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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가 만든 고등어와 계란말이의 힘

새벽 2시 퇴근... 식탁에 놓인 밥상을 보며 일의 심리적 가치를 생각하다

등록 2022.09.03 19:44수정 2022.09.0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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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서니 새벽 2시다. 퇴근이 늦었다. 집안은 고요하다. 어머니는 깊이 잠드셨는지 기척이 없다. 행여 깨실까 살금살금 걸어 주방부터 찾는다. 엊저녁부터 물 한 모금 못 먹었다. 씻을 생각도 없이 배부터 채워야 했다. 아, 그 심정을 이미 다 헤아리고 있었다는 듯 어머니는 고등어를 굽고 계란을 돌돌 말아 식탁 위에 얌전하게 올려놓으셨다.


고등어는 살짝 설익었다. 시력이 좋지 않으셔서 대충 감으로만 익혀 그렇다. 계란말이는 성기게 말렸다. 손에 힘을 줄 수 없는 탓이다. 그래도 노약한 어머니께서 못난 장남 생각하며 손수 만드신 거다. 불평 않고 맛나게 먹는 게 도리다. 게다가 그건 어머니께서 남의 손 빌리지 않고 하신 100% 엄마표 반찬이다. 그만큼 맛있는 거 세상에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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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구이와 계란말이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고등어 구이와 계란말이. 생선은 덜 익었고, 계란말이는 성기게 말렸다. ⓒ 이상구

 
고등어만 살짝 더 익혀 늦은 저녁을 먹는다. 2~3년 전만 해도 그 정도면 한 끼 분량도 안 됐다. 근데 나이 들어선지 식욕이 별로다. 고등어 반 마리, 계란 반쪽만 먹고도 배가 부르다. 남은 음식은 반찬통에 담아 냉장고 깊숙이 넣어둔다. 행여 다 먹지 않았다고 서운해 하실까 봐 그리 숨겨두는 거다. 그리고 어머니께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엄마, 정말 맛나게 잘 먹었어요. 그런데 힘들실 텐데 이제 그만 하셔도 돼요~" 

큰 수술 후 일상생활도 남의 손을 빌려야 할 만큼 쇠약해지셨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당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신다. 당신의 끼니는 늘 직접 차려 드신다. 설거지도 손수하신다. 오늘처럼 간단한 찬거리도 만들고 화분에 물도 주신다. 행여 힘드실까 하지 마시라 해도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 제발 그냥 내버려 두라며 애원까지 하신다. 왜 그러시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일하는 사람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일을 한다. 일이라 하면 흔히 직업으로서의 노동, 즉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일은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당장 돈이 되지 않을지라도 일로 간주하는 게 많다. 예컨대 가족 부양을 위한 가사나 사회와 이웃을 위한 봉사 등이 그렇다. 아마추어들의 창작활동이나 학생의 공부 따위도 넓은 의미에선 일로 본다.


물론 일의 일차적 목적은 자신의 생계유지와 생존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우린 일을 해 돈을 벌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일을 통해 창출된 결과물은 거의 다 나 아닌 타인을 위해 쓰인다. 봉사나 가사는 물론 직업으로서의 일도 그렇다. 목수가 만드는 의자,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 등은 당장 그걸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한 재화와 용역이 된다.  

물론 목수와 변호사도 누군가의 생산물로 자신의 결핍을 채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어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내 결핍을 채우며 산다. 그건 마치 수천수만의 톱니바퀴가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 원리와도 같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스스로 그에 적응하며 살아온 것이다.

성경(가톨릭)에 '네 일은 온유하게 하라'신 말씀은 과연 세상의 창조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가까이 엮여 있으니, 내가 만든 생산물에 담긴 나의 감정과 뜻은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가장 겸손하고 정성을 다해 일에 임해야 나도 그에 버금가는 것을 선물 받을 수 있다는 합당한 논리를 강조하신 거다(집회서 3장 17절).  

일은 우리의 숙명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은 단순히 경제적인 대가만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그보다는 일을 통해 느끼는 보람, 성취감, 만족 등과 같은 심리적 가치의 비중이 더 크다고 그들은 소리를 높인다. 셰프가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맛있게 먹는 고객을 보며 만족을 얻고 소설가가 자신의 글을 감동적으로 읽는 독자들에게서 그 보람을 찾는 것처럼.  

그런 일의 심리적 가치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귀히 여기는 자존감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거야말로 자본주의 체제가 더욱 단단히 뿌리를 내린 현대 사회에서 가장 빛나는 일의 가치일 것이다. 삶의 수단이어야 하는 일이 목적으로 둔갑해 오직 일을 위한 일에 우린 너무 오래도록 시달리며 살아 왔기 때문이다.

일하려는 의지를 무력화 시키려는 건 나태의 유혹이다. 귀찮아서, 힘들어서, 그냥 놀고 싶어서 사람은 일을 거부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오래 놀아 본 사람은 잘 안다. 그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게 얼마나 잔인한 형벌인지를. 자의건 타의건 휴지기가 길어질수록 육신도 정신도 곪고 썩어간다. 그러므로 일은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인 것이다.

어머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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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과 작은별 손톱 끝처럼 가는 초승달 아래 작은 별이 반짝 매달려 있다. 엄마와 내 모습 같다. ⓒ 이상구

 
당신은 입에 대지도 않으시면서 어머니가 고등어를 굽고 계란을 부치는 것도 기실 그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일 거라 짐작한다. 물론 가장 먼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의 한 표현이겠지만 어머니는 그것으로 당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 아직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그걸 수시로 일깨우려 하시는 건지도 모른다.

TV 같은 데 등장하는 우리 엄마 또래의 다른 엄마들도 다 그러신다. 새우처럼 굽은 허리를 하고도 그 너른 밭의 김을 매고, 방에 앉으셨어도 잠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고 연신 걸레질을 하신다. 그러면서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 라고 당신들은 말씀하신다. 그런 거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하고 불안하신 거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본능처럼 그러신다. 

처음엔 노약한 어머니가 걱정돼 일을 말리기도 했지만 이젠 굳이 그러지 않는다. 충돌을 감수해 가며 만류하기보다는 진정으로 감사드리고, 격려해 드리는 더 맞는 것 같아서다. 게다가 그렇게나마 움직이신다는 건, 그만큼 기력이 남아 있으시다는 반증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그냥 일하시는 어머니가 그 모습 그대로 더 오래도록 함께 계시기만을 기도 드린다.

쓰잘 데 없이 상념이 깊었다. 나도 또 아침 일찍 일 나가려면 얼른 자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아직 할 일이 남은 것 같다. 싱크대 위가 어지럽다. 요리가 힘드셨는지 어머니는 미처 뒷정리까진 하지 않으셨다. 하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잘 먹었으면 나도 그 값은 해야 한다. 양념통들을 수납장에 넣고 설거지를 하고 개수망까지 깨끗이 비운다.

꽉 찬 쓰레기와 음식물 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선다. 주차장 한 켠의 분리 수거대에 그것들을 고이 내려놓고 허리를 쭉 펴며 푸르스름한 새벽하늘을 올려다 본다. 바로 앞 동 옥상 위에 손톱 끝처럼 가는 초승달 하나와 그 끄트머리에 작은 별 하나가 반짝이며 매달려 낮게 떠 있다. 얼핏 어머니 발치에 꼭 붙어 있는 내 모습인가 했다.  이마에 스치는 바람이 어느새 서늘하다. 
#어미니 #일의 의미 #고등어와 달걀 #만찬 #초승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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