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과 제습기의 콜라보레이션
남희한
잠자리에서의 냉방도 중요하다. 자면서도 땀을 흘리는 아이들의 몸 위로 떨어지는 에어컨 냉기는 가랑비에 옷 젖는 격으로 아이들 몸을 서서히 얼려 버린다. 다음 날 아침이면 시큰거리는 코를 문지르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다.
방안 에어컨을 돌리면 금방 추워지고 끄면 어느새 더워지는 통에 아내는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예약해 둔 자동 꺼짐/켜짐 기능이 무색하게 에어컨을 수동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다. 아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 정도와 느껴지는 체온을 바탕으로 운용되는 수동 시스템은 어떤 IOT 기기보다 세심하다. 때문에 아내의 수면은 질이 낮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거실의 에어컨을 켜두고 열린 방문 사이로 선풍기 바람을 불어 넣는 것이다. 한 뼘 정도 벌어진 방문 아래쪽으로 에어컨의 냉기를 머금은 선풍기 바람을 불어넣으면 위쪽으로 방안의 더운 공기가 빠져나간다. 마치 무더운 여름 대청마루 그늘에서 숲에서 불어오는 살랑바람을 맞는 느낌과 비슷하다.
이 방법을 적용한 날부터 더워서 깨는 아이가 없어졌고 아내도 한밤중의 에어컨 운용에서 해방됐다. 모든 가정에 적당한진 알 수 없지만 냉방병이 걱정인 가정이라면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안타깝게도 이런 환경도 모두에게 최적일 순 없다. 유독 땀이 많은 셋째는 언제나 밖에서 뛰놀다 들어온 모습을 하고 있다. 방글방글 웃는 볼에 땀이 주르륵. 안습이다. 여름이면 땀 닦는 전용 수건을 마련해 줄 정도인데, 미안하게도 나머지 다섯 식구는 뽀송뽀송한 탓에 냉방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셋째에겐 미안하지만 이런 여름엔 공리주의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대신에 푹 젖은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를 말려주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나의 번거로움이 더해져도 네 명은 행복하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무더운 날이 지속되면 나가는 것이 두렵다. '집 나가면 고생'이란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마치 그것이 진리라도 되는 냥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집돌이를 자처한다. 시원한 바람 속에서 감상하는 영화는 한없이 여유롭고 손에 든 책장의 넘김은 우아하다.
하지만 이런 낙원은 나와 아내만의 것이다. 이 최적의 환경 속에서 네 아이는 심심함을 토로한다. 레고니 미미니 메카드니 하는 장난감도 이들의 원기를 소진시키지 못하고 한 쪽 구석에 처박히고 만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빨래마냥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 사그라지지 않는 그들의 원기는 결국 시무룩함으로 바뀌어 집안의 기운을 빼놓는다. 나가면 부모의 기운이 빠지고 나가지 않으면 아이들의 기운이 빠지는 아이러니. 어른 2명 대 아이 4명. 이때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부모의 용기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