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 반지하방이 침수되면서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9일 오전까지 물이 빠지지 읺아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물이 가득 차 있다.
권우성
20대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한 명은 본가가 지방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을 잡으면서 서울로 이사하게 됐다. 당시 가진 게 별로 없던 친구가 구한 방은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였다.
반지하라고는 하지만 햇볕이 좀체 들지 않는 방이었다. 친구는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라 너무 무섭다며 늘 불을 켜놓고 잠을 청하곤 했다. 반지하의 구조상, 화장실이 방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 나이 서른이 넘을 때까지 그 친구는 자력으로 그 방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2000년대 대학을 다녔다. 그 시절 본가가 지방인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다. 학교를 핑계로 자연스레 독립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부모로부터 늘 독립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학교도 직장도 집도 모두 수도권이었기에 통학이 가능했고, 독립의 명분이 없었다. 그 시절은 그래도 지금과는 다르게 하숙이든 자취든 한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안에 있었다.
요즘은 사정이 다른 것 같다. 아마 내가 지금 20대였다면 아무리 독립을 갈망한다 해도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을 부러워하진 않을 것 같다. 요즘 지방에서 온 아이들이 소위 인서울 대학에 붙어 이주를 하면 대부분 가는 곳은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이라고 한다.
서울의 집값은 이제 평범한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수도권이 본가라 대학도 직장도 오갈 수 있는 이들과, 지방이 본가라 20대 초반 시작부터 빚으로 보증금을 내고 월급을 쪼개 월세를 내는 이들의 미래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서울, 안정적으로 거주하기 힘든 땅
결혼한 뒤 섬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나는 이따금 내 자녀들이 훌쩍 자란 먼 훗날을 그려보곤 한다. 미래엔 학교나 직장 문제로 아이들이 서울로 이주해 살아갈 수도 있다. 그때 아이들은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아이들의 생활비는 우리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일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아찔해진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은 누군가에게는 안정적 거주를 꿈꿀 수조차 없는 땅이 됐다. 그럼에도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이들은 어디로 갈까. 역시 지하방이나 옥탑방 그리고 고시원이다. 사람들은 이 셋을 합쳐 '지·옥·고'라고 부른다.
반지하는 취약한 치안과 사생활 노출 등의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보금자리가 돼주고 있다. 옥탑방은 전망은 좋을지 모르나 역시 단열, 치안 등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고시원은 그 이름과는 달리 고시를 준비하던 이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도시 하층민의 거주지로 의미가 바뀐 지 오래다.
최근 쏟아진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이들이 사망했다. 안타까운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마음 아파했다. 시간당 100mm가 넘는 집중호우와 순식간에 불어난 물은, 이들의 반지하방 탈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변 이웃들이 도우려곤 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지하 공간에서 속수무책으로 갇힌 이들을 도울 수는 없었다.
매번 비슷한 지역서 물난리 되풀이... 중장기 대책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