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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들 점수 높아봤자 쓸모없다"던 법대교수도 '우영우' 봤을까?

[선채경의 OTT로 시사 읽기] 법대에서 만난 '권모술수 권민우'들에게

22.08.24 11:30최종업데이트22.11.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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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정의로울까? 꼭 그렇진 않다. ⓒ 셔터스톡

 
법을 공부하면 정의로운 사람이 될까?

내가 경험한 법학과는 '권모술수 권민우'가 수 백명쯤 있는 곳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환경으로부터 받은 특혜는 없으며, 정의로운 결과를 만드는 건 노력과 재능뿐이라 믿었다. 스스로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왜냐면 법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 이성적이며 나는 그런 법을 배우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최수연의 말마따나, 그들은 "약자를 괴롭히고 싶은 거면서 정의로운 척"하는 무리에 가까웠다.
 
드라마로 치면 '한바다' 정도 되는 유명 로펌에서 '남학생' 인턴을 구한다는 공지가 학과 단체 채팅방에 올라왔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묻자 단순한 서류 작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왜 남학생만 뽑아요?"
"최근 몇 년간 계속 여자만 합격해서요. 이번에는 남자 인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됐어요."


불행히도, 내가 다닌 대학에는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 없었다. 대신 장승준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어떤 교수는 "여자애들이 토익과 리트(법학적성시험) 점수가 높으니까 로스쿨에는 잘 들어가는데, 어차피 졸업하면 할 일이 없다. 그래서 OO 여자대학교는 쑥대밭 됐다"는 조롱을 강의 중에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차별이라는 것은 그런 거다. 우영우가 로스쿨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서 아무리 높은 성적을 거두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것처럼. 사회적 약자가 월등한 노력과 재능을 증명했을 때, 타당한 이유 없이 그저 '비장애인 남성'이 필요하다며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계적 평등을 주장하는 '법학과 권민우들'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강의실에 '봄날의 햇살'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 대학 내 차별, 교수의 혐오 발언 등을 문제삼으면 '프로불편러'라는 날선 공격과 조롱이 돌아왔다.

권민우가 말하는 '공정'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이미지 ⓒ ENA


"이 게임은 공정하지가 않아요. 우영우는 매번 우리를 이기는데 정작 우리는 우영우를 공격하면 안돼. 왜 자폐인이니까."

지난달 21일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아래 <우영우>) 7화에서 권민우는 분노를 표출하며 소리쳤다. 우영우는 실력으로 권민우를 이겼지만, 권민우는 영우를 이기기보단 '공격'하고 싶어 했다.

자꾸 여자가 남자를 이기니까 이젠 남자끼리만 경쟁시키겠다고 했던 그 로펌 같았다. 약자가 차별을 극복하고 승리하자, 역으로 공격하는 방법으로 다시금 차별하고자 한 것이다.

드라마 초반 그의 캐릭터는 공정에만 천착하느라 구조적 차별은 알아채지 못하는 현 세태를 꼬집은 듯했다. 시청자는 그를 <우영우>의 악당이라 여겼다.

이런 '권모술수 권민우'의 갑작스런 성장이 의아할 수 있지만, 주변을 잘 살펴보면 강기영, 최수연, 우영우가 있었다. 드라마에서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어도 그는 알게 모르게 그들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다 서서히 스며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권모술수 권민우'의 오은영이 되어준 사람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출연진 ⓒ 강기영 인스타그램

 
"같이 일하다가 의견이 안 맞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 얘기해서 풀고 해결을 해야죠. 매사에 잘잘못 가려서 상 주고 벌 주고. 난 그렇게 일 안 합니다."

강기영은 영우를 배척하는 권민우의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은 '함께' 소통하는 협업을 중시한다고 강조한다.

"내 말은요, 괜히 우영우를 괴롭히고 싶은 거면서 정의로운 척하지 말란 말이에요. 진짜로 사내 부정을 문제 삼고 싶으면 대표님부터 문제 삼으세요. 왜 강자는 못 건드리면서 영우한테만 그래요?"

동료 변호사 수연은 "우영우가 강자"라는 권민우의 궤변에 '강약약강'이라고 일갈했다. 이렇게 그들은 영우를 향한 공격에 침묵하지 않고 맞섰다. 이 목소리들은 권민우를 그냥 통과해서 지나지 않았고, 켜켜이 쌓였다. 마지막으로, 권민우는 장승준 변호사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워한다.

개연성 부족한 결말에 아쉽다는 의견이 많지만 나는 어쨌든 권민우의 변화를 환영하고 싶다. 더 이상 그는 차별주의자를 대변하지 않는다. '현실 권민우들'은 드라마 속 이입 대상을 잃었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부정청탁을 마다치 않는 장승준'이 될 것인가,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처세며 정치며 내려놓을 용기'를 가질 것인가의 선택이 남았다. 부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결말이 내가 만난 권민우들에게 가닿는 메시지가 있었길 바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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