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의 용돈 지갑, 포켓몬 빵을 사는 돈이 들어있다.
이준수
동네 어귀의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작전을 바꿔 '장기전'에 돌입하기로 했다. 가정 생활비에서 지출하는 간식을 살 때 포켓몬빵 관련 계열사의 제품을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불매운동에 포함되는 상품이 꽤 있었다. 우선은 빵. 이상하게도 나는 겨울만 되면 호빵과 호떡이 저녁 무렵 당긴다. 집에서 편안하게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기에 찬 바람이 불 때 종종 사 먹는다. 그런데 그간 습관적으로 카트에 담았던 제품들이 모두 관련 계열사 제품이었다.
'유사 프랑스 빵집'에서 즐겨 구입하던 식빵과 소보로빵도 마찬가지.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마다 존재하는 그 빵집을 아주 오랜 기간 이용해왔다. 여름이면 수시로 문을 열고 들어갔던 '서른 한 가지 맛 아이스크림 가게'는 또 어떻고. 글레이즈드 도넛이 먹고 싶으면 전화로 남은 수량까지 확인했던 도넛 가게와 당근 케이크가 맛있는 이탈리아풍 카페도 모두 우리 동네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간 의식하고 있지 않았을 뿐 우리 가족은 거대한 요식업 그룹의 손아귀 안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간 부부 계정으로 적립해온 해피포인트가 몇만 원 남아있었지만, 업체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대책 수립이 나올 때까지 계속 불매를 이어나갈 참이었다. 그래도 불매운동은 쉬웠다. 언제나 대체제가 넘쳐났다. 개인 베이커리와 카페, 타 브랜드 제과점 등 빵집은 작은 골목 어귀마다 영업 중이었다. 아이스크림과 도넛 또한 양질의 재료와 특성화된 맛으로 승부하는 개인 가게들이 도처에서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손님을 맞이했다.
나와 아내는 5분쯤 길을 돌아가더라도 지역의 개인 사업장을 찾는 이유를 딸에게 알려줬다.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맛' 아이스크림을 사랑하는 큰 딸도 성실한 청년 사장님이 경영하는 유기농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강릉 초당 순두부 맛'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떠먹더니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사장님은 기분이 좋았는지 맛보기 스푼으로 토마토 바질 맛 아이스크림을 넉넉히 떠주셨다. 프랜차이즈 가게에선 경험하기 힘든 소소한 이벤트였다.
통일된 포인트 적립이 이뤄지지 않고, 카드사 및 각종 결제 시스템 할인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 많아 지출 규모는 약간 늘어났다. 하지만 불매운동 자체는 나름 의미 있고 즐거운 과정이었다. 아이들도 새로운 가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안면을 트는 일이 재미있었는지,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묻기도 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다시 한번 마음을 떠봤다.
소비자의 힘
"딸, 아직도 포켓몬빵이 좋아? 만약 다른 가게에서 다른 빵을 사면 생활비로 사줄게. 너 용돈 안 써도 돼."
딸은 멈칫하고서 눈썹을 심각하게 꿈틀거리더니 자그마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나 아직 포켓몬 스티커 끝까지 다 못 모았다 말이야. 1세대 포켓몬도 모으려면 멀었어."
나는 알겠다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세상에 영원한 유행은 없으니 언젠가는 포켓몬을 향한 사랑도 시들해질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엄마와 아빠가 매번 이유를 설명해 가며 불매운동을 이어나간 기억도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아직은 이해를 못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아 드는 생각과 감정도 있을 것이므로 불매운동이 전혀 의미가 없진 않다. 소비자의 구매권은 선거의 투표권과 같다. 어린이는 어른의 신용카드를 손쉽게 긁게 만드는 '에이트 포켓'의 주인공이자, 예비 성인 소비자이기도 하기에 힘이 세다. 세상에는 기업의 이익에 타격을 줘야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가치도 있다는 걸 어린이들이 배우면서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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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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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빵과의 이별 실패... 그러나 우리 가족에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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