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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에게 "죽을 맛" 선사한 김진태 지사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국제영화제는 폐지하고 상업영화엔 숟가락 얹기

등록 2022.09.29 11:43수정 2022.09.2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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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성·선심성 행사에 도민 혈세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 것도 막을 것이다. 평창평화포럼과 평창국제영화제가 대표적이다. 타당성 없는 보조금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 꼭 필요한 곳에 도민 혈세를 쓰도록 하겠다."
- 김진태 강원도지사, 지난 8월 17일 <조선일보> 인터뷰 "강릉에 제2청사 설치, 동해안 관광산업 육성"

새로운 관광산업 유치를 천명해 놓곤 이제 궤도에 오르려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막겠다고 나섰다. 반면 최문순 전 지사가 시작한 강원도청 신 청사 건립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 도민 혈세 사용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공교롭게도 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일이기도 했던 지난 6월 23일 당선인 신분이던 김 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전임 최문순 도지사가 지원해왔던 각종 보조금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천명했다.

김 지사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대해 당선인 시절부터 "취임 후 도지사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예산 집행 중단을 암시한 바 있다. 콕 짚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평창평화포럼과 문성근 이사장이 이끄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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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강원지사가 26일 오전 강원도청 브리핑룸에서 도청사 건립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실제 영화제의 지자체 지원 예산이 축소됐다. 이제 4회를 맞은 국제영화제가 이를 버텨낼 리 만무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예산은 강원도, 평창군 지원과 외부 후원을 포함해 총 22억 규모로 알려졌다. 지자체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이를 두고 지난 8월 <강원도민일보>는 "영화제 측은 도의 긴축 재정과 예산 축소 가능성 등에 대비해 다양한 선택지와 대안을 마련해 왔으나 아예 사라지는 결과를 맞았다"고 전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김 지사가 수십억 규모의 상업영화를 보고 게시한 글이 여론의 뭇매를 맞아 눈길을 끈다.  

<정직한 후보2> 배급 담당자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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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배우 라미란씨의 입간판 옆에서 찍은 인증샷과 함께 트위터에 올린 글 ⓒ 김진태 트위터

 
 
"영화 '정직한 후보2' 시사회를 가졌습니다. 라미란씨가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강원도지사가 돼서 겪는 스토린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강원도청 올로케여서 실감났고요,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까지 딱 제 얘기더라고요ㅋ." 

지난 26일 김 지사가 배우 라미란의 입간판 옆에서 찍은 인증샷과 함께 본인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짧은 글에 흥미로운 지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치인인 김 지사가 거짓말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풍자 영화인 <정직한 후보2> 속 정치인 '진실의 주둥이' 주상숙(라미란)이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현실 정치인들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다. 잠시 영화를 소개하자면 선거전을 그린 1편에 이어 2편은 지자체 내 이권 다툼과 건설 마피아, 이에 기생하는 비리 공무원들을 속 시원하게 까발린다. 영화는 이에 편승하려던 주상숙도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상숙은 강원도지사에 당선하고 나서 인기를 누리며 오만해졌지만 결국 도민과 정의를 위해 싸우게 된다. 그런 주인공과 본인이 닮았다는 김 지사의 주장은 영화의 배경이 강원도와 강릉이라는 것 말고는 핀트가 어긋나도 많이 어긋나 보인다. 이 같은 김 지사의 게시글이 1편에 이어 흥행이 기대되는 상업 영화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자기 홍보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28일 개봉한 <정직한 후보2>의 배급 담당자가 딱 그랬다. 
 
"지사님... 저 이 영화 배급 담당자인데요. 일단 강원도청 올로케도 아니고요. 이 트윗 덕분에 평점 테러 당하고 있어서 죽을 맛입니다. 전임 도지사님 때 찍은 영화인데 왜 숟가락을 올리실까요. 살려주세요. 여러 사람들이 이 영화에 목숨 걸고 일했고 흥행 결과에 밥줄 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ㅠ.ㅠ"

28일 오후 읍소에 읍소를 거듭하는 트위터 글이 화제가 됐다. 실제 <정직한 후보2>의 배급사 직원이 게시한 이 글에 격한 호응이 이어졌다. 정작 촬영을 허락해 준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 김 지사만 숟가락을 얹은 것이요, 자신과 크게 상관없는 영화에 숟가락을 얹으려다 이제 막 개봉한 영화의 수많은 관계자에게 피해만 입힌 꼴이 됐다. 예산과 같은 영화 촬영의 현실적 이유로 '강원도청 올로케'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김 지사는 애먼 영화를 홍보 수단으로 삼으려던 자신의 행위가 도리어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평점 테러라는 어마어마한 악영향으로 되돌아올 것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배급 담당자가 읍소에 읍소를 거듭했는지, 왜 관객들이 눈살을 찌푸리는지 이해는 하고 있을지 의문이다(29일 오전 9시 현재 이 글은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다). 

"죽을 맛"이라는 영화인들

국제영화제 폐지와 정치풍자 영화에 숟가락 얹기. 영화라는 문화예술에 대한 김 지사의 이중적인 인식과 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해당 영화는 부패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영화 아닌가. 김 지사의 게시글 자체가 블랙코미디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영화제에 밥줄이 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영화제 내 개별 정규직·비정규직들의 밥줄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네 번이나 진행된 국제영화제를 구체적인 조사없이 "일회성·선심성 행사"로 규정해 버렸다. 이후 "도민 혈세 수십억 원"이란 경제 프레임에 몰아넣고는 스스럼없이 자기 정치를 강행해 버렸다.

거기에 영화제가 지닌 문화예술로서의 가치 및 기대 창출 효과, 관광산업과의 연계 등 경제적 파급력에 대한 고려가 자리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그랬던 김 지사가 애먼 상업영화를 자기 정치 홍보의 일환으로 활용해 보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직한 후보2>의 배급사 담당자 트위터 글 또한 단 몇 시간 만에 수천 회가 리트윗됐고, 김 지사를 질타하는 글이 쏟아지는 중이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22억짜리 국제영화제 구성원들의 밥줄을 단숨에 끊어버리고, 또 본인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애먼 영화에 숟가락을 올리는 행태에 대한 질타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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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영화제 지원 축소 및 폐지에 따른 영화인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중인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 하성태

 
 
"여론도 듣지 않고 민주적 절차마저 무시하는, 있을 수 없는 제왕적 만행을 저지른 것에 우리 영화인은 분노한다."
-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지난 24일 '영화제 지원 축소 및 폐지에 따른 영화인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에 나선 김 집행위원장은 김 지사의 "문화예술에 대한 천박한 인식"과 "예의도 존중도 없는 경악스런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문화예술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껌 같은 것이 아니다. 한때 극우 집회 발언 등을 통해 영화인들에 대한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던 김 지사가 자기 홍보를 위해 애먼 영화를 활용하는 동안 또 다른 편에선 그 영화를 제작한 영화인들이 "죽을 맛"을 체험 중이다. 강원도에서 2개 국제영화제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강원도지사는 얼마나 더 많은 영화인들에게 "죽을 맛"을 선사해야 만족하실 건가.  
#김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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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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