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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둘이 사는 남자에 대한 오해

깨치면서 채우는 삶... 우리의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등록 2022.10.23 10:17수정 2022.10.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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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 포스터의 2016년 연출 작 <머니 몬스터>. 영화의 제목은 극 중의 TV 경제 쇼 프로그램 이름을 땄다. 그 방송을 보고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날린 남자(잭 오코넬 분)의 이야기가 모티프다. 생방송 스튜디오에 난입한 그는 쇼의 진행자 리 게이츠(조지 클루니 분)를 인질로 삼고 자신을 알거지로 만든 아이비스 사(社)의 투자 알고리즘 비밀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경찰들은 분주히 용의자의 신원을 캐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한 경찰관이 자신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저 자는 분명 엄마와 둘이 살 거야. 세상 모든 루저(loser)들이 그렇거든". 엄마와 함께 살아서 그렇다는 건지, 그러니까 엄마와 산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이 든 남성이 엄마와 둘이 살면 루저라는 건데, 정말 그런가. 그러면 진짜로 다 루저가 되는 건가.

미디어 속 엄마랑 둘이 사는 남자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 듯하다. 엄마와 둘이 사는 남자는 대개 특정 대상에 병적으로 집착하거나 사회성, 사교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 캐릭터를 도드라져 보이기 위함인지 외모마저 괴물처럼 묘사되기 일쑤다. 그런 것만 보면 영락없는 패배자로 속단하게도 된다.

일본에는 히키코모리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 들어서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 얹혀 사는 성인들을 이른다. 그들은 성장 과정을 통해 모종의 트라우마를 겪었거나 독립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선천적으로 그런 용기나 의지가 박약해 그렇게 됐다고 본다. 의사들은 그것을 병이나 장애로 여기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을 패배자로 보는 사회적 시각은 엄연히 존재한다.

사업 실패나 이혼 등으로 부모 혹은 엄마와 함께 사는 경우도 흔히 본다. 그들에게 그건 그야말로 고육지책이었을 거다. 당장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이것저것 가리거나 남의 눈치를 보거나 체면 차릴 계제도 아니었을 터다. 그러고 싶어 그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단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도 곧잘 같은 굴레가 덧씌워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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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이어진다 길이 계속이어지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게 계속된다. 누군가 함께 가면 더 좋은 길이다. ⓒ 이상구

 
<고령화 가족>이라는 소설이 있다. 여기엔 세상 모든 패배자(?)들의 유형이 다 등장한다. 독립할 의지 없이 엄마와 둘이 사는 큰형, 사업(영화)에 실패해 그 밑으로 들어온 둘째 아들, 이혼해 딸까지 데리고 합류한 막내 여동생까지, 소설은 어렸을 때도 그리 우애 깊지 않았던 세 남매가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엄마네 집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시끌벅적한 공존의 기록이다.


처음 그들은 크고 작은 오해와 갈등과 다툼과 소동을 겪는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부지런히 고기 반찬을 해 먹이고, 남매들은 맛나게 그걸 뜯으며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 간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가족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네 집을 떠나면서 그들은 마침내 가족의 가치와 서로의 소중함을 가슴에 담는다.

가족을 무시하고 심지어 부담스러워까지 했던 주인공은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오로지 이타적인 행동 속에서만 완성되어 간다.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을 희생하며 무언가를 내어주는 삶. 거기에 비추어 보면 나의 삶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삶이었던지"라 참회한다. 그건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엄마가 걷어 먹인 건 그저 삼겹살만이 아니었던 거다.

인생의 한 구간을 통과하고 있을 뿐

나는 그의 말에 완전 동의한다. 특히 이타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삶이 완성 되어 간다는 말에 '백퍼(100%) 공감'한다. 무엇보다 그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해서다. 나도 어머니와 둘이 산다. 어머니는 남편을 먼저 보낸 후 10개월 만에 둘째 아들을 가슴에 묻으셨다. 짧은 시간 동안 연이어 찾아온 거대한 비극에 어머니는 결국 심각한 병까지 얻으셨다.

가슴을 여는 대 수술을 받으신 데다가 연로하신지라 누군가는 당신 곁에 있어야 했다. 세상 천지에 남은 식구는 우리 모자뿐이었으니 나 말고 다른 대안은 없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지만 나는 아무런 미련 없이 30여 년 간의 유랑을 청산하고 어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자질구레한 세간살이며 옷가지들과 방종할 자유까지 모두 내 버린 채.

어머니와 다시 함께 살기 직전까지 솔직히 나는 자포자기의 상태나 다름 없었다. 내 품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떠나보내기까지 지난 10여 년 간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불행을 다 겪었다, 고 생각할 정도로 상황은 최악이었다. 온몸의 진이 다 빠져나가고 영혼마저 사라진 것 같았다. 삶의 희망과 의욕도 없이 온통 암흑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만신창이 된 몸으로 어머니와 다시 살게 된 거다. 하지만 난 집으로 오면서  그 정신에도 일종의 의무감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나마저 잘못되면 어머니는 더 힘드실 거라는 생각이었다. 나를 바꿔야 했다. 신께 무릎을 꿇었고, 담배를 끊고, 술을 줄였다. 운동도 하고 책도 잃으며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그렇게 4년,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지금 와 생각하면 참 가당찮았지만 처음엔 그게 온전히 어머니를 위한 배려로 여겼다. 그게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거다. 나만 어머니께 무언가를 해드린 게 아니라 어머니도 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내려 주셨다. 오히려 당신이 주신 게 더 많았다. 전엔 전혀 몰랐던 인생의 지혜와 관계의 가치와 무엇보다 감정의 디테일들을 깨닫게 해 주셨다.

그런 과정 속에서 특히 '사랑'이란 것의 실체도 어렴풋하게나마 알았다. 그걸 한창 알아야 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건 받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 이기주의자에게 사랑을 줄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김훈의 말마따나 사랑이란 말이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어 지지 않을 지경이 됐다. 그런데 뒤늦게라도 이만큼 가까워진 거다. 

지금 나는 낼모레 예순의 남자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처지로 어머니와 단 둘이 산다. 나름대로의 사연은 다 있다지만 그런 나의 겉모습만 본다면 누구든 패배자로 여길 것이다. 소설 속의 삼 남매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스스로를 패배자라 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제 갈 길을 찾아 나섰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나뿐 아니라 지금 세상으로부터 패배자라 불리는 세상의 모든 이가 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그저 인생의 긴 여정 속 한 구간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그게 조금 힘들고 생각보다 길어서 그렇지 우린 또 금방 여길 지나쳐 새 길로 나아 갈 것이다. 그러니 그게 누구라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함부로 패배를 속단해선 안 된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루저 #가족 #히키코모리 #고령화 가족 #머니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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