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딛고 주체적으로 일어서라

[서평] 한나 크리츨로우의 <운명의 과학>을 읽고

등록 2022.11.02 11:15수정 2022.11.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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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안젤리나 졸리의 초상화가 눈길을 끌었다. 가슴의 흉터를 그대로 드러낸 이 그림은 세계 유방암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 광장에 벽화로 전시됐다. 유방암으로 어머니를 잃은 졸리는 검사를 통해 유방암과 난소암에 걸릴 확률을 급격히 높여주는 BRCA1이라는 유전자를 확인하고 2013년에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

그녀는 이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수술을 통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서 5% 미만으로 떨어졌고 이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녀의 선택은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고 미래를 바꾸기로 결정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물론, 부유한 환경도 큰 몫을 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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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운명의 과학> 표지. ⓒ 브론스테인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한 뇌과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운명의 과학>(한나 크리츨로우, 로크미디어, 2021)는 인간이 다른 동물처럼 생물학적 운명에 얽매인 존재인가, 아니면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사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이 담긴 책이다.


영국의 뛰어난 신경과학자인 한나 클리츨로우는 신경과학의 세부 영역에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을 직접 찾아가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내용과 결과를 통해 인간은 운명과 주체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임을 보여준다. 또한 기존의 편견을 수정하며 앞으로 신경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제시한다. 

우리의 뇌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타고난 뇌는 질병에 이어 성격과 신념, 특정 사건까지 결정짓는다. 눈부신 신경과학의 발달로 인해 "생체지표와 유전자 진단, 뇌 스캔, 뇌전도 판독 등으로 개인의 삶을 더 확실하게 예측"(p.81)할 수 있다. 반면에 "뇌, 몸, 환경이 함께 작동하는 방식"(40쪽)에 따라 새로은 세포가 만들어지는 등 변화된 뇌로 진화된다. 게다가 가소성, 활력, 유연성 등 뇌가 가진 기능으로 통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여지"(327쪽)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비만의 경우 유전자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지와 노력으로 체중 감량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같은 비만 유전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30% 환경의 여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책은 뇌의 두 가지 면을 다 긍정할 수 있게 해준다. 뇌의 한계를 인정하고 동시에 뇌의 변화를 위한 행동 지침을 제안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뇌의 정보처리의 결함으로 인해 불완전하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저자는 새로운 환경과 의견에 끊임없이 노출시켜서 "자신이 구축한 현실을 타인과 비교해서 실험해 보는 방법"(181쪽)을 권한다. 또한 "정기적인 운동, 다양한 음식 섭취, 하루에 적어도 7시간 정도의 충분한 숙면"(264쪽)을 취하라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회복력, 면역계와 뇌의 상호작용에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더 구체적이며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동체 차원에서 신경과학의 필요와 활용이 무척 새로웠다. 우리는 기후변화와 경제적 위기 등 불확실하고 불길한 공동의 운명에 처해 있다. 저자는 이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연민과 이타주의"(319쪽)를 실천하도록 이끄는 신경과학의 모습을 제시한다. 최근 연구에서 "도파민과 옥시토신의 수치를 결정하며 각각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인 행동과 관련된 유전 변이"(316쪽)를 알아냈다. 또한 연민에는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강력한 욕구, 즉 이기적인 요소도 포함돼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신경과학의 지식을 활용하면 인류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 자율성을 높여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명이란 우리의 결함, 우리의 내재적 편견과 성향을 달리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이지만, 어쩌면 운명은 무기력하게 생각에만 빠져드는 것을 막고, 대신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준 뇌의 장엄함에 더 큰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살 수 있게 도와줄지도 모른다." (327쪽) 


저자의 결론처럼 <운명의 과학>은 운명 앞에 멈추기보다 우리를 행동하도록 만든다. 생물학적 운명의 신경과학적 원리와 메커니즘을 아는 것 자체가 힘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암 유전자를 미리 발견하고 행동에 옮긴 일처럼 운명을 아는 것은 다음 한 걸음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또한 뇌의 가능성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주는 여러 가지 방법과 조언들도 유익하다. 앞으로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데도 신경과학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신경과학과 자기계발, 행동 변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운명의 과학 -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한 뇌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지은이), 김성훈 (옮긴이),
브론스테인, 2020


#타고난뇌 #변화되는뇌 #연민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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