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주수수보리가 언급된 전통주 방송
MBC
전통주를 좀 마셨다는 사람이나, 공부를 했던 사람이라면 '수수보리'라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백제인 인번(仁番)이라는 사람이 일본에 넘어와 술의 씨앗이 되는 누룩 또는 술 제조법을 알려주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인번'이 '수수보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일본의 주신(酒神)이 되었다고 하며 교토의 사가신사(佐牙神社)라는 곳에서 수수보리를 일본 사케의 신으로 모셔졌다고 이야기한다.
'수수보리'라는 이름은 백제 사람이 일본의 술 제조법을 알려주었다는 의미로 문화 우월성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이름이다. 일본의 술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은 '수수보리(須須保利)'가 아니라 '수수허리(須須許理)'이다.
실제 수수허리(須須許理, 스즈코리)가 나오는 기록을 살펴보면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서 처음 언급된다. 응신천황(應神天皇, 재위 270~310년)대에 인번(仁番)이라는 백제인이 건너와 천황에게 술을 진상 했으면 그 술맛이 좋아 천황이 만취해 버리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노래가 고사기에 실려있다.
"수수허리가 만든 술에 / 나는 취해버렸다. / 재난을 없애주는 술, / 웃음 짓게 하는 술에 / 나는 취해버렸다."
수수허리가 고사기에 쓰인 단어이며 술을 왕에서 진상했으나 누룩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시 일본도 일본 나름의 술 빚기가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술을 진상했다는 것으로 보아 백제의 전체적인 술 빚기에 대한 기술을 전수해준 것으로 보인다.
탁재형의 <우리술 익스프레스>에서는 수수허리와 수수보리가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 일본 왕실의 각종 규범 등을 적은 연희식(延喜式)이라는 책에서 '수수보리'라는 단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의 음식 만드는 법에 절임채소(漬物, 쯔게모노)의 이름으로 '수수보리'가 등장을 하는데 아마도 술과 함께 절임 음식을 전해준 백제인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설명을 하고 있다.
이것을 뒷받침 하는 내용으로 이성우 교수의 논문 '중·한·일에서의 김치류의 변천과 교류에 관한 연구'이 있다. 이 논문에 의하면 일본에서의 수수보리는 수수보리지(須須保利漬)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수수보리지는 쌀이나 콩을 발효 기질로 삼는 절임채소(지물, 漬物)로서 후세에는 그 이름이 남아있지 않으나 오늘날의 일본의 쌀겨 된장지(漬)나 국지(麴漬-고오지츠케, 누룩에 소금을 섞은 것에 재워두는 누룩절임)의 근본적인 형태를 이룬다고 했다. 이 논문에서도 절임채소를 가리키는 '수수보리지'라는 단어가 중국으로부터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