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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중인 '확장현실' 콘텐츠, 세계 영화제 판도 흔들 것"

[인터뷰]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김종민 XR 담당 프로그래머

22.07.18 15:45최종업데이트22.07.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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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XR 프로그래머 ⓒ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회제


 
 
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새 역사를 썼을 당시, 영화제 한 켠에서는 대형 부스가 마련돼 세계 영화인들의 눈길을 끈 바 있다. 다름 아닌 XR(확장현실, Extended Reality) 특별 코너였다. 2010년대 주목받기 시작한 가상현실(VR) 관련 기술이 영화에도 접목되기 시작했고,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으로 파생되며 XR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하게 됐다.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또한 2016년 VR 영화를 소개하며 국내 영화제 중에 가장 발 빠르게 해당 콘텐츠를 선점했다. 코로나 기간인 2020년, 2021년엔 인천국제공항 청사와 협력해 XR 콘텐츠 전시를 마련했고, 올해 영화제 정상 개최에 맞춰 대대적으로 확장해 별도 텐트 및 만화박물관 공간을 활용해 관객을 맞이했다. 영화제 막바지 중 XR 콘텐츠를 수급하고, 각종 행사를 기획한 김종민 XR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부천국제영화제의 XR 섹션은 '비욘드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지난 17일까지 진행됐다.
 
다양한 콘텐츠로 만족도 높여

올해 부천국제영화제 초청된 268편 중 XR 관련 콘텐츠는 42편. 비중으로 치면 약 15프로 수준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XR 영화를 소개하고 있는 베니스영화제나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 이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가 세계적인 수준에 있다, 아시아 중에선 최대 규모"라며 김종민 프로그래머가 운을 뗐다.
 
"아무래도 XR 콘텐츠는 어디서 상영하는지 공간이 되게 중요하다. 영화는 스크린으로 보잖나. XR은 공간과 콘텐츠가 어떤 조화를 이루는지 판단하는 게 핵심이다. 2019년엔 부천 아트벙커B39에서 나름 잘 진행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못 쓰게 됐다. 올해 알아보니 공사 중이더라. 그래서 부천 만화박물관과 현대백화점의 협조로 이렇게 진행하고 있다."

 
각 공간에 맞게 콘텐츠를 배치하면서 관객들 반응도 뜨거운 편이었다. 당장 행사 첫 주말엔 예약이 꽉 차 취재 나간 기자들도 몇몇 작품을 관람하기 어려웠다. 특히 XR 하면 떠오르곤 하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없이도, 가볍게 랜턴 모양의 센서를 들거나 맨몸으로 관람 혹은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눈에 띄었다.
 
"문준용 감독의 <별을 쫓는 그림자들>은 특별 텐트 안에서 센서가 달린 랜턴만 들고 관람할 수 있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들이 반응하는 식이다. 권하윤 감독의 <구보, 경성 방랑>은 소설의 한 구절을 들으면서 1930년의 경성을 산책하는 콘셉트다. 우리가 공간을 인식하기 위해선 걷는 게 가장 원초적이면서 기본적인 방법이잖나. 가상 공간을 직접 걷게 함으로써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식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기간 관람할 수 있었던 권하윤 감독의 <구보, 경성 방랑> 전시 공간. 1930년대 경성 거리를 소설 <구보씨의 일일> 한 구절을 들으며 걸을 수 있었다. ⓒ 이선필


    
과거엔 기술만 강조된 단편적인 콘텐츠가 많았다면, 올해 들어 유독 이야기 완성도도 높아진 작품들이 늘었다는 게 김 프로그래머의 설명이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실형을 살았던 김경묵 감독은 교도소의 경험을 직접 XR 콘텐츠로 만들어 출품하기도 했다. < 5.25㎡ >라는 작품은 김 감독의 독방 경험을 오롯이 살리는 식으로 실제 크기에 맞춘 작은 방 안에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김종민 프로그래머는 XR 콘텐츠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금은 디지털라이징 된 콘텐츠가 중심인데 다음 단계는 실시간 스트리밍일 것"이라며 그는 "인물과 배경이 실시간으로 흘러간다면 영화 세계관에 관객이 들어가 직접 역할을 할 수 있다. 메타버스 초기 단계지만 지향하는 바는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통신과 3D,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관객 반응에 따라 축적된 데이터가 시뮬레이션 되는 식이다. 여러 콘텐츠가 개발 단계다. 이번 영화제에선 미국 9.11 테러 사태로 직접 돌아가 관객들이 당시 현장을 배경으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9/11: 생존자의 기록>)가 있다. 베니스나 칸에서 XR 관련 콘텐츠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일반 마켓은 한산해지는데 XR 쪽은 성장하는 분위기다."

또다른 기회의 장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기간 중 열린 XR토크 행사. 김종민 프로그래머(왼쪽)가 모더레이터를 맡았다. ⓒ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회제


 
물론 여러 한계점도 보인다. 초기 3D 콘텐츠 때처럼 XR도 실제 콘텐츠 산업에선 상용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무거운 기기가 필요하다는 점, 통신 장애나 서버 문제 등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일반 영화 관람보다 방해받을 요소가 많다는 점이 한계점으로 꼽히곤 한다.
 
"초창기에 비해 XR 콘텐츠 질이 높아진 건 분명하다. 어지럽고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이 줄었다. 전화기와 비행기가 우리의 시간적 지리적 감각을 바꿔놓았듯, 근미래에 XR 또한 관객들의 시공간 인식을 바꿔놓을 것이다. 3D의 경우엔 입체감이 있는 건 알겠는데 이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선 답을 주는 콘텐츠가 없었다. <아바타> 정도만 있었지. 근데 XR은 다르다. AI든, 버추얼 이미지든 확장 가능성이 다양하다. 3D는 스크린이라는 제한이 있다면 XR은 공연, 게임 등 응용 분야가 넓다. 이를 테면 방탈출 게임도 XR로 충분히 더 재밌게 구현할 수 있지.
 
극장의 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엔 광장에서 필름을 보는 식이었다. 소음과 여러 환경 요인으로 관람이 불편했는데 극장이 생겼고, 이젠 멀티플렉스 시대가 왔다. XR도 적응 과정을 거치는 식이다. 체험 형태기에 일단 맛을 보면 비용을 쓰게 돼 있다. 등산도 빠지기 시작하면 신발과 각종 장비를 사게 되잖나. XR이 꼭 영화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각종 체험형 콘텐츠로 나아갈 수 있다."

 
김종민 프로그래머는 "나아가 교육 영역, 펜데믹으로 제한된 여행도 XR 기술을 통해 보완 가능할 것"이라며 무한 확장 가능성을 강조했다. "핵심은 해당 경험을 돈을 주고 볼 만한지 여부"라며 그는 부천국제영화제가 XR 콘텐츠 확산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관객분들도 일단은 봐야 알잖나. 그래서 이런 장을 마련한 것이다. 아티스트들도 이런 작품을 만들어 봐야 가능성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분명한 건 2시간 보여주고 마는 게 아니라, 관객들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끌고 와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영원히 자신의 세계관에 살게 할 수도 있고, 이건 창작자에겐 또다른 기회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BIFAN XR 김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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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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