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은 며칠동안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빌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수학여행 계획서를 짰다.
서부원
수학여행 계획을 온전히 아이들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주제와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세부 일정과 소요 예산을 짜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들 각자에 일임했다. 제출 기한을 공지하고 서식만 제공할 뿐, 계획서를 작성하는 단계에서 교사는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교사는 아이들의 계획서가 제출되면 취지와 실효성 등을 고려해 선별하는 일에 개입할 뿐이다. 계획이 여럿이면 자연스럽게 소규모 여행이 꾸려지게 된다. 당장 코로나로 인해 학년 전체가 한꺼번에 이동하는 대규모 수학여행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바라는 주제는 하나같이 서울과 수도권 지역으로 모였다. 스스로 계획하도록 했더니 지금껏 대세였던 제주도 선호 현상이 꺾인 셈이다. 수학여행을 요긴한 진로 탐색 활동 기회로 삼으려다 보니 아무래도 관광지인 제주도보다 서울 쪽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총 225명 중 44개의 계획서가 제출되었고, 두 차례에 걸친 검토와 회의 끝에 16개 프로그램이 최종 선정됐다. 장난기 섞인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흠잡을 데 없었지만, 동반하는 교사 수가 한정되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교사 없이 아이들끼리 보낼 순 없는 노릇이다.
물론, 교사는 동반할 뿐, 인솔하지 않는다. 아이들 스스로 세운 계획이니 앞장서 인솔하기도 어렵다. 최종 선정된 프로그램별로 모둠이 꾸려지면, 아이들과 똑같은 모둠원으로서 함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뿐이다. 모둠원 수는 동반 교사를 포함해 15명이 넘지 않도록 했다.
모둠별로 '영업'이 시작됐다. 수학여행 기간 내내 함께할 모둠원을 영입하기 위한 물밑작업이다. 각자의 흥미와 적성에 부합하고 진로가 비슷하며 계획을 세운 모둠장과 친하다면 금상첨화다. 제출된 계획서를 내켜 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플랜 B'도 별도로 마련해두었다.
아직 진로에 대한 뚜렷한 확신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을 위한 여행 주제를 따로 준비하는 건 교사의 몫이다. 남산타워에 올라 장쾌한 경관을 선물하는 것도 좋겠고, 한양도성을 거닐며 옛 서울의 모습을 떠올려보도록 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다.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수학여행

▲ 1차 심사를 통과한 26개의 계획서를 대상으로 교사들이 취지와 실효성 등을 고려하여 선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서부원
새로운 도전에는 늘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지만, 지금까지는 큰 무리 없이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여행 계획을 짜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고, 교사들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입을 모은다. 수학여행의 관행을 탈피하자는 취지에 두루 공감한다는 뜻일 테다.
그렇다고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없을 리 없다. 낯선 서울 도심에서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뚜벅이' 여행이라 자칫 길을 잃고 헤맬 가능성도 있다. 동반한 교사 1명이 모둠의 아이들 14명과 내내 함께 다니며 소통해야 하는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동반 교사는 안전 책임자라는 달갑지 않은 감투까지 써야 한다. 교사들은 이번 수학여행을 위해 지난 겨울방학을 이용해 사흘간의 안전교육을 이수했다. 지금껏 십수 차례 수학여행을 다녀왔지만, 이번처럼 많은 교사가 기꺼이 함께한 적은 없었다. 말 그대로, 의기투합의 힘이다.
지난 주말, 담임교사들이 대표로 사전 답사를 다녀왔고, 선정된 주제별로 모둠원 구성은 방학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 숙소 계약도 마쳤고, 모둠별 예산 집행 방식에 대한 행정실과의 협의도 얼추 끝났다. 명실공히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수학여행은 이제 출발 신호만 남았다.
사족. 마지막 문장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카톡이 울렸다. 전북 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단체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코로나에 집단 감염됐다는 뉴스를 동료 교사가 보내왔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밤잠 설쳐가며 준비해왔는데, 순간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탄식을 쏟아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 줄짜리 답장을 보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번 수학여행을 기획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왜 없을까마는 어찌해 볼 수 없는 것까지 굳이 마음에 담아두고 싶지 않아서다. 떠나는 날까지 아직 석 달 넘게 남았으니 기다려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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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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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는, '판·선·책 수학여행'을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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