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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 수행평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꼭 해야 할까요?

교육 과정 중 아동의 권리에 대한 작은 이야기

등록 2022.09.26 16:33수정 2022.09.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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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학교가기 싫다…. 아, 내일 정말 학교가기 싫다..."


몇 달 전 저녁,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말에 조금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언제나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하던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나눠보니, 가창수행평가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사람 앞에 서기를 즐기지만,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노래하기를 즐기지만, 아닌 사람도 있지요. 수십 년 전 저 역시 참 싫었지만 해야 한다고 하니 '그냥' 참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 서거나 목소리 높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래 부르는 것은 즐거워 하지만 객관적인 기준으로 잘 부르는 편은 아닙니다.

저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니 조금 소름이 돋았습니다. 반 친구들 모두가 앉은 음악실에서 한 사람씩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옆에서는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고, 앞에는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노래를 잘 하던 친구에게는 박수치며 환호했고, 의기소침하거나 음정 박자를 못 맞추는 친구의 노래가 끝나면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누군가는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분명 침해의 요소가 있다고 보였습니다. 곧 의문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평가하기 위한 것인지 명확하다면, 반드시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선생님과 학생만 한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고, 필요하다면 전체 학생의 시험 과정을 녹화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답답하고, 어딘가 괜스레 미안한 마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엄마도 네 마음에 공감해. 정말 싫을 것 같아. 다만, 당장 내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이렇게 해보자. 네가 선생님께 말 할 용기만 낼 수 있다면 '우리 부모님도 이 과정과 방식에 의문을 느꼈다. 저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자. 만약 그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면 딱 3분, 꾹 참고 한번 하자. 하기 싫은 일을 하나도 안 하고 살 수는 없으니 해보자. 대신 돌아와서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나를 같이 하자. 그렇게 우리 풀자."

그리고 며칠 뒤,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하고 아이와 노래방에 다녀왔습니다. 음정, 박자, 노랫말이 다 틀려도 신나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행복한 감각을 잊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단지 노래를 부르는 것만이 아니라, 이 친구가 자라는 동안 '평가'를 받는 것에 억눌려서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묻혀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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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갔던 노래방. 유명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부르며 즐거워했다. ⓒ 서인희

 
교육 과정에는 분명 어떠한 목적과 목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평가도 필요하다는 것 또한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학교의 가창시험이 음정과 박자를 잘 맞추고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사람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대중 앞에 서서 자신을 드러낼 줄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을 즐기고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당연한 균형이 어느 한쪽에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이들이 감당할 몫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보편적으로 아동은 성인보다 정서적으로 더 예민합니다. 개인의 정서와 또래관계를 위한 섬세한 보호가 필요합니다. 교육하고 평가하는 것에 앞서 아동을 한 명의 사람으로 충분히 인정하고 존중하는 시각이 당연해지기를 바라봅니다.
#가창수행평가 #아동의권리 #교육과정 #체험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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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따뜻하고 더 정갈한 사회를 꿈꾸는 엄마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어디에 있든 모든 사람이 각자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런 사회를 바라며 저는, 느리지만 분명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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