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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약자 복지'가 사실상 복지국가 포기 선언인 이유

[주장] 기존 복지 삭감하고 감세하면서 약자 복지는 기만

등록 2022.10.28 09:51수정 2022.10.2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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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무엇이든 어디로 가든 문재인과 반대로 한다.' 윤석열 정부 정책 기조는 이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복지 정책은 '정치 복지'이고 자기는 '약자 복지'라고 말해왔다. 정치 복지는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고 가짜 복지이며, 사회적 약자를 선별해 지원하는 자신의 '약자 복지'가 진짜 복지란 것이다.

'약자 복지'는 지난 25일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핵심이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시정연설의 3대 키워드는 '건전 재정, 약자 복지, 미래 준비'였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취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정연설에서 윤 대통령이 '약자 복지'의 계획이라며 제출한 내용은 무척 기만적이다. 예산을 뭉텅뭉텅 깎아버린 기존 복지 사업은 말하지 않고 예산을 배정해 집행할 사업만 내세워 착시 효과를 일으켰다.

실행할 사업만 들으면 이런 태평성대가 없다. 윤 대통령은 기초연금 인상과 무주택자 보증금 대출 신설을 성과라고 강조했지만, 예산을 대폭 삭감한 노인 일자리사업과 공공임대주택사업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복지예산 삭감과 대기업 감세부터 막아야

더 근본적 문제는 따로 있다. 윤 대통령의 '약자 복지' 강조는 사실상 복지국가 포기 선언이라는 것이다. 복지 정책이 취약계층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복지를 곧 '약자 복지'로 한정하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문제적이다. 


복지국가 역사는 빈곤층 보호에서 출발했을지라도 점차 대다수 국민을 포용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전했다. 유형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복지국가들은 보편적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그 목표도 빈곤 구제로부터 사회 불평등 해소로 진화해왔다. 한국은 이제 복지국가 문턱에 겨우 발을 걸친 나라로,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복지 증세와 제도 개혁 등 수많은 과제를 넘어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겐 이런 고민이 전혀 안 보인다. 오히려 화끈한 감세와 공공서비스의 추가적 민영화(이른바 '고도화')를 제시한다. 이런 정책 기조 속에 윤 정부의 약자 복지는 고강도 선별복지, 곧 '최소 복지'로 정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약자 복지'는 복지국가를 포기하겠다는 알리바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주요 10개국(G10)에 초청받는 경제대국이면서도 복지 선진국이 되지 못한 데는 노동시장의 균열이라는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노동자들이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열된 상황에 더해 한국 복지체제가 사회보험 위주인 까닭에, 상대적으로 고용과 소득이 안정된 노동자들이 복지 지원도 더 많이 획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런데 사회보험 바깥 공적부조제도를 통해서는 극소수 빈곤층 외에는 지원 대상이 되기 어렵다. 복지 예산을 매년 늘리는데도 대다수 일하는 시민은 그 효용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므로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사회보험과 공적부조의 사각지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

구체적으로는 '고용보험의 전국민 소득보험으로 전환', '기본소득을 포함한 보편적 소득보장체제 개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과 개혁이 뒷받침될 때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 실현된다. 복지국가의 과제는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더 많이 토론하고 우선순위를 합의해야 할 것이다. 당장은 올해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복지예산 삭감과 대기업 감세부터 막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수정한 기사입니다
#약자복지 #윤석열 #시정연설 #기본소득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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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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