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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빠지고 '말씀'만 남은 출근길 문답, 의미 있을까?

[정치인을 위한 대중소통전략 3] 질문은 고작 두세 개, 대통령이 주제 제한하는 일도

등록 2022.09.20 09:19수정 2022.11.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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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속 여부를 물었을 때, 대통령은 강한 의지를 보였다. 다른 질문에는 일반적 답변만 내놓던 대통령은 유독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 대해서는 명확한 마음을 전달한 것이다. 대통령실 또한 그 의중에 맞춰 공식 유튜브 채널의 메인 콘텐츠로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기도 하다.

그들의 셈법으로 9월 16일 진행된 도어스테핑을 제45회라고 표시하였으며, 24회로 표시된 7월 8일 분량부터 총 18회의 도어스테핑을 갈무리 해놓았다. 대통령의 말대로 출근길 약식문답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 그 방식에는 아주 결정적 변화가 있었다. 대통령이 미리 준비해 온 모두발언이 출근길 문답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100일 회견 다음 날인 8월 18일부터 약간의 모두발언이 포함되는가 싶더니, 23일부터는 차에서 내려 걸어오는 과정부터 본격적 발언이 시작되어 수분이 경과할 정도로 길어졌다. 오디오가 물릴까 난감한 기자들은 차마 질문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며, 발언이 끝나고 진행되는 기자와의 문답은 많아야 두세 개가 고작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주제를 제한하는 일도 자주 벌어지면서, 그분의 '말씀'만 있고 소통은 없는 이상한 시추에이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과 삿대질, 전 정부를 탓하는 화법 등으로 구설에 올랐음에도 유지하고 싶은 절박함에서 비롯된 고육책으로 보이지만, 아침부터 버티고 있던 기자들에겐 더없이 허탈한 '출근길 문답'이 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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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상호작용 없이 주제까지 제한하는 이상한 소통

용산시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성역없는 소통이라 했으며, 대표적 실천이 바로 출근길 문답이라고 현 정부와 대통령은 강조했다. 소통의 사전적이며 실질적 의미에는'상호', '서로' 등 커뮤니케이션 당사자 간 발생하는 '티키타카'가 필수적 요소로 꼽힌다. 주고받는 내용과 행위가 없으면 이미 소통이라 부르기 어렵다는 말이다.

일단, 최근 진행된 도어스테핑에서 대통령의 일방적 발언과 기자들과의 문답이 어느 정도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걸어오는 시간부터, 도어스테핑을 마치고 집무실을 향하는 순간까지의 구성을 확인해 본 것이다. 대략적으로만 판단해도, 모두발언의 분량은 도어스테핑 전체 시간의 약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말씀'만 있고 소통은 취약한 만남으로 자리잡았다는 뜻이다.

기자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올 분량이지만, 그나마 내용까지 대통령 스스로 제한하는 상황도 벌어지니 허탈한 마음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기자들만이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도 비슷한 마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소통에 대한 정의가 우리와는 다르거나, 소통할 의도가 사실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지금은 기자들이 수십 명씩 모이지만, 차츰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예측도 가능하다. 어차피 질문도 못하는데, 녹화로 대체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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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의 내용은 유튜브 대통령실 공식채널에 게시된 사항을 근거로 하였습니다. ⓒ 유현재


절대로 만만하지 않은 소통 수단, 출근길 문답


그렇다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일방적 발언을 끼워넣고 기자들의 질문을 차단하면 그동안 발생한 모든 부작용들이 모두 해결된다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자들의 불만과 불통에 대한 지적도 예상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등장한 차선책이었을 것이다. 뭔가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품고있는 숙제 같은 느낌도 있고 말이다.

사실, 출근길 문답은 대통령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쉬운 소통의 방법은 아니었다. 대중과의 소통전략 차원에서 꽤 상급에 속하는 수단이란 뜻이다. 대통령은 아마도 30년 검찰에 출근하며 아침마다 자신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맞이하던 선후배들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특별히 어려운 상황을 가정하며 시뮬레이션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스타일로 이야기하면 별 문제없을 것이라 여겼을 개연성이 상당하다.

하지만 그렇게 녹록한 시나리오만 펼쳐지지는 않았다. "대통령님 파이팅!"외치던 기자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묻고 싶은 사항을 거침없이 파고드는 MZ세대 기자들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발언의 내용은 물론 "어떻게 말하는가"를 중시하는 요즘 대중도 카메라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말이다.

현재의 출근길 문답은, 비록 지속 시간은 짧지만 웬만큼 연륜이 쌓인 정치인들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타운홀 (Town Hall) 미팅'의 축소판이다. 제공하는 정보의 명확성과 인간적 매력, 그리고 즉각적 대응력이 종합적으로 요구되는 어려운 자리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도 타운홀 미팅은 오바마 등 일부 인사들만 프롬프터 없이 중간 이상의 반응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코 쉽지 않은 미디어 수단임을 이제라도 인지하고, 다양한 시뮬레이션 방식의 대비를 진행해야 한다.

어정쩡한 소통이 반복되면, 대중의 외면은 시작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명확한 방향 설정과 직언이 향후 이 어정쩡한 도어스테핑은 물론 지지율에도 변화를 줄 것이다. 정작 대통령은 매일 아침 출근하며 기자들과의 '라포르'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겠다는 마음이었겠지만, 언젠가부터 참모들은 어울리지 않는 환경을 굳이 만들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예를 들어, 처음과는 달리 이젠 참모들과 대통령의 동선이 아예 구분되어 마치 기자회견이 매일 정식으로 열리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초반에는 없었던 레드카펫이 대통령이 걷는 길에 거창하게 깔려있는 모습도 보인다. 대통령이 지시한 의전인지 알 수야 없지만, 그런 장치들이 대통령의 긴장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음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안 그래도 최근 모두발언에서는 대통령이 일부 머뭇거리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지속을 천명했고, 아마도 임기 내 계속될 소통의 수단이라면, 출근길 문답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가 안정적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참모들은 소통의 원리들을 철저히 깨우쳐야 할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지만, 성공 또한 디테일에서 비롯됨을 인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출근길 문답은 사실, 하루의 시작 시점에서 나라의 온 시선을 선점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가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신박한 미디어라도 특성에 맞게 활용해서 성과를 내는 것은 플레이어들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자 커뮤니케이션학 박사입니다.
#도어스테핑 #대통령 #소통 #정치 #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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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수용자 중심 저널리즘과 미디어 활용에 대해 강의 중. 정치인들을 포함, 공적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대중과의 소통을 얼마나 원활하게 하고 있는지 ‘소통감수성 ’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 및 비판하고 있음. 세바시에 출연, “소통 감수성이란 무엇인가?”“미디어 시대, 우리가 건강하지 못한 이유”등을 주제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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