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바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임천택의 후손 마르따 임 김 (왼쪽 사진) / 멕시코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익주의 후손 다빗 킴 (오른쪽 사진)
정수현
"미국, 멕시코 이민 배에 올랐던 디아스포라 1세대 대부분은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한다. 그래서였을까. 당신들의 곤곤한 형편을 알았기에 사무치는 그리움만큼이나 이 땅을 잊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들의 디아스포라는 곧 독립운동의 역사가 된다." - <뭉우리돌의 바다> 서문에서
'생존이 곧 독립운동이다?'
단번에 납득되지 않는 명제는 그의 취재기라 할 수 있는 <뭉우리돌의 바다>를 읽다보면 수긍이 간다.
안창호, 박용만, 서재필, 이승만... 미주 독립운동사를 이야기 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명망가들. 허나 온갖 천대와 괄시를 받으면서도 한인회를 꾸리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곤궁한 형편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식들 교육에 신경을 썼던, 수많은 동포들의 참여와 후원이 없었다면 명망가들의 활동이 가당키나 했을까.
그곳이 어디 미국뿐이었겠는가. 멕시코와 쿠바에서 그랬고, 중앙아시아와 유럽에서도 그러했다. 하물며 한반도 가까운 땅, 중국과 연해주에서의 이야기야 말해 무엇하랴.
망해가는 나라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낯선 땅으로 내몰렸던 이들을 위해 어떤 보호막도 되어 주지 못했다. 나라를 빼앗기고 35년,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국호(國號)를 대신하여 그들은 온몸으로, 질긴 삶으로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증거했다.
어느덧 해방 후 80년에 가까운 세월. 이제 이역만리 디아스포라 4세, 5세, 6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한민족의 원형을 기대하는 건 난망한 일이다. 그래서 더욱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는 질문 하나. "대체 조국은 그들 조상에게 무엇이었으며, 현재 그들에게 조상의 나라는 어떤 의미인가?"

▲ 쿠바의 한인 후손 3세 에스민다 아만도 김 가족의 사진
정수현
전시회의 부제는 '뭉우리돌을 찾아서'다. '뭉우리돌'은 백범일지에 등장하는 단어로 김구 선생이 독립정신의 상징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전적으로는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게 큼지막한 돌'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 돌이 저절로 둥글둥글 해졌을 리 없다. 모진 풍파에 모서리가 깎여 나가는 아픔을 딛고 그렇게 만들어졌을 테다. 그 풍파는 말도 통하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멀리서나마 조국의 독립을 염원해마지 않았던 간절함이었다. 그 풍파는 우리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있는 해외독립운동에 대한 무관심과 망각일 수도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8월 15일 광복절. 그동안 놓치고 있던 또다른 뭉우리돌은 없을까.

▲ 멕시코 이민 1세대들이 반노예상태로 고된 노동을 감내해야했던 애니깽 농장. 그들이 하루를 시작하던 새벽 5시의 여명을 책 표지로 삼은 <뭉우리돌의 바다>.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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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불러낸 사진, 한민족 디아스포라 100년을 머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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