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명절 선물로 한우 대신 굴비를 선택했다
이준수
친지께 드릴 선물 고르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부모님 용돈 액수 정하는 문제는 조금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용돈은 명절 당일에 현금으로 드려도 되고, 상황이 여의찮으면 계좌로 이체해 드려도 무방하다. 반면 선물의 경우, 택배가 몰리는 추석 시즌을 피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편이다.
선물은 현금보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받는 분의 나이, 취향, 식습관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인스턴트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에게 참치나 햄 통조림 류를 선물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명절을 전후해 중고거래 사이트와 앱에는 통조림, 생활용품 세트를 되파는 게시물로 가득하다. 내 선물이 중고 게시물 중 하나로 등록되는 비극은 피하고 싶다.
선물은 가격대도 천차만별이고, 종류도 무한대에 가까워 선택이 까다롭다. 더군다나 올해는 깜짝 놀랄만한 고물가로 가격이 심상치 않다. 3년 전에는 15만 원 내외면 꽤 괜찮은 한우 등심 2kg 세트를 살 수 있었다. 어른들이 소고기를 즐기셔서 두 세트를 구입한 기억이 난다. 소고기를 가족 단위로 든든하게 구워 먹으려면 못 해도 2kg는 돼야겠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올해는 휴직 중이므로 한우 선물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가격이나 보고 결정하자 싶어 두루 검색을 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액수로 살 수 있는 한우 등심이 1kg~1.5kg 밖에 되지 않았다. 한우 세부 등급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고 해도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절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나마 정육보다는 수산물이 가격대가 만만했다. 나는 '제주 갈치, 옥돔, 고등어 혼합 선물세트'와 '법성포 보리 굴비 선물세트'를 나란히 두고 저울질해봤다. 금액은 둘 다 7만 원 선이었다. 7만 원이 저렴한 액수는 아니지만, 정육 선물 세트를 검색한 후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졌다.
더 가격대가 낮은 상품은 포장이나 내용물이 아쉬웠다. 이제 어지간한 예산으로는 그럴싸한 선물을 마련하기 조차 힘든 시대가 돼 있었다. 과거의 가격을 떠올리며 현재의 인플레이션 가격을 비교하는 일이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불과 몇 년 전의 가격이 떠올라 자주 당혹스러웠다.
나는 '법성포 보리 굴비 선물세트'를 골랐다. 양이 넉넉지는 않지만, 가족끼리 기분 내며 몇 끼 맛있게 먹을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동일한 선물 세트를 여러 주소로 부치고 결제도 마쳤다. 이틀간 선물을 고르느라 신경을 쓴 탓인지 안도감과 피로가 동시에 밀려왔다. 이제 추석 용돈 액수 정하기만 남았다.
뭐가 그리 중요할까, 결국 마음인데

▲ 예년보다 얇아진 추석 용돈 봉투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준수
명절 부모님 용돈 액수에는 정답이 없다. 마음을 전하는 데 의미가 있기에 자기 사정에 맞게 재량껏 정하면 된다. 용돈을 고집하지 않아도 괜찮다. 용돈 대신 함께 가는 여행도 멋진 선택이다. 교통이 혼잡한 연휴를 피해 한 주 앞당겨 혹은 늦춰 추석을 쇠도 상관없다. 명절 마음 나누기는 어디까지나 각 집안의 일이고 자유다.
다만 우리 집의 경우 내가 부모님과 자동차로 5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살기에 자주 뵙지 못하고, 차례상을 함께 차리지도 않는다. 다달이 용돈을 챙겨드리는 것도 아니고, 벌초 같은 집안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이런 연유로 명절에나마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을 담아 약소하게 용돈 봉투를 마련한다.
올해도 양가의 봉투 두 개를 마련해서 똑같은 액수를 채워 넣었다. 봉투를 밀봉하고 나니 문득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귀향 일정도 알릴 겸 해서 전화를 드렸다. 안부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부모님이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너희 애들 키우느라 빠듯할 텐데 아무것도 들고 올 것 없다. 카센터 가서 장거리 운전하기 전에 정비나 한번 받고 와라."
자식 나이가 육십이 넘어도 팔순 넘은 부모에게는 아이처럼 보인다더니, 서른여섯의 나도 부모님 앞에서는 자동차 수리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듣는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것인지, 나도 똑같이 건강검진 받았냐, 할아버지 산소에 말벌 집 있는 건 없앴냐 잔소리를 했다. 그러다 서로 참 별 걱정을 다 한다며 웃고 말았다.
잔소리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시시콜콜한 일로 걱정하는 사이끼리 용돈 액수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었다. 용돈을 얼마 드려야 하나 고민했던 시간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헤아려 주실까 싶어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인플레이션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번에 확실히 이해하게 된 것은 있다. 용돈 액수 정하기에 쏟을 에너지와 정성이면 차라리 가장 먼저 떠오른 금액을 정성스레 봉투에 담고, 전화를 자주 드리는 편이 낫다는 사실이다. 용돈이든 선물이든 결국에는 다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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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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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단골 선물' 한우의 배신... 정말 당혹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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