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이라는 학문은 치료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들의 블루스>와 의학의 역할

등록 2022.06.30 17:51수정 2022.06.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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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2022년 상반기 세간의 화제였다. 여기에는 한지민, 김우빈, 신민아, 이정은과 같은 굵직한 배우들의 힘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희경 작가가 풀어내는 고유하고 깊은 삶의 이야기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김혜자와 이병헌이 연기하는 모자 관계는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극중 김혜자가 연기하는 '옥동'은 제주 해녀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그 중에도 파란만장한 제주에서의 삶을 그는 견뎌왔다. 배 타던 남편이 죽고, 물질하던 딸이 죽고, 아들과 함께 다른 집에 첩으로 들어간 채 죽기 직전까지 한라산 한 번 가보지도, 한글을 깨우치지도 못했다.

'옥동'은 제주도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이 그대로 담겨 있는 캐릭터다. 어업이나 강제 징용, 4.3 사건으로 제주에는 남성이 적었다. 큰 병원이 없어 아이들이 작은 일에 죽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으로 육지와 제주에는 '옥동'과 같은 첩인 이들이 흔했다.(<제주도 여성 문화에 관한 고찰>,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박정희)

그녀의 삶은, 어떤 불행을 겪은 이에게 '노력이 부족했다'며 나무라는 시대의 분위기를 돌아보게 한다. 누군가는 낮은 처우의 비정규직에 취직한 것을 그 사람이 공부를 덜 해서라 말한다.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것은 그가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낮은 처우의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한, 의료보장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한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치료를 받지 못한다.

옥동의 삶을 단지 운명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극 속의 김혜자가 자책하듯, 그녀가 '팔자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옥동의 삶이 제주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듯, 한 개인의 삶은 사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물론 이질성을 가진 이들에게 꼬리표를 달고 돌을 던지는 일은 문명사회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다. 코로나 대유행 당시의 광기도 그런 예이다. 2020년의 동선 공개와 대구유행이 그러했고, 이후에 이태원 클럽 대유행이 뒤를 이었다. 이런 보건학적 위기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기, 정치 사회적 위기에서 늘 사람들은 일탈을 일삼는 개인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사회가 과연 '정상'과 '비정상'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교과서이던가. 이질적인 일탈자들 또한 연속적인 인구집단 내 정규분포의 양 극단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며,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 사회는 거대한 유기체이다.


의학의 최근 동향도 사회의 이러한 모습과 닮았다. 의학계에서는 '맞춤형 의학'이라는 단어가 21세기 전반 사반세기의 화두였다. 최신 의학 발견들은 경쟁적으로 인간 게놈 분석을 필두로 하는 유전학에 기반을 두었다. 이러한 흐름이 병의 기인을 유전자에서만 찾으려는 시도로 비쳐진다는 비난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맞춤형 의학이 그저 돈 있는 개인의 건강만 개선시키지는 않을지, 과연 공동체 구성원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다.

우리 시대는 자꾸만 개인의 불행이나 질병이 한 개인의 탓처럼 보여지게 한다. 의학 또한 개인 수준의 질병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꼬리표 달기'는 아픈 이들에게 마음의 짐을 하나 더 얹을 뿐이다. 질병이 정말 개인 차원의 문제인 것일까 우린 고민해야만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옥동이 가진 삶의 불행들이 시대와 제주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었던 것처럼, 병 또한 온전히 그 개인의 탓이 아니다. 옥동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맥락이 필요했던 것처럼 질병을 가진 개인들 또한 전체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누군가 심근경색에 걸렸다고 생각해보자. 이 병의 원인에는 한 개인의 유전적 소인, 생활 습관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가령,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 집단 차원에서 그런 중독에 빠진 사회적 원인이나, 소금 섭취가 많은 문화적인 원인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일탈의 교정에는 사회 전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여기 1%의 인구에게 50%의 확률로 걸리는 병이 있다 가정한다. 이들에 대해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을 '고위험 전략'이라 한다. 고전적인 의학이 취해온 방향성이다. 그러나 이 병이 1%의 낮은 확률로라도 99%에게 걸릴 위험이 있다면, 실제로 병에 걸리는 사람의 수는 1%의 고위험군보다 99%의 다수에서 더 많다.

즉, 대부분의 질병은 고위험의 위험 인자를 가진 개인에게 발생하기보다는, 다수의 저위험의 개인에게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 인자가 없는 다수에게도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전략이 주목을 받았다. (<예방의학의 전략>, 제프리 로즈, 케이티 콰, 마이클 마못)

그것이 예방의학에서 '인구집단전략'이라 불리는 방식이다. 특정 질병이나 위험성을 가진 개인들에 대한 치료/예방을 넘어, 모든 이들의 습관을 바꾸고자 하는 사회적인 질병 예방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혈관질환에서 국가적으로 소금 섭취를 줄이는 것이나,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는 것, 수돗물에 불소를 타는 일이 그런 종류의 사업이다. 이러한 전략은 실제로 개인의 질병을 개선하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질병에 걸린 개인의 짐을 덜어준다.

위의 사례는 작은 예시이다. 우리가 보다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렇듯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결국 의학이라는 학문이 치료에 머물지 않음을 말해준다. 의학은 공동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다분히 사회경제학적인, 어쩌면 정치적인 학문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바꿔 나가는 길은 끊임없는 투쟁과 정치의 영역이다. 나는 의학계가 단지 병을 고치는 직능 집단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옥동 개인의 불행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제주도를 바꾸는 일에 모두의 관심이 모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류옥하다 기자는 스물네 살 학생기자입니다.
#우리들의블루스 #예방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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