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천리행도 이도영, 비단에 채색, 36 x 114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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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1884~1933)의 <관우천리행도>이다. 관우가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 천리를 가는 천리행(千里行)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섯 관을 지나고 여섯 장수를 베었다' 하여 오관참장이라고도 한다. 오관참장 장면은 위의 삼국지연의도 10폭 병풍 중에도 속해있다.
조조는 위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여러 분야에서 재능이 뛰어났다. 그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혹은 간사하고 권모술수에 능했다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조조는 관우와 적이었지만 인간적으로 아끼고 곁에 두고 싶어 했고, 그러한 조조의 옆에 머물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관우는 유비에 대한 충절로 먼 길을 떠난다.
이처럼 관우는 그 용맹함과 충의로 유명하다. 그래서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숭배되었고,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어 곳곳에 관왕묘가 세워지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동묘는 정식 명칭이 '동관왕묘'인데, 1601년(선조 34)에 관우에게 제사를 지내는 목적으로 지어진 사당이다.
관우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일화로 화타와 관련된 것이 있다. 위나라 군대와 전쟁 중 관우는 팔에 독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한다. 그의 상처를 본 화타는 독이 뼛속까지 퍼져 수술을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칼로 살을 째고 뼛속의 독을 긁어내는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화타는 관우의 팔을 묶어 고정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관우는 태연히 바둑을 두며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화타(145~208)는 중국의 전설적인 의사로, 외과학의 창시자로도 꼽힌다. 화타는 마비산이라는 마취약을 사용해서 수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비산을 구성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재는 대마, 만다라화(흰독말풀), 초오, 백지, 천남성 등 몇 가지가 있다. 대마는 마취와 환각 작용이 있는 마약의 일종인 대마초(마리화나)로 더 유명하다. 만다라화, 초오, 천남성은 독성이 있는 약재이다. 백지는 항균, 진통 작용을 가진다.
화타의 죽음에 조조가 연관되었다는 설도 있다. 조조는 두통으로 고통스러워했는데 화타는 이를 고치려면, 마비산으로 마취한 뒤 머리를 쪼개 뇌수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자신을 암살하려는 것으로 의심한 조조는 화타를 죽였다. 화타의 죽음 이후 조조의 아들은 중병에 걸렸는데, 온갖 명의가 치료했지만 결국 낫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그제야 조조는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이천년 전에도 마취제를 개발하여 수술을 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대상이 우리가 잘 아는 난세의 영웅들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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