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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 겉그림 ⓒ 스토리닷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이정하, 스토리닷, 2022)을 읽었습니다. 거닐 수 있는 다리가 있으면, 이 땅에서 솟아나는 기운을 발바닥부터 찌르르 맞아들입니다. 거닐다가 문득 멈춰서 풀밭에 가만히 앉으면 햇볕이 바람을 타고서 뺨을 스치는 기운에 서린 노래를 받아들입니다.
들풀도 바람도 언제나 노래합니다. 거닐지 않을 적에는 이 노래를 안 들을 뿐입니다. 해님도 별님도 언제나 노래하지요. 걷지 않기 때문에 이 노래를 여태 모를 뿐입니다.
부릉부릉 소리를 내면서 매캐하게 방귀를 뀌는 쇳덩이에 몸을 실으면, 우리 다리는 땅바닥하고 닿을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쇳덩이는 끝없이 매캐방귀를 일으키고, 아이들이 뛰놀 빈터를 빼앗으며, 풀꽃나무가 자라면서 푸른바람을 베풀 숲터를 짓밟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부릉부릉 매캐방귀 쇳덩이'를 걷어치우고서 두 다리로 사뿐사뿐 이 땅을 디디면서 땅빛하고 하늘빛을 두루 누리는 사람으로 설까요? 우리는 언제쯤 잿빛덩이(시멘트)로 올려세운 차가운 잿터(도시)를 말끔히 떠나서 풀바람이며 해바람이며 별바람을 노래로 숨쉬는 숲살림을 지을까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이를 섣불리 쇳덩이에 안 태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두 다리로 달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두 손으로 다 만지고 쓰다듬고 돌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풀냄새를 맡고 싶으며, 꽃이름을 알고 싶으며, 풀벌레 곁에서 같이 노래하면서 놀고 싶습니다. 아이를 배움터에 맡기고서 잊어버린다면, 아이들은 땅한테서도 하늘한테서도 아무것도 못 누리고 못 받을 뿐 아니라 못 배워요.
찬찬히 걷는 하루를 그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은 빨리걷기도 아니고 느릿걷기도 아닌 삶걷기라는 작은 발걸음을 들려줍니다. 일부러 몸풀기(운동) 삼아 걷지는 마요. 부릉부릉 안 몰고서 걸으면 돼요. 이 별(지구)을 지킬 셈으로 걷지는 마요.
이 별이 우리하고 나누고 싶은 숨빛을 나누고 즐기는 하루를 헤아리면서 걸어요. 걷는 사람은 구름을 봅니다. 걷는 사람을 새를 만납니다. 걷는 사람은 철이 바뀌는 바람결을 깨닫습니다. 걷는 사람은 오늘을 늘 노래로 가꿀 줄 압니다.
"산책하는 시간으로 옳은 시간은 없다. 제일 좋을 때란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때다." (51쪽)
"어떤 이는 말한다. 산책할 만큼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고. 그런 이들에게 나는 답한다. 여유를 만들려고 산책을 한다고 말이다." (72쪽)
"사람은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건강해진다. 몸만 그런 게 아니다." (116쪽)
"어차피 그곳도 그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 전 그 사람들에게는 그저 산책길에 만나는 장소였으므로, 똑같이 그렇게 그곳을 둘러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181쪽)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
이정하 (지은이),
스토리닷,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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