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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에 인생 2막으로 제주 '배'를 택하다

[인터뷰] '제주비너스호' 새내기 선장 손기혁씨

등록 2022.08.04 14:12수정 2022.08.0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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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후반은 물론이고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에게 은퇴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정년퇴직이나 명퇴는 당사자의 몫이 되었다. 또 그렇게 퇴직했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 길어진 수명만큼이나 경제활동 기간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디 퇴직 걱정 없는 평생직장은 없을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영업 창업에 관심 가져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영업자 3곳 중 1곳이 폐업을 고민한다는 뉴스는 창업을 꿈꾸며 터무니없이 부풀던 자신감을 단숨에 움츠러들게 한다. 그렇다면, 어디 망하지 않는 자영업은 없을까?

찾았다, 내 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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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호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모습은 육지와는 또 달랐다. ⓒ 추광규

 
"제주도는 조금만 나가도 수심이 백수십 미터로 씨알이 굵다." 

부산과 경기도 시흥 등에서 20년 넘게 상가건물이나 공장 등에 필수적인 내선공사를 주로 하는 전기사업을 했다는 손기혁(50)씨. 그의 손에는 이제 공구가 아닌 낚싯배 키가 쥐어져 있다. 2년 전 귀어를 택한 후 제주에 입도해 올봄 장만한 9.8t 낚싯배 '비너스호'의 선주 겸 선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내기 선장 손기혁. 그는 어떻게 나이 오십 줄에 제2의 인생을 제주도에서 그것도 거칠어 보이는 배 사업을 하게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직장인들에게는 부럽기만 한 정년이 없다는 낚싯배 선장직을 택했을까? 본인의 의지에 따라 체력이 허락하는 한 물리적 나이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60대는 청년이고 70대는 중년이라고 했다. 

새내기 선장 손기혁은 취미를 생업으로 삼은 경우다. 바다낚시의 매력에 푹 빠져 어종을 불문하고 십수 년을 즐기다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 2년 전 제주도 귀어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낚싯배 선장을 꿈꾸면서 6년 전에는 소형어선 면허도 땄다. 다른 낚싯배 사무장으로 승선하면서 제주도 바다와도 친해졌다.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위해 수년전 부터 차곡차곡 준비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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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호의 선주이자 새내기 선장을 맡고 있는 손기혁 ⓒ 추광규


지난 7월 26일이다. 제주도 밤바다가 보기 드물게 잔잔하다. 마치 호수 같다고나 할까? 손기혁 선장이 운항을 맡은 '비너스호'는 오후 5시 반쯤 낚시객 12명을 태운 후 제주 도두항을 벗어났다. 삼십여 분 만에 포인트에 도착한 듯 낙하산처럼 생긴 풍닺을 펼쳤다. 갈치낚시나 오징어 낚시는 조류를 따라 고기를 잡는데 여기에 필수적인 게 바로 풍닺이다. 물속에서 낙하산처럼 활짝 펼쳐진 풍닺은 조류에 따라 낚싯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든다.


풍닺을 활짝 펼친 비너스호는 해가 지기 시작하자 집어등에 불을 밝힌다. 선상이 대낮보다 더 환해진다. 1800w 집어등 수십개가 밤바다를 밝히는 가운데 낚시객들은 본격적인 제주 여름밤 한치 낚시 삼매경에 푹 빠져들었다. 제주 여름 별미 중 하나인 한치는 부드러운 식감에 횟감이나 물회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낚시객들이 선호하는 어종 중 하나다. 

수온이 갑자기 4도나 떨어지면서 한치 입질이 뜸하다. 그래도 선내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진다. 제법 큼직한 한치가 여름 밤바다의 어둠을 헤치고 '오모리그'와 '아카메탈' 채비에 걸려 배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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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여 올라온 한치가 한 마리씩 쿨러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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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는 가운데 다리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다리 길이가 한치 밖에 안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한 치는 새끼 손가락 한 마디라고 한다. ⓒ 추광규


바다낚시 즐기다 배 사업에 뛰어들어

비너스호의 선장 손기혁의 표정이 밝지 않다. 3일 전만 해도 하룻밤 낚시로 큼지막한 쿨러를 가볍게 한가득 채웠다. 하지만 하루 전부터 입질이 갑자기 뚝 끊겼다고 했다. 그 같은 상황은 이날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바닷속 사정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한치 떼가 수면위를 떠돈다. 수온이 맞지 않는다는 증거다. 

낚시객 쿨러가 채워지지 않으면 선장의 속은 타들어 간다. 여름 밤바다 한치 낚시는 고작해야 한두 번 이동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이날 밤 내내 비너스호는 네 차례나 자리를 이동했다. 한 번 자리를 옮긴다는 게 풍닺을 거두고 펼쳐야 하기에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니다. 또 한번에 이삼십 분은 훌쩍 지나간다. 그럼에도 자리를 이동한 것은 선장 손기혁의 고기 욕심 때문이다. 손님들이 다른 포인트에서 한 마리라도 더 낚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손 선장은 배 사업의 장점으로 "즐기면서 하는 게 좋은 거고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탁 트인 바다가 직장이니 거치적거릴 게 없는 셈이다. 또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시도 때도 없이 즐길 수 있을테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실제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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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여 올라온 한치 한 마리를 썰었다. 얇게 써는게 요령이고 했다. ⓒ 추광규

 
전기사업을 접고 배 사업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전기만 만지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 힘도 들었다"면서 "취미로 바다낚시를 즐기다 어느 순간 배 사업에 대한 꿈을 꾸었다. 실행에 옮기려 하자 집사람도 좋아하고 잘 따라 주면서 갈등 없이 선택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도 갈치낚시의 특징과 관련해서는 "육지 쪽은 산이 막혀 있고 섬이 많다 보니 조류가 약하다. 제주도는 물조류가 세고 파도 또한 거칠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육지 쪽은 800g짜리 봉돌을 주로 쓰지만, 제주도에서는 1kg짜리를 사용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차(본채비에 묶은 가지채비줄 길이)도 제주도는 2m 30cm이고 통영 여수 쪽에서는 1m 80cm를 쓰고 있다. 제주도가 조류가 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통영 여수권은 몇 시간을 나가야 수심이 80~90m가 된다. 이와 반해 제주도는 20~30분만 나가도 수심이 120m가 넘는다. 그렇다 보니 조류도 세고 잡히는 갈치의 사이즈도 굵다"면서 "여수 통영권과 비교해 같은 20kg을 잡는다고 해도 그쪽은 삼지 짜리가 많은 반면 제주도권은 사지 오지(삼지는 성인 손가락 3개 사지는 손가락 4개 너비)가 많다"고 말했다. 

현지 어민들과의 갈등은 없느냐는 물음에는 "어민들하고 갈등은 없다. 서로 지킬 때 지키고 (낚시배들이) 어선한테는 양보를 많이 한다"면서 "지킬 것만 지키면 갈등은 없다. 어선이 하고 있으면 저희가 피해준다. 조금씩 양보하면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갈치낚시가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생활레저로서 가능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갈치는 회유하는 난류성 어종이기에 배낚시로 인한 어자원 고갈은 우려하지 않는다"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안전을 최우선 하는 가운데 손님들한테 서비스 잘하는 것"이라고 순박한 미소를 띠면서 답한다. 제주도 배낚시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그가 비너스호를 찾는 손님들에게 하는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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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혁 선장이 비너스호를 배경으로 포즈를 잡아 주었다. ⓒ 추광규

 
가족여행시 한치 낚시를 추천하는 이유

7말 8초를 맞아 여름 휴가가 한참이다. 제주도 여름 밤바다는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동해 밤바다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제주도를 빙 둘러 환하게 빛나는 어화(漁火)는 도심 속 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1일부터는 갈치 금어기도 풀린다. 이렇게 시작된 제주도 갈치낚시는 늦가을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핫시즌인 9월 10월에는 많게는 15개에 달하는 바늘마다 갈치가 물고 올라오면서 가을 밤바다를 은빛으로 수놓는다. 

선장 손기혁이 몰고 있는 비너스호는 제주 '은갈치호' 선단 소속이다. 은갈치호(VIP) 스마일호 등의 낚싯배가 함께 한다. 선단으로 움직이기에 어군 정보 획득에 유리하다. 또 선단 소속 선박끼리 서로 보호하기에 안전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여름휴가를 제주도에서 보낸다면 하룻밤 정도는 선장 손기혁이 몰고 있는 비너스호에서 한치 낚시나 갈치낚시를 즐기는 건 어떨까? 

가족여행이라면 갈치낚시보다는 한치 낚시를 권한다. 갈치낚시에 필수적인 비린내 나는 꽁치 미끼 다듬는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한치 낚시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낚시로 그만이다. 초보자도 쉽게 낚을 수 있는 게 한치 낚시다. 더 큰 매력은 내가 직접 잡은 한치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먹는 즐거움이다. 원시적 수렵의 본능이다. 

비너스호 선상에서 바라보는 제주시 야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거리가 2~3마일쯤 될까? 그 모습이 환상적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형형색색의 불빛은 잔잔한 수면 위를 일렁거린다. 낚시꾼의 눈동자에도 가득 들어찼다. 제주시 뒤쪽으로는 어둠 속에서 한라산 능선이 그 자태를 아스라이 드러낸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한라산의 또 하나의 얼굴이다. 그렇게 잊지 못할 제주에서의 하룻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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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콩국에 우무가 부드럽게 목을 넘어간다. 육지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맛이다. ⓒ 추광규

 
밤을 세우면서 헛헛해진 빈속은 사무장이 야식으로 내온 진한 콩국물에 말아낸 우무가 채운다. 별미 중의 별미였다. 선장 손기혁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가운데 어느새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날 철수는 새벽 4시경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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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아침 제주시 서부두 수협 공판장에서는 어부들이 잡아온 싱싱한 갈치 경매가 한참이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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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아침 서부두 공판장에서는 외국인 선원들이 잡아온 갈치를 공판장으로 내리고 있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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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이 잡은 갈치는 크기별로 10kg 나무상자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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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갈치 어선배 선원은 이제는 대부분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 추광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립니다.
#한치낚시 #갈치낚시 #비너스호 #손기혁 #은갈치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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