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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서 현실로, 가부장제와 재생산 굴레의 여인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로스트 도터>

22.07.11 16:03최종업데이트22.07.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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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흔하지 않은 소재를 강렬한 필치로 멋들어지게 써놓은 원작, 빼어난 원작을 충실하게 옮겨 각색한 각본, 최고 수준의 배우 캐스팅과 조합,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스태프들의 조력이 한데 모였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여성서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해낼 결심으로 성공적인 배우 인생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고 본인의 첫 데뷔작을 연출한 신예 여성감독이 어우러진다. 그런데 작품의 색깔은 매우 불친절하고 파격적인 주제와 메시지를 던진다. 전형적인 사람들 통념 속 예술영화가 존재한다면 <로스트 도터>는 그에 딱 어울리게 안성맞춤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여성서사를 여성제작진의 힘으로 풀어낸 주목할 작업
 
비교문학 교수인 중년여성 레다는 그리스 해변에 공부할 거리 잔뜩 싸들고 휴가를 왔다. 별장 관리인 라일과 해변 관리 아르바이트 윌 덕분에 고즈넉한 바닷가에서 그녀만의 호젓한 휴가를 만끽할 줄 알았건만, 인근 저택에 사는 그리스 대가족이 몰려와 전세 내다시피 해변을 점유하면서 레다의 심기는 점점 복잡해진다. 그 가족 중 어린 딸 엘레나를 데린 젊은 엄마 니나에게 레다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니나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다의 젊을 적 회상이 현재와 교차하기 시작하며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2+3 구조로 단단히 결속된, 5명 여성의 활약이다. 2는 원작을 쓴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 그리고 그녀의 소설에 매료되어 판권을 산 김에 작가의 권유로 감독 데뷔한 명배우 매기 질렌할의 이야기다. 엘레나 페란테는 국내에도 근래 <나폴리> 4부작과 <나쁜 사랑> 3부작 등이 출간되어 반향을 일으키는 이탈리아 여성작가다. 필명으로 활동하며 대중과 일체 접촉하지 않는 행보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작품은 도덕적이거나 대의명분에 따르기보다는 욕망에 충실한 파격적인 여성성을 제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작가의 원작을 배우로 잘 알려진 매기 질렌할이 멋지게 영상화해낸다. 연출가의 오랜 현장경험에 더해 신예감독다운 긴장으로 각색한 각본의 힘이 발휘된다. 순간순간 긴장되는 상황, 그리고 끝까지 잘 포장된 선물상자를 개방하듯 비밀을 풀어내는 스릴감이 대단하다. 하지만 아무리 잘 짜인 구성의 이야기에도 화룡점정은 필요하다. 결국 관객은 화면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레다 + 니나 + 젊은 시절 레다, 3의 조합 또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테다. <로스트 도터>는 여기에다 최상의 카드를 내보인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경력의 대기만성 상징이 된 배우, 올리비아 콜맨이 비전형성의 주인공 레다 역으로 묵직하게 중심을 잡는다. 그녀의 상대역으로 두 명의 젊은 여성, 현재의 니나, 다코타 존슨과 과거의 레다, 제시 버클리가 합을 맞춘다. 액션이나 공포 장르가 아닌데도 이런 출중한 조합에다 상징적인 심리묘사가 강력해 관객은 보는 내내 안심할 틈이 없다. 그 긴장을 글자로 일일이 풀어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체험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그 체험이란 게 흔히 관객이 발품팔고 금전적 대가를 치르면서 기대하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무척 불편하거나 꺼림칙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특히나 필자 같이 임신출산 체험할 일도, 육아의 수고를 겪어본 일도 없는 한국남자로서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파악은 할 수 있더라도 지극히 꺼려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각적 상징으로 가득 찬 영화 속 소우주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젊을 적의 레다는 전도유망한 소장파 학자다. 그녀는 연구 성과를 통해 학문적 성공을 앞둔 상태다. 그녀의 남편도 학자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만난 커플이다. 둘은 겉으로는 서로 잘 이해하고 말도 통하는 관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의 산물, 환경에 지배받게 마련이다. 남편은 사회 평균적으로 봤을 땐 나쁘지 않은 인물로 그려지지만, 결국 '모성'이라는 족쇄는 번번이 레다를 가로막고 숨이 막히게 만든다. 레다가 산후에 겪는 우울증은 근래 한국독립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코드다. 한국남자는 도저히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지점이지만 실제 이 증상은 핵가족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무시하지 못할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로스트 도터>에서 묘사되는 레다의 스트레스는 그런 묘사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중압이다. 이 압박감은 절대 빠져나올 도리가 없는 늪처럼 그녀를, 그리고 영화를 지켜보는 이들을 빨아들인다. 그런 무저갱 한가운데에 빠진 채 질식된 레다는 끝내 일탈을 저지른다. 그리고 절박한 고민 끝에 가정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극단적 탈주를 감행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수습도 마치고 자신이 원한 삶에 외형적으론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탈은 저질렀으되 그녀에게 남은 죄의식의 덩어리는 지금 현재도 레다를 신경증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그리스 해변으로 근사한 휴가를 떠나면 좀 벗어날 줄 알았건만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다. 잊을 만 하면 툭 튀어나오는 난잡한 지역 청년들의 위협은 그 자체로 레다를 평생 죄여온 사회 시스템과 관습으로 다가온다. 니나와 그녀의 어린 딸을 보며 레다는 자신의 과거를 원치 않게 소환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기억은 결코 그저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밟아왔던 전철을 고스란히 밟는 것 같은 니나에게 레다가 감정을 투영할수록 문제는 복잡하게 꼬여간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데미지 큰 사건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 순간들 하나하나도 그저 편의적 진행을 위한 기계적 전개로 안일하게 흐르지 않는다. 마치 자석의 극이 밀고 당기듯 자기장을 형성하고,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자극하며 강렬하게 끌어당겨버린다. 어느 순간에 그리스의 목가적 해변이 아닌,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지구의 수십 배 중력에 노출되어 짓눌리는 기분이다.
 
영화는 주인공 레다의 과거와 현재의 행적을 결코 옹호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레다는 심각하게 배덕감에 사로잡힌 존재다. 어린 딸들을 버렸었다는 자책감은 마침내 자유롭다는 해방감과 상통한다. 그 감각은 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처럼 대극을 이루지만 떨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에 그녀는 영원히 고통을 받을 것이다. 성공한 교수이지만 때로 레다가 보이는 도착적 태도와 신경질적 반응은 그런 내면이 불쑥불쑥 비집고 나오는 찰나일 뿐이다. 그런 혼돈은 결국 주제로 집약된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야기 속에서 '딸'과 '딸'을 암시하는 존재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버려지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알레고리가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 힘입어 관객에 뇌리 속에 가득 찬다.
 
등장인물들의 이름 하나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레다', 그리스 신화를 즐겨본 이들이라면 귀에 익은 이름일 테다.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의 왕비였던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는 백조로 변신해 그녀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런 사기술에 넘어가버린 레다는 네 쌍둥이를 낳는다. 아들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였다. 카스토르와 폴리데르케스는 그리스 신화 여러 이야기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영웅이다. 하지만 두 딸은 특별하다. 첫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당시 그리스의 맹주였던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둘째 헬레네는 그 다음 강국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결혼하게 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 아닌가? 바로 그리스 신화의 후반부를 종결짓는 트로이 전쟁과 이를 기록한 '일리아드'의 이야기다. 헬레네로 인해 당시 에게 해 바다의 양대 세력 간 10년의 전쟁이 일어났고 트로이는 멸망했다. 그리고 신화에 의한다면 트로이의 후예 아이네아스는 서쪽으로 피신해 이탈리아에 자리를 잡고 로마의 시조가 된다. 그가 중간에 쉬어갔던 도시에서 구애하던 여왕 디도는 아이네아스에게 버림을 받자 저주한다. 그 도시의 이름은 카르타고, 한니발과 포에니 전쟁의 기원이다. 이렇게 신화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서사와 레다라는 이름은 연결되어 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후대에 '악녀'의 대명사로 남는다. 동생 헬레네가 신들이 점지한 운명, 혹은 변덕에 의해 가련한 희생양으로 개인에 대한 비난이 크지 않은데 반해 언니는 아주 능동적인 캐릭터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과 사이에서 낳은 딸을 왕이 폭풍을 벗어나기 위해 제물로 바치면서 사이가 벌어진다. 남편은 10년간 딸을 제물로 바친 전장에서 돌아올 생각이 없다가 마침내 승리했다는 소식과 함께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데리고 귀국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애인과 공모해 남편을 암살한다. 그러자 그녀의 딸 엘렉트라는 아버지의 편에 서서 남동생 오레스테스를 도와 복수한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 공식적인 신화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승되지만 이 살육의 대물림은 후대에 수많은 상상력의 기원이 된다. 레다는 그런 장구한 신화적 서사의 기원이 되는 이름인 것이다. 갑자기 어깨에 짐짝이 얹어지는 기분이다.
 
영화 속 주인공에겐 아들은 없지만 딸은 둘 있다. '비앙카'와 '마사'다. 비앙카는 유럽식 이름으로 '흰색', 마사는 '여주인' 혹은 '부인'을 뜻한다. 둘은 영화에서 젊은 시절의 레다에겐 재앙을 불러오는 신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존재로서 야누스의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가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안 되는, 귀엽고 사랑스럽다가도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아이들에 대해 갖는 공포의 총합 같은 존재들이다. 신화 속 레다의 두 딸을 떠올려본다면 키득키득 웃거나 혹은 오싹한 전율을 느낄 순간이 아닐까.
 
중년의 레다에게 젊은 날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촉매제 캐릭터 '니나'는 '소녀', '손녀'라는 유럽식 인명이다. 젊을 적의 좌충우돌 혼란스럽던 자신을 그녀에게 투영시키는 레다에겐 이름도 딱 어울리는 존재다. 니나의 말 안 듣는 딸의 이름은 '엘레나', '횃불'이나 '번갯불'을 칭하는 그리스어에서 기원한다.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엘레나의 활약상을 보면 이름이 제격이라고 다들 동감할 테다. 그리고 니나가 속한 대가족의 일원이자 니나의 감시자 역할을 맡은 '켈리'의 풀네임은 '칼리스토'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진 니나와 달리 40대가 넘어 첫 아이 출산을 앞둔 상태다.
 
레다와 칼리스토는 초반 기 싸움부터 시작해 영화 내내 엮이는 사이다. 적대적 관계에서 호감으로, 다시 의혹과 불편함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둘의 관계를 관찰하는 것 역시 영화의 긴장감과 떼어낼 수 없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런 칼리스토 이름의 유래는 역시 그리스 신화다. 아르카디아의 왕 뤼카온의 딸로 태어난 칼리스토는 순결을 덕목으로 삼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던 존재다. 하지만 역시 제우스가 아르테미스로 변신해 그녀를 강간한다. 그 결과로 그녀는 아들 아르카스를 낳게 되고 아르테미스에게 쫓겨난다. 그리고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남편에게 강간당한 피해자 칼리스토를 투기심 때문에 곰으로 바꿔버린다.
 
그렇게 끔찍한 일을 겪고 숲으로 도망쳐 숨어살던 칼리스토에게 장성한 아들 아르카스가 사냥을 하러 나타난다. 졸지에 아들이 어머니를 죽일 지경이 되자 다급해진 제우스는 모자를 하늘의 별로 만들어버린다.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기원에 대한 유래다. 출산과 육아 경험이 없는 칼리스토는 레다에게 호기심에서 계속 캐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지극히 냉소적이다. 레다의 실제 경험은 그랬으니까. 하지만 칼리스토에겐 지극히 불친절한 태도로 비춰질 뿐이다.
 
<로스트 도터>라는 영화는 그리스 신화를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 판이하게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들을 영화 속에 그대로 대입할 경우, 레다와 칼리스토는 제우스로 상징되는 가부장제의 현재와 미래의 희생양으로 재생산 구조에 일조하는 것을 운명으로 강요당한다. 레다는 이를 거부하려 했고 칼리스토는 받아들일 태세다. 하지만 칼리스토 역시 불안과 두려움이 없을 리 없다. 니나는 젊은 시절의 레다를 반추하는 거울, 자신이 겪은 경험을 올곧게 전하고 힘이 되어주고 싶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그런 덧없는 주인공의 시도를 흡수하는 거울이다. 그리스의 해변에서 고대의 신화는 끊임없는 윤회처럼 되풀이된다.
 
고대 신화의 상징체계를 빌어 현대 가부장제를 쏘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왜 작가는 그리스 신화를 소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알레고리를 굳이 원작의 핵심 뼈대로 삼았을까? 신화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이 적어도 유럽과 서구사회에선 기본 교양이라는 전제를 갖고 임했을 테다. 이를 위해 좀 더 그리스 신화의 기본 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엄청나게 방대하고 심지어 난삽하게까지 읽혀지는 그리스 신화의 핵심 축은 두 개의 전쟁이다. (이 구조는 J.R.R. 톨킨이 자신의 중간계 연대기에서 <실마릴리온>과 <반지의 제왕>을 통해 차용한 바 있다) 전반부를 결정짓는 전쟁은 바로 '기간토마키아', 아버지 크로노스와 앞 세대의 신들을 물리치고 권좌에 오른 제우스에게 거인신족인 기간테스가 반란을 일으키고, 올림포스의 신들은 모든 것을 걸고 전쟁에 돌입한다. 이때 신들의 편에 설 영웅들을 만들기 위해 제우스의 난봉 행각이 벌어졌다는 지극히 편의적인 주석이 붙는다.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필요한 존재, 헤라클레스를 낳기 위해 수많은 시도가 존재했고 제우스가 신이고 인간이고 가리지 않고 강간과 납치를 거듭해 낳았던 숱한 반인반신들은 다 헤라클레스의 실험체였던 셈이다.
 
신화에서 상징은 많은 경우 역사적 배경을 은유한다. 제우스의 성범죄를 옹호하는 이런 설정은 고대 사회에서 여성에게 재생산 의무를 강요하는 가부장제가 정착하는 과정을 은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기간토마키아가 끝나자 이제는 필요가 없어진, 하지만 그냥 놔두기엔 너무 수가 불어버린 영웅들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대 전쟁을 일으켜 한꺼번에 정리하기로 한다. 이제 인위적 인구조절의 시간인 것이다. 트로이 전쟁 과정에서 반인반신들은 숱하게 죽어나간다. 그들과 혈연관계인 올림포스의 신들도 서로 자기 혈족을 구하기 위해 개입하거나 참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의 막장 극엔 이런 배경이 숨어 있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레다는 비교문학 교수다. 문학은 신화의 이야기를 전승하고 기록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이런 주인공의 배경 설정과 맞물려 신화적 상징체계는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관객에게 동일한 기반에 근거한 풍성한 상상과 비유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가 폭력과 제도에 의해 정착한 뒤로 큰 틀은 변하지 않은 채 굴러온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무게감이 주인공의 삶에 깊숙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 전모를 소화한 관객에게 레다가 보이는 충동적이고 느닷없어 보이던 행동들은 하나의 맥락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며 체제를 향해 울부짖는 매미가 되다
 
영화는 내내 그런 레다의 심리를 초월적 존재가 시험하는 것처럼 끊임없는 상징과 암시로 부각시킨다. 그리스 해변의 모든 조각조각이 레다의 과거와 겹쳐지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녀는 강제로 호출된 과거의 기억을 회고하며 자신에게 묻고 답한다. 하지만 모든 게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리 없다. 레다는 전혀 이상화된 존재가 아닌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녀는 '이기적인 엄마'가 되기를 선택했지만 그 길을 끝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가지도 못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렇다면 레다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 해도 주인공이 현모양처로 개심할 일은 전혀 없어 보인다. 죄의식에 고통당하는 수고를 평생 안고 갈지언정, 그럴 일은 없다. (또 그리스 신화를 차용해보자면) 레다는 신화에서 신들에게 끝까지 거역하고도 사과하지 않고, 끔찍한 형벌을 겪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존재들, 시지프스나 탄탈로스의 여성화된 캐릭터라고 하겠다. 오히려 탄탈로스의 딸, 잔인한 신들이 자신의 금쪽같은 딸들을 모조리 빼앗아 가버렸던 니오베가 그래도 굽히지 않고 저항한다면 가장 걸맞을 테다. 모두가 옳다고 믿거나 거역하길 포기했었던 신들에게 의문을 제기한 극소수의 운명은 현재에도 여전히 가혹한 것이다. 신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신화와 맞서는 것만 빼고.
 
그런 주인공의 행로는 지극히 인간적이다. 레다는 완전하기는커녕 끊임없이 혼란하고 충동적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캐릭터다. 그렇게 주인공을 강제로 이상화하지 않은 덕분에 관객은 주인공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자신에게 스스로 판단을 구하고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그 접근법의 탁월함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행위는 심호흡 몇 번으로는 도무지 모자랄 피로감을 수반하지만, 근래 겪기 힘들던 격렬한 영화적 체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뛰어난 베테랑 스태프들이 각 분야별로 이야기를 든든히 받쳐주지만 음악에 특히 주목해보면 좋겠다. 주로 1950~1960년대 풍 음악들이 추억의 사진첩을 레다가 넘기듯 활용된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이야기 구성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런데 중반에 이질적인 순간이 딱 한번 있다. 1980년대 전성기를 떨쳤던 미국의 메탈밴드 본 조비의 대표곡 중 하나, Livin' on a Prayer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지독히 남성 중심적인 음악 같지만 가사를 음미해보면 주인공 레다의 이야기와 직통하는 걸 확인할 수 있을 테다. 이 영화에는 허투루 쓰인 장면과 장치가 거의 없다. 인형도, 벌레도, 오렌지에도 숨겨진 코드와 은유를 보물찾기하듯 꼭 발견해 보자.
로스트 도터 매기 질렌할 엘레나 페란테 올리비아 콜맨 제시 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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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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