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공원은 '인스타 성지'라며 모둠마다 늦은 오후에 다녀갔다.
서부원
인스타 성지.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다. 가고자 하는 곳이 인스타 성지이냐, 아니냐가 아이들이 계획을 짜고 함께할 모둠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단다. 아이들은 직접 그곳에 가서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장면을 그대로 흉내 내보고 싶어 했다.
찍어서 올린 사진에 달린 하트와 댓글을 읽는 재미에 빠진 아이들 곁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어야만 했다. 단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릴 목적으로 한강을 찾은 것일까. 한강 공원에서 한 시간 넘도록 그들은 한강이 아닌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취지와는 달리 인스타 성지를 찾아가는 오리엔티어링 같은 것이 돼버렸다. 장래 경찰을 꿈꾸는 아이들이 경찰청을 찾고, 과학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이 국립 과학관에 가는 등의 일정을 제외하면 모둠별로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곳에서 만났고, 그곳에서 흩어졌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검색 포털이 유튜브에 밀려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젠 유튜브도 인스타그램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아이들에게 인스타그램은 검색 포털과 소통 수단일 뿐더러 세상을 접하는 창구다. 요즘 아이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곧 '스마트폰의 두 얼굴'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된 셈이다. 기실 이번 수학여행은 스마트폰의 도움 없이는 애초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갈 곳과 관람 시간, 교통, 예산 등의 정보를 알아냈고 세부 일정을 짰다. 게다가 내비게이션 노릇도 톡톡히 했다.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 데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도 스마트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직접 가보고 싶어 와놓고선 그곳을 둘러보기보다 벤치 등에 앉아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웹툰과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소일했다. 대체 왜 왔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목적지뿐만 아니라 식당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봤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상태에서는 함께하자고 모인 모둠원끼리도 대화가 잘 오가지 않았다.
기획 단계에서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사전에 모둠원끼리 역할 분담을 하고 개인별로 숙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선정된 계획서에 따라 모둠장이 정해지면 모둠장은 등 떠밀리듯 예약부터 비용 계산, 길잡이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다. 나머지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뭐든 잘 아는 사람이 희생해야 한다는 식이다. 몇몇은 계획 단계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면서 예약한 식당의 음식이 맛없다고 투덜대고, 지하철역을 잘못 내려 더 걷게 됐다고 화를 냈다. 말하자면 모둠장을 비롯한 소수는 여행사 직원처럼, 나머지 다수는 고객처럼 행동했다.
제출한 계획서대로 인증 사진을 찍고 방문 소감을 실시간으로 과제 플랫폼에 탑재하는 것도 모둠장을 비롯한 소수의 몫이었다. 그들은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할 만큼 종일 분주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라는 말로 연신 다독였지만, 그들에겐 위로가 될 수 없었다.

▲ 안산 단원고 세월호 4.16 기억 교실을 찾아 희생 학생의 어머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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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숱한 문제점에도 나름 성과가 컸다고 자평한다. 몇몇 동료 교사는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전체의 1/3이 넘는 19명의 교사가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는데, 그만한 교육적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뜻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무엇보다 코로나 와중에도 220명 모두가 안전하게 다녀왔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교사가 일절 관여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나흘간의 일정을 소화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하다. '촌놈들의 서울 나들이'라는 모둠 이름에서 이젠 당당함이 느껴진다.
예상치 못한 온갖 변수들의 연속이었지만 아이들은 나름 슬기롭게 대처했다.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예약이 취소된 것을 뒤늦게 알고는 합의를 통해 새로운 방문지를 정하기도 했다. 서울 사는 선배들과 직접 통화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본모습은 교실 밖에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수업 시간 한없이 무기력하던 아이가 모둠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업 태도가 좋은 친구가 성적이 우수할지언정 통솔력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아이들의 재능이 천차만별이라는 것만이 진리다.
교육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 전부가 학교였다. 뜬금없이 광고판을 교과서 삼기도 했고, 안내방송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버스 중앙차로제의 장단점을 토론하고, 예약제가 고령 세대를 차별한다며 꼬집기도 했다.
배움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고, 계량화된 지표로 평가될 수 없는 것임도 새삼 깨닫게 됐다. 기발한 상상력과 정직한 태도, 친절한 마음 씀씀이 등은 점수로 나타낼 수 없는 미래의 가장 중요한 재능이자 덕성이다. 이는 어쩌면 학교보다 길 위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언젠가 '길 위의 학교'라는 이름의 대안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 학교의 철학과 설립 취지를 알겠다. 모든 학교를 길 위의 학교로 만들 수 없을진대, 이번 수학여행과 같은 프로젝트를 활성화하는 게 나름 대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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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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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서울 나들이, 이만 하면 성공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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