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혐오단어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대남·이대녀' '한남' '페미' 등 타인 혹은 타집단을 비하하는 단어를 통해 조롱에서부터 혐오까지 나아가고 있다. 혐오단어 그 자체도 문제지만, 그 단어가 의미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소비·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아, 너 20대야? 이대남이네?" 30대에 접어들었으나, 최근 화두가 된 '만 나이'의 등장으로 아직 20대를 걷고 있는 내게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리다.
이 말을 전달하는 자의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농담을 섞어 장난스럽게 구사하고, 그 단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 한다.
의미가 있고, 없는 것을 떠나 혐오단어의 소비 및 확산은 단연 민주주의의 퇴보·파괴로 이어진다. 혐오는 특정 집단을 구별 짓고 배척하면서 분리와 차별, 폭력을 일으키고 정당화함으로써, 사회적 정의를 위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단어가 한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는 정치권에서 생산하는 '구별하기'로 그 원인을 진단하기도 하고, 혐오 연구자들은 이 원인을 신자유주의에서 파급된 경쟁과 불안, 1987년 민주화 체제의 실패로 꼽는다. 이 의견들에 대해 동의하나, 우리는 더 근본적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바로 분단이다.
혐오와 분단? 직접적 연관이 있을까?
혐오와 분단? 언뜻 보면 혐오와 분단이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겠지만, 몇 가지 현상들을 살펴보면 아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인 혹은 타집단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등장한 건 최근에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다. '종북'과 '빨갱이'란 단어는 그 역사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됐다. 바로 이 단어들이 사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혐오단어들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호주제폐지운동'과 '종북게이·페미'다.
호주제 폐지는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가 호주제의 헌법불합치를 결정하면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호주제 옹호자들은 "호주제 폐지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것" "호주제를 폐지하면 한국이 공산화될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빨갱이' 담론은 더 이상 호주제에 대한 내용을 논의할 수 없게 만들며, 호주제를 옹호하는 자와 폐지하려는 자로 구도화·악마화 된다.
또 다른 사례로는 '종북게이·페미'인데 즉, 동성애 혐오로부터 시작된 신조어다. 이들은 이성애주의를 기반으로, 동성애는 가정과 사회를 오염시킨다는 의미로 접근한다. 특히 동성애의 확산을 저출생 문제로 확대시키고, 나아가 노동력과 군사력 약화로 엮는다. 최종적으로 국가안보와 접목시키며, 오로지 혐오대상으로 견고화된다.
이러한 구도로 완성된 혐오는 문제의 본질보다는 타인 혹은 타집단을 혐오하는 것이 전부가 될 것이며, 혐오를 위한 혐오로, 사회는 점점 병폐해지고 민주주의는 퇴보할 수밖에 없는 현상으로 번져갈 것이다.
이래도 분단이 지겨워?
우리는 분단이 지겹다고 말한다. 벌써 70년이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과연 분단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사회 병폐 현상들을 알고도 지겨워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혐오에 사회적 주목을, 분단에는 사회적 무관심을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내가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것인지와 연관된다. 혐오는 현재 상황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으며, 내가 당장 멈출 수도 있는, 나의 의지와 연결된다. 그러나 분단은 마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분단은 당연히 지겨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단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고민해야 할까? 물론 거대담론으로, 우리가 일방적으로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마치 패배자인 척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다. 분단으로부터 파생되어 온 혐오를 소비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그리고 따분하고, 지겨워하는 대상을 바꿔보자. 분단을 이용하고, 끊임없이 사회를 경쟁적으로 그리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로. 이러한 문제의 접근이야말로, 분단 문제의 근원을 찾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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