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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대선, '극우 굴기'의 시대는 끝나가는가

판데어발렌 대통령의 연임이 확실시...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

등록 2022.10.10 11:16수정 2022.10.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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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 9일(현지시간)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오스트리아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이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한다. 총리가 행정부의 수반이 되어 국가사무를 통할하는 역할을 맡는다. 영국이 그렇고, 독일이 그렇다.

물론 행정부의 수반인 총리 위에, 국가의 수반이 따로 있는 의원내각제 국가도 있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다. 영국은 총리 위에 국왕이 있고, 독일은 총리 위에 대통령이 있다. 일본은 총리 위에 덴노가 있고, 캐나다는 총리 위에 국왕과 국왕을 대리하는 총독이 있다. 하지만 모두 상징적인 자리에 불과하다.

애초에 국왕이나 총독은 선출되는 직위가 아니고, 의원내각제 국가의 대통령도 대부분 국민의 직접 선거를 거치지 않고 간선제로 선임한다. 의원내각제 국가의 대통령은 우리 같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의 대통령과는 다르다. 국민의 선거를 거치지 않았으니 당연히 권력이 없다. 헌법상 이들에게 여러 권한이 부여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의례적인 역할만을 담당한다. 따라서 의원내각제 국가인 오스트리아의 대통령 역시 힘이 없어야 맞다. 실질적인 권력은 행정부의 수반인 총리가 행사해야 한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오스트리아의 대통령

오스트리아는 언급했듯 의원내각제 국가이고,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해 내각을 통할하도록 한다. 일상적인 정무에서 실질적인 힘은 물론 총리에게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대통령 역시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물론 그렇다고 대통령중심제나 이원집정부제 국가인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여전히 일상적인 정무에 참여하지 않고, 의례적이고 상징적인 역할만을 담당한다.

하지만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의 대통령과 달리 국민의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것은, 대통령에게도 분명한 권력의 정통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이 정통성이 직접적으로 행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암시만으로도 현실정치에서는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제도적으로도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의 대통령보다는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는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와 달리, 오스트리아에서는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한다. 국회의 의사를 묻는 법적인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실제로는 관례적으로 제1당의 당수가 총리로 임명되고, 대통령이 예외적인 인물을 총리에 임명하면 국회는 불신임 결의를 통해 그 총리를 해임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법적인 절차는 그렇다.

특히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이 그 '상징적' 권한을 활용한 사례가 많아 눈에 띈다.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에도 대통령에게 헌법상 여러 권한을 부여했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대통령이 그 권력을 실제 행사할 정통성은 없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에게는 그 정통성이 있고, 때로 헌법 조문에만 있던 권한이 현실정치에 힘을 발휘한 적이 있는 것이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극우 정치가 성장할 때, 대통령의 권한은 정치의 극단화를 막아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2년 대통령에 취임해 재선에 성공, 2004년까지 임기를 수행한 토마스 클레스틸(Thomas Klestil) 대통령이 그랬다. 클레스틸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능동적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2000년 수립된 같은 당의 볼프강 쉬셀(Wolfgang Schüssel)이 총리직에 올랐을 때 클레스틸 대통령은 적극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쉬셀 총리는 클레스틸 대통령과 같은 정당인 인민당 소속이었지만 정치적으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쉬셀 총리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극우정당인 자유당과 연립정부를 수립했다. 이에 클레스틸 대통령은 "이론적으로 대통령은 필요할 경우 정부를 해산할 권한이 있다"고 언급하며 내각에 비판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실제로 토마스 프린조른(Thomas Prinzhorn)이나 힐마르 카바스(Hilmar Kabas) 등 극우 정치인의 장관 임명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인 알렉산더 판데어벨렌(Alexander Van der Bellen) 역시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한 대통령에 속한다. 2017년 다시 한 번 인민당과 극우 자유당의 연립정부가 수립되었다.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장관 임명에 대한 거부권 의사를 내비치며 내각 인선에 깊숙하게 개입했다. 인민당과 자유당의 연정이 자유당 소속 슈트라헤 부총리의 스캔들로 무너지자 임시 총리로 정치인이 아닌 헌법재판소장 브리기테 비어라인(Brigitte Bierlein)을 선임한 것도 판데어벨렌 대통령의 의지였다.

2016년 대통령선거

특히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선거가 주목받는 이유는, 판데어벨렌 대통령이 선출된 지난 대선이 특히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2016년 대통령선거 당시 오스트리아는 극우파의 지지세가 매우 강력했고, 녹색당 출신 무소속 정치인 판데어벨렌의 대통령 당선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오스트리아 대선은 결선투표제를 실시한다. 처음에는 다수의 후보가 나와 선거를 치르고, 여기서 최상위 득표자 두 명이 결선투표에 진출한다. 집권 경험이 풍부한 거대 양당, 인민당과 사회민주당도 물론 후보를 냈다. 그런데 녹색당이 지지한 판데어벨렌과 극우 자유당이 내세운 노르베르트 호퍼(Norbert Hofer)가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극우정당이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상황에 오스트리아의 기성 정치권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오스트리아의 진보세력은 판데어벨렌 후보에 결집해 선거운동을 벌였다. 결과는 아슬아슬했다. 판데어벨렌은 50.35%를, 자유당의 호퍼는 49.65%를 득표한 것이다. 차이는 1%p도 나지 않았다. 전체 450만표 중 3만 표가 가른 선거였다.

자유당은 처음에는 패배를 인정했으나, 이후 입장을 바꾸었다. 부재자투표와 우편투표 개표 과정에서 참관인이 없는 상황에서 개표가 시작된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결국 오스트리아 내무부는 조사에 착수해 심각한 위반 사항이 있었다고 발표했고,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재선거를 치를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선거 결과가 무효화되고 재선거 절차가 시작됐다. 판데어벨렌의 취임식 역시 취소되었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최초의 전국단위 재선거였다. 7개월만에 다시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판데어벨렌은 53.8%를, 호퍼는 46.21%를 득표하며 겨우 판데어벨렌의 당선이 결정되었다. 이후 2017년 자유당이 집권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아슬아슬한 선거였다.

극우파의 몰락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험난한 과정 끝에 시작한 6년의 임기를 마쳤다. 그렇게 올해 다시 치러지는 선거에서 판데어벨렌은 재선에 도전했다. 지난 선거의 경험을 되새긴 중도세력은 일찌감치 판데어벨렌 지지를 선언하고 따로 후보를 내지 않았다. 자유당은 발터 로젠크란츠(Walter Rosenkranz)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지난번 선거만큼 아슬아슬한 예상은 보이지 않는다. 유럽의 여론조사기관 INSA가 10월 6-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판데어벨렌의 지지율은 48.57%에 달했다. 자유당 로젠크란츠 후보의 지지율은 14.5%에 불과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당선 가능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2016년 대선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한편으로 지난 6년 자유당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결과다. 언급했듯 2017년 인민당과 자유당의 연정으로 수립된 정부는 자유당 소속 부총리의 스캔들로 무너졌다. 소위 '이비자 스캔들'로 불리는 이 사건은, 자유당 소속 부총리이자 자유당 대표로 자유당의 전성기를 이끌던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가 이비자 섬에서 러시아 재벌가와 뒷거래를 하는 장면이 포착된 사건이었다. 일대 파란이 일었고, 결국 오스트리아 역사상 최초로 내각불신임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가 무너진 것이다.

자유당과의 연정을 주도한 인민당 대표 제바스티안 쿠르츠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다. 쿠르츠 전 총리는 2017년 31세의 나이로 총리에 취임하며 세계 최연소 행정수반이라는 칭호까지 얻었지만, 결국 부패 혐의를 받아 지난해 자진 사임했다.

극우정당이 받던 49%의 지지는 6년 만에 15%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집권당이 된 극우파는 6년 만에 그 정치력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고 떠난 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극우파의 소비기한은 채 6년을 넘기지 못했다. 무엇보다 오스트리아에서 극단화되는 정치를 막는 데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역할이 주효했다. 판데어발렌 대통령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이번 선거가 또 의미를 갖는 지점일 것이다.

다른 국가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주변국가에 비해 이른 시점에 극우파가 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정권을 잡았다. 정치적 극단화를 적절히 통제할 요소가 있었다. 덕분에 그 몰락도 빨랐던 것이다.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는 극우파의 성장과 집권이 이어지고 있다. 스웨덴 민주당의 성장, 이탈리아 형제당의 집권 등이 그렇다. 오스트리아 자유당이 집권한 2017년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5년 정도 늦은 셈이다.

하지만 성장하는 극단적, 혐오적 정치를 우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한다. 이들의 소비기한은 몇 년일까. 이들이 그 실상을 보이고 정치무대에서 퇴장하는 데에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까. 오스트리아의 대통령과 같은 통제장치의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을 시민들이 해낼 수 있다면, 6년이라는 시간도 그리 짧지는 않았다. 그 안에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오스트리아 #대통령선거 #판데어벨렌 #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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