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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상관없다"는 말에 속았다, 순진하게도

[나이 오십 넘은 여성의 취업 분투기] "나이가 왜 이렇게 많냐"는 무례한 면접관도 만나

등록 2022.09.15 14:17수정 2022.09.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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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도 아닌데 면접을 자주 보게 된다. 근로계약이 끝나다 보니 여기저기 다시 이력서를 밀고 있다. 나이 오십 넘으면 보통 서류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면접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면접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멘트가 자동으로 나왔다.


기대를 품고 면접을 보면 면접관이 어김없이 하는 말이 있다. "자녀는 다 컸나요?" 그 물음에 나는 약간 뜸을 들이다 "아니오"라고 답해놓고 괜한 한 마디를 덧붙인다. "결혼 안 했습니다" 하면 반응은 여러 가지다. "죄송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면접관이 있는가 하면, "뭐! 나이 보면 당연한 질문이니 죄송할 건 없지요"라고 스스로 정당화 하는 면접관도 있다.

20대 땐 면접을 보면 거의 합격이었다. 한 면접관은 내게 대놓고 인상이 너무 좋다며 즉시 채용을 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면접이 있는 날이면 기대를 여전히 한다.
       
어렵게 서류 심사는 통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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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차례. 안내를 받아 면접장에 들어섰다. ⓒ elements.envato

 
지원서를 넣은 곳에서 전화가 왔다. 서류가 미비하다며 추가 서류를 요구했다. 전화가 온 김에 "나이는 상관없냐"고 물었더니 나이는 정말! 상관없다고 했다. 진심처럼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출 서류를 갖춰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고분고분 다 보냈다.   

어렵게 서류 심사를 통과했는지 발표일보다 늦게 면접 일정 통보를 받았다. 나이가 많음에도 면접 일정 통보를 받은 게 좀 믿기지 않아 잘 보이려 염색도 하고 입고 갈 옷도 다림질했다. 마스크를 썼으니 메이크업은  따로 하지 않았다.

지난 2일 면접날 면접 대기자를 보니 나를 포함 6명이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이십대였다. 더구나 정장을 입고 온 외모도 출중해, 가볍게 반팔티와 흰 운동화를 신고 온 나와는 여러모로 비교가 되었다.

1명을 뽑는데 이렇게 서류심사 통과를 많이 해도 되나 싶었다. 마치 들러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추측하건대 나이에서 제한된다고 하면 위법이니까 나이 제한 없다고 말해줬던 거 같기도 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복도 대기 의자에 앉아 순번을 기다리는데 순서를 기다리던 옆 면접자가 떨린다며 말을 건넨다. 사회 첫 직장이고 첫 면접이라 심장이 너무 쿵쾅 거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휴대폰에 찍어온 자기소개를 보여주며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달달 외우고 있었다. 진중한 자세로 임하는 대기자들을 보니 갑자기 긴장감이 밀려왔다. "면접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떨리는 법이죠"라고 말했지만 내 심장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 안내를 받아 면접장에 들어섰다. 면접관은 총 3명, 그중 2명은 나이 60은 족히 넘어 보였다. 면접 가이드는 내게 마스크를 벗으라고 했다.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를 벗고 면접이라니, 그렇지만 어떤 대꾸도 못하고 마스크를 벗었다.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물론 메이크업을 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지만, 앞서 젊은 친구들을 보고 갑자기 나이 든 나를 본 늙은 면접관의 표정은 말 안 해도 알 것 같은 분위기다.

서류를 슬쩍 훑던 면접관의 첫 마디는 "아휴 나이가 왜 이렇게 많아"였다. 정말 깜짝 놀라 툭 튀어나온 혼잣말이었다. "당신도 나이 많잖아요"라고 나 역시 툭 튀어나올 뻔했다. 늙은 면접관은 안 봐도 뻔한 형식적인 질문 한 개씩 각자 하고 시시한 면접이 끝났다.   

취준생들과 경쟁한다는 자체가 무모하다. 기대하지 않는 공고에 어떤 기대를 한 내가 순진하게 욕심을 낸 건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 역량이 부족하고 그곳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떤 회사든 자신들에게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이 마땅하니까 면접에서 탈락되었다고 실망하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나에게 맞는 곳이 따로 있을 테니까 그런 곳을 찾으면 된다. 바늘구멍 찾기보다 어렵겠지만 찾는 즐거움이 있다. 취준생과 다른 연륜. 나이듦의 여유다. 그렇게 호기를 부리면 위안이 될까. 스스에게 '쫄지 마'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자원봉사자를 뽑는 면접에서도 탈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유체 이탈된 기분이었다. 당최 경쟁력이 없는 나로서는 경쟁이 없는 곳을 지원해야 했다. 

그러다 지난 5일 알바 사이트에서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 한 달 간격으로 공고가 계속 올라오는 곳이 수상했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업로드 하며 반복 게시하고 있다. 한 달째 사람을 못 구했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가 나이 제한 없다는 말을 진심으로 했다. 재차 물었지만 정말 나이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역시나 진심처럼 들렸다.    

컴퓨터로 지원서를 다운로드 하려는데 게시자가 상이했다. 회사도 다르고 방금 통화한 담당자도 달랐다. 아까는 A업체였다면 이번에는 B업체였다. 그러니까 즉, A업체, B업체가 같은 회사의 구인광고를 하고 있었다. 너무 이상해서 두 군데 다 전화를 했다. 알고 봤더니 위탁 용역 업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지난 8월 초 이 회사에 지원했었다는 것이다. 그때 지원서가 내 컴퓨터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달도 안 된 지원서다. 이 회사는 한 달 간격으로 사람을 뽑는단 말인가. 그것도 한 달 계약직으로.

너무 이상하고 의심스러워 용역업체가 아닌 실 구인을 하는 업체 C에 전화를 했다. 물론 검색 사이트에서는 전국 대표 번호라 물어 물어 알아냈다. "혹시 그곳에 사무 보조 구하고 있나요?" 했더니, 아니라고 했다. 알바 사이트에서 공고를 봤다고 하니 재빨리 다른 사람을 바꿔 주었다. 이것도 수상했다.  

"한 달 전에도 한 달 계약자 구했는데 한 달 만에 또 구하는 건가요?"라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때 구한 사람 한 달 계약해서, 나가고 또 한 달 계약할 사람 구한다는 거죠?" 재차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왜 한 달 전에 쓴 사람 계속 쓰지 않고 다시 구하냐고 했더니 그렇게 계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업체는 계속 한 달 계약 사무보조를 한 달 간격으로 공고하고 있었다. 이름도 알 만한 공단에서 그런 식으로 사람을 채용하고 구인한다는 게 놀라웠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정된 상태에서 형식적인 구인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모든 의심을 뒤로하고 하나 더 확인해야 했다. "그럼 나이 많은 사람은 안 뽑겠네요?" 하니까 "당연하죠, 젊은 사람 뽑아야죠"라고 힘주어 말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인을 하는 업체가 이상했지만 젊은 사람을 뽑는다는 그 말에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더 이상 지원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나이 상관없다고 힘주어 말하던 위탁 업체 담당자의 말에 또 속을 뻔했다. 순진하게도.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그냥 믿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일하는 건 더 이상 포기해야 하는가 싶다가도 내게 맞는 일이 있을까 기웃거린다. 그러나 더 이상 나이를 확인하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면접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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