로 이에 따라 상대방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인정되는 경우 성립한다고 판단하므로, "나는 성희롱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항변은 성희롱 성립과 무관하다(대법원 2007.6.14. 선고, 2005두6461 판결).

구체적으로는, ①사업주·상급자 또는 동료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②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연관성이 있는 사유로 ③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행위라면 '남녀고용평등법' 상 직장 내 성희롱이 성립한다.

따라서 ⑴직장 내에서 자신의 높은 직급이나 인사권 등 권한을 이용한 성적 언동이라면 성희롱이다. 일례로, 임원이 신입 여직원들에게 "나에게 잘 보이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수 있다"면서, 특정인에게는 "누구는 야망이 있어서 나한테 다 해주는데 내 진짜 관심은 너"라면서 노골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는 언동을 한 경우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행위로 성희롱에 해당한다. (2021년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운영우수사례집 26p)

⑵상대방이 거부함에도 지속적이고 일방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 법원은 기혼자인 팀장이 소속 여성 팀원이 "불편하다"고 밝힘에도 계속 메시지를 보내 "보고 있어도 그립다"는 등 호감을 표시하고, 자차로 팀원의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여행을 가자거나 식사를 하자고 꾸준히 제안하는 한편 회식 자리에서 해당 팀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등의 언행을 보인 것이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17.12.22. 선고, 2016다202947 판결. 사실관계는 하급심 2013가합536064 참조)

⑶반드시 같은 회사 소속의 인물이나 장소와 연관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거래처 직원 접대를 위하여 여성 직원들을 업무시간 종료 후 진행된 회식 자리에 합석시켜 고객을 위해 술을 따르도록 강요한 행위는 회사의 업무와 관련되어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서울서부지청 노사지원과, 2007)

'남녀고용평등법' 상 '직장 내 성희롱' 판단은 아니지만, 유사한 차원에서 인권침해로서의 성희롱을 다루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인정한 사례도 많다.

⑷대표적으로, 도내 교직원동아리발표회 심사위원장이 심사평에서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게 화장한 것이냐, 좀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미니스커트를 입고 공연하는 것이 어떠냐, 아니면 비키니는 어떠냐?"는 요지의 발언을 한 사례에서, 해당 동아리 활동은 업무연관성이 있는 행위이므로 직장 내 성희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12진정0018100)

⑸동성인 남성 간 성희롱도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치질 수술을 마치고 출근한 남성 직원에게, 공장장(남성)이 농담을 건넨다며 남성 간 성관계를 의미하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 사례를 성희롱이라고 인정한 사례가 있다. (17진정0428600)

⑹다수가 모인 상태에서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더라도 성희롱이 인정된 사례도 있다. 여성 직원이 있는 단체 메신저에서 남성 직원들끼리 음담패설을 계속 주고받은 사례에서, 인권위는 해당 메신저는 업무수행을 위한 온라인 공간으로 업무연관성이 인정되며 피해자가 즉각적·명시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성희롱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17진정0599000)

결론적으로, 성희롱이란 반드시 특정인을 지칭하여 직접적인 성적 단어를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성적 굴욕감을 느끼는 기준이 개인이나 상황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는 만큼, 애초에 오해를 살 만한 언행을 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미 발생했다면

위와 같은 내용을 숙지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이 완벽하게 근절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해당 성희롱이 왜 발생하였는지 그 원인을 찾고, 동일·유사한 성희롱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은 이미 발생한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사건 인지 즉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고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 성희롱이 인정될 경우 가해자에게 적절한 인사 상 불이익을 주는 한편 피해자와 그 조력자에게는 어떠한 불이익 조치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법 제14조). 특히 피해자 등에 대한 불이익조치 위반 시 형사 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법적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는지는 미지수다. 최초 사례처럼 조사 주체인 사업주가 성희롱 가해자인 경우는 당연하기까지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업장 내에서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해 쉬쉬하면서, "가해자의 인생이 불쌍하지 않느냐?"며 오히려 피해자를 설득하는 경우까지 있다.

피해자 또는 제3자인 신고자에게 씌워지는 '내부고발자' 내지 '문제사원' 프레임도 문제다. 앞선 올해 '실태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성희롱 방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피해자 보호(32.7%)를 꼽은 사실만 보더라도, 법의 취지가 제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사업장에서 가장 중시하는 '효율성'이라는 차원에서도, 당장의 문제를 덮어 놓고 쉬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기업 이미지 악화로 이어져 사업의 성패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직장 내 성희롱을 조사하여 조치해야 할 사업주는 신속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한편, 형식뿐 아닌 실질에 있어서도 성희롱 피해자가 안정을 찾고 다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회사 외 전문가와의 심리상담 등을 연결해 주거나, 피해자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최소한의 휴직기간을 보장해 주는 방법이 그 예다.

동시에 가해자와의 관계에서도 공간적인 분리를 포함한 업무 재분장부터, 피해자의 의사에 합치하는지를 살펴 징계 등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 정직 등 징계를 받은 가해자가 복귀한 이후에도 불필요한 이슈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한편, 자칫 관리가 지나칠 경우 가해자에 대한 이중징계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만큼 업무 특성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안적 예방책도 고려해야
 
a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대합실에서 실시했던 성추행 예방 캠페인 ⓒ 연합뉴스


동시에, 잠재적인 성희롱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한 다른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참여법'은 30인 이상 사업장에 분기별 정기회의를 개최하는 노사협의회뿐만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업무상 애로사항을 청취할 수 있는 통로로 고충처리위원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제도는 특히 방치할 경우 성희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전조 현상을 사업주가 미리 인지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성희롱 건이 최초 시도로부터 점차 그 수법이 대담해지고 빈도가 잦아지는 등의 지속적 특성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수에게 더 큰 피해를 발생시키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하다.

나아가 고객으로부터의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일명 '감정노동자법'이라고도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상 규정뿐만 아니라,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의2에서도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을 방지할 사업주의 의무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콜센터 소속 상담원이나 백화점 판매서비스 노동자와 같이 철저히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직무의 경우, 사업주는 정기적으로 고객으로부터의 성희롱이나 괴롭힘이 발생하는지를 조사하여 필요한 경우 배치전환 등 선제적 조치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성희롱의 잠재적 인자를 미리미리 잡아낼 최소한의 절차가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직장 내 성희롱으로 소리 없이 눈물짓는 '66.7%의 피해자'를 줄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노무사 #직장내성희롱 #남녀고용평등법 #성희롱조사 #2차가해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